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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날

6시에 기상. 몸도 멀쩡하고 기분도 좋다. 어지럽지도 않고 평소 때와 똑같되 몸만 약간 가벼워진 기분. 배가 고프지도 않다.

이날은 냉온욕을 온천에 가서 본격적으로 했다. 냉탕에 25분 들어가 있었는데 온 몸이 덜덜 떨리지만 할 만하다. 이 추운 날에.....참 별 걸 다 해본다. ^^; 상당히 개운하고 좋다.

이후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근처 도시를 관광하고 돌아온 뒤 체조 명상 등등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수련장에 모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좀 난감했다. 아무리 진한 연대감이 형성됐다 해도 낯선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라니.....당황스러워서 대충 생각나는 대로 간단히 하고 주로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쪽에 집중했다.
10대에서 70대까지 여러 사람들이 모인 터라 사연도 갖가지다.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보니 몇가지 유형이 눈에 띈다.
대체로 나이가 어릴수록, 여성일수록, 고생을 덜한 사람일수록 자기 연민이 강하다. 친구가 배신했다고, 공부가 힘들다고 울먹이고, (내가 듣기엔 멀쩡한) 딸이 고생시킨다고 서러워한다.
자기 연민이 강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겐 밋밋하게 들렸는데, 유독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잊혀지지 않았다. "이제 (자식에 대한) 집착을 털어내고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은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그 마음, 알 것같았다.

반면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삶에 대해 담담했다.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어떤 남자는 장애인이며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부둣가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 말문이 트일 때 가장 먼저 배운 말이 욕이었다고 한다.
그런 부모 마저 일찍 잃고 중국집에서 자장면 배달을 하면서 중고교를 다녔다. 혼자 몰래 좋아하던 여고생 집에 자장면 배달을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너무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고.....고생 끝에 대학에 들어갔고, 대기업을 거쳐 지금은 안정적인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
그가 고생으로 얼룩진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남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털어놓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은 캠프에 참가한 20명 중 가장 밝고 유쾌한 사람이다. 만사에 천하태평처럼 보이는 사람인데, 그런 난관을 거쳐왔다니....내가 겪은 사소한 고생(?)들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구나 싶다.


여섯째 날.

여전히 말짱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다. 룸메이트들이 나더러 점점 기운이 살아나는 것같다며 얼굴도 훨씬 밝아졌다고 덕담을 건넸다.

아침 명상에선 또 정신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어디 한번에 달라지는 게 있으려구......하지만 실망하기보다 '그래, 재미있군...이제 그만하고 집중하시지?'같은 생각으로 엉뚱한 데로 달아나는 마음을 붙들어 매려 애를 썼다.

된장찜질, 냉온욕 등 일상적인 일들을 한 뒤 마지막으로 했던 건 '하나되기' 수련.
눈을 감고 한 가운에 앉아있으면 8명이 주변을 둘러싸서 가장 좋은 마음으로 기를 전달해준다. 그리고 자리에 눕힌 뒤 8명이 가운데 사람을 들어올려 요람을 태우듯 흔들어주는 것이다.
처음 한두명은 괜찮더니 점점 힘들어진다. 팔을 잠깐 쉬려고 내가 얼른 안으로 들어앉았다. 다른 사람들이 기를 전달하려고 손바닥으로 내 주변을 휘휘 휘두를 때, 손이 몸에 직접 닿진 않지만 움직임은 느껴진다. 어쩐지 시원해지는 기분. 8명이 한 뜻으로 내게 좋은 마음을 전달해주려고 둘러앉았다는 것 자체가 겪기 어려운 경험이다.

공중으로 들어올려졌을 땐 기분이 아주 좋았다. 사람들의
팔 힘이 균일하지 않으니까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보다 편안하고 묘한 감동이 있다. 느긋하게 요람을 타는 듯한 기분....도중에 한 사람의 땀방울이 내 팔목 위에 툭 떨어졌다. 누군가 나를 위해 이렇게 땀흘리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땀흘렸던 것이 언제인가, 너무 이기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내 인생 계획엔 '공동체'는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너무 쓸쓸할 것같다는 느낌...다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난다.

저녁엔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놀았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엔 발목이 아플 정도로 방방 뛰며 놀았다. 술도 안마신 맨정신으로 그렇게 놀아본 것도 난생 처음이다.


*   *   *

이렇게 6일간의 명상단식이 끝났다.
외형적인 변화는 크지 않다. 한눈에 봐도 비만인 사람들은 많게는 7kg까지 빠졌다고 하는데 나는 2kg 줄었다. 적당한 감량이다.
서울에 올라와 맑은 죽 -> 된 죽 -> 소량의 밥, 순서로 차츰차츰 식사량을 늘려나가는 보식을 하는 중인데 위 크기가 줄어들어 그런지 저절로 소식을 하게 된다. 몸이 가벼우니 기분도 좋다.

아침에 일어날 때에도 이전과 달리 몸이 무겁지 않다. 거의 중독 수준인 커피를 마시지 않고도 비교적 정신이 또렷하다.
다시 출근을 시작해 스트레스 받는 일들을 맞게 됐지만 가급적 빨리 잊으려 노력한다. 회사에서의 일, 관계가 나의 하루를 지배하다시피 했던 이전과 달리, 하루 중 일정한 시간만은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내 시간으로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다.
또한 오래 고민해오던 개인적인 일 몇개의 가닥을 잡고 마음을 결정했다. 사실 이것만 해도 내겐 이 짧고 강렬한 하프타임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생활습관만은 이번에 반드시 바꾸겠다고 마음 먹고 있지만, 내가 크게 달라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1주일 명상단식을 했다고 뭔가 대단하게 얻은 것도 아니다. 짧은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훈련했던 것을 일상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면서 나 자신과 세계를 인식하는 또 다른 방법을 내 몸이 완전히 기억하도록 노력하는 길 뿐.....
벼락같이 찾아오는 깨달음이라는 게 있을까. 난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바라는 것은, 길고 꾸준한 단련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아, 내가 이미 변했구나' 하는 사실을 놀랍게 깨닫는 때가 오리라는 것....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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