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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의 상징처럼 거론되어온 오픈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두 얼굴의 사나이’ 때문에 곤란해졌군요.

위키피디아에 2만 여건의 글을 올리거나 항목을 편집해왔고 권위를 인정받아 논쟁이 벌어졌을 경우 조정 역할까지 맡아온 사용자 에스제이(Essjay)’가 이력을 조작한 게 들통이 났답니다.
사용자 프로필에 에스제이는 자신이 교회법을 전공했고 한 사립대 종교학과 종신 교수라고 밝혔는데, 알고보니 24살의 라이언 조던이라는 남성이고 일정한 직업도 없이 이 대학 저 대학을 옮겨 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거예요. -.-;
이 사람의 행각이 사기행위라면서 분개한 네티즌들이 위키피디아에서 들끓었던 모양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며칠간 위키피디아를 상징하던 ‘대중의 지혜’ 가 ‘대중의 분노’로 돌변했다고 전하고 있군요.
최근 이 사실이 드러나자 위키피디아를 떠나게 된 에스제이가 위키피디아에 남긴 마지막 글 입니다.


종교학과 교수가 24살의 백수로 드러나게 된 것은 미국 잡지 ‘뉴요커’가 최근 위키피디아에 대한 기사에서 에스제이에 대해 ‘위키피디아나 우리 모두 그의 실명을 모른다’고 쓰면서 비롯됐습니다.
에스제이가 종교학자라면서 특이하게도 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에 관한 글을 수정했다는 설명이 한 줄 들어가자 이 기사를 읽은 한 독자가 에스제이의 진짜 신분을 제보한 거죠.
최근에 에스제이가 비영리조직인 위키피디아와 별도로 설립된 회사인 위키아에 커뮤니티 매니저로 채용됐다고 주변에 자랑하는 바람에 들통이 났다는 뒷이야기도 있네요.

신분 위조 사실이 드러나니까 에스제이가 내놓은 해명은 자신이 논쟁 조정 등의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신분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좀 우스꽝스러운 건, 사후에 조사를 해보니 위키피디아의 가톨릭 관련 항목의 편집 과정에서 논란이 일었을 때 에스제이가 레퍼런스로 거론한 책이 ‘바보들을 위한 가톨릭 (Catholicism for Dummies)’이었다고 해요.
더미 시리즈는 온갖 분야에 걸쳐 왕초보들을 대상으로 나오는 엄청 쉬운 해설서죠. 종교학 교수가 자기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는 책이 더미 시리즈라니...좀 우스꽝스럽죠. 근데 에스제이는 "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텍스트로 곧잘 제시한다. 이 책의 신뢰도에 내 박사학위를 걸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군요.

이력 위조 사건으로 위키피디아 커뮤니티가 들끓자 그는 떠날 수 밖에 없었고 사건은 마무리 됐습니다.
이 사건이 위키피디아의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끼치겠지만...
무엇보다 저는 24살의 이 청년이 글을 그냥 올리거나 편집해도 됐을 것을, 왜 굳이 교수라고 속였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아마추어의 발언이 프로페셔널의 발언에 결코 뒤지지 않는 비중을 갖는다는 웹2.0적 공간에서도 '간판'이 역시 중요한 건가요...

몇년 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영화제작자에게 이 동네에선 reality보다 perception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는가'가 '자신이 실제 어떤 사람인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면서요. 허영이 흘러넘치는 동네의 특징으로 인상깊게 들었던 말인데, 에스제이 사건을 보니 그 동네에 국한된 말만은 아닌 듯하여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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