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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 뜻보고 삽니까. 그냥 살지예”

- 영화 ‘밀양’에서 종찬의 대사 -

  (스포일러 없습니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 고통이라니요.

‘밀양’을 보고나면, ‘밀양’에 대해 말하려면, 난감해집니다. 화창한 날, 구질구질한 내 삶도 화사해질 수 있다는 어이없는 기대를 품어보기도 하는 날, 이렇게 피 흘리는 상처라니요.


예고없이 덮쳐온 고통 앞에서 ‘나한테 왜?’라는 질문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밀양’은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각자가 겪은 고통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요. 비교할 수도 없는 거구요.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은 사람의 고통을 가스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텅 빈 공간에 가스를 주입하면 가스는 공간이 크든 작든 그 공간을 구석까지 균일하게 채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통도 크건 작건 간에 사람의 의식을 가득 채우고 마는 것이다.'...


‘밀양’에서 종찬(송강호)은 ‘뜻으로 사나요. 그냥 살지요’ 했지만, 정반대로 신애(전도연)는 ‘뜻으로’ 살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여자입니다.

뜻을 찾기 위한 신애의 안간힘이 지독하고 무모해 입이 떡 벌어지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 그 싸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뜻이 필요하니까요. 무의미함을 견뎌내기 위해서라도 의미가 필요하지요. 누구든 사람은 그것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겠지요.


얼마 전까지 다니던 스포츠센터 화장실의 휴지걸이엔 슈바이처의 말이 조잡하게 인쇄돼 있었습니다.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인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왠지 모르게 그 말이 절실하게 다가와 입속말로 가만가만 따라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모든 걸 다 잃어도, 살아가기 위한 어떤 ‘뜻’도 찾아내지 못했다 해도,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더군요.
암 투병중인 친한 선배가 “내 몸 안의 암세포도 알고 보면 살려고 기를 쓰는 ‘생명’이 아니냐”며 웃던, 쓸쓸한 표정도 떠오르구요.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밀양’을 보면서 그 말을 떠올리게 되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탁월한 배우 전도연의 그 어떤 광기어린 연기보다, 저는 그 처절하고 안스러운 장면이 못내 잊혀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밀양’이 보여주는 그 모든 참혹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를, 신애라는 여자를,  ‘살려고 하는 생명’으로 기억하렵니다.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힘, ‘은밀한 햇볕(密陽)’으로요.


※ ‘밀양’을 한번 썼다가 지워버렸는데 다시 올립니다. 이 영화 때문에 몹시 우울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회복되는군요. 저 역시 ‘살려고 하는 생명’인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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