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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밑줄긋기

일요일의 외출

sanna 2009. 2. 22. 22:11

“의미 있게 사는 게 미친 거라면 난 얼마든지 미칠 거예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에이프릴의 말)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불안해보였다. 그녀에게 설득당한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둘이서 이야기할 땐 들뜬 표정이었지만 친구들 앞에서 느닷없이 파리로 떠날 거라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을 거라고 말할 때 부부의 표정은 불안하고 군색했다.

친구들은 황당해하면서도 누구나 그렇듯 우정과 시샘이 뒤섞인 반응으로 약간은 부러워했고 약간은 멸시했다. 다 청산하고 떠나겠다는 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정신병원에서 휴가를 나온 미친 사람 밖에 없었다.


하지만 떠나야 할 이유를 들자고 치면 끝도 없듯,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 또한 끝이 없다. 아내의 임신, 승진, 거액 연봉의 제안, 여기서도 파리에서처럼 멋지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주저… 마음 설레던 계획의 포기를 목전에 두고 부부는 반목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들도 자신들이 ‘원하는 인생’이 뭔지를 잘 모른다는 데에 있다. 처음에 아내가 “하기 싫은 일 하면서 살지 말고 파리에 가서 당신의 본질을 찾자”고 설득할 때 남편은 이렇게 반문했다. “내 본질이 뭔데?”

파리에 가본들 여기나 똑같다는 옆집 남자의 위로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다.

“꼭 파리를 원하는 건 아니에요.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요. 방법은 몰라도 어쨌든 그 희망으로 살았어요. 약속되지도 않은 일에 모든 희망을 걸다니…. 하지만 떠날 수도 없고, 머물 수도 없어요. 말 그대로 무의미한 인생일 뿐….”
결국 “떠나지도 못하고 머물 수도 없었던” 그녀의 선택은 끔찍했다.


그들 부부가 꿈꾸던 대로 떠났더라면 행복했을까. 알 수 없다. 선택이 옳은 것과 그른 것 중 하나를 고르는 경우일 때는 아주 드물지 않을까. 대부분의 선택은 어떤 특정한 대안이 다른 것보다 특별히 낫다고 할 수 없는 경우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맞냐 틀리냐 이전에 의지와 상황의 문제다.

그렇게 본다면 그들은 어리석었다. 그렇게까지 맞설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방법은 몰라도 어쨌든 포기할 수 없었던” 그 희망에 사람이 목숨을 걸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      *      *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본 다음 하릴없이 쏘다니다가 나도 모르게 발길이 향했던 곳은 용산이었다.

‘무망한 희망’을 품었다는 사실 하나로 목숨을 잃었던 사람 생각을 하다 보니 저절로 발길이 그렇게 쏠렸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합동분향소가 있다는 것은 어제 hojai 블로그를 통해 알았다. 

지나가는 사람인양 슬쩍 쳐다보기만 할 심산이었는데 상복을 입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 팬 아주머니가 다가와 구속 철거민 석방 촉구 서명에 참여하기를 권했다. 내 옆에서 서명을 하던 아주머니는 서명을 청하던 아주머니에게 “나도 이 근처 살고, 장사하는 사람예요.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는지…. 좌우간 뭔 일이 생겨도 밥은 굶지 마요”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러고 보니 지나는 행인 중 서명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팔짱을 끼고 요란하게 웃으며 지나던 여고생 3명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달려들어 서명을 하고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사라졌다.

분향소의 방명록엔 울분이 가득했다. 부끄럽다는 글도 많았다. 나도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명복을 빕니다”이상으로 어떤 말도 더 적을 수 없었다. 향을 피우고 묵념을 한 뒤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분향소 앞엔 드럼통에 불을 피운 채 나이든 철거민들이 지친 자세로 앉아 있었고, 이들을 큰 길로부터 격리시키듯 닭장차가 바리케이트처럼 그 앞에 줄 지어 서 있었다.

그 자리를 떠나며 머릿속에 떠오른 한 마디의 말은 얼마 전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으로 곧잘 매체에 인용되던 대목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분께서 인용하셨다던 성경의 한 대목.

“카인아,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


이 질문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추기경님이 고문치사를 했던 안기부 요원만을 꾸짖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모두 부끄러웠다. 그 때와 달리 지금 불감증이 만연한 이유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철수’를 명령받지 않아도 되는 안전구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추방당하는 사람들만큼이나 권리에, 주권의 박탈에 민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우리가 권한을 위임한 국가기관이 야만을 일삼고 이를 우리가 묵과할 때, 힘없는 아벨의 피난처는 이 세상 어디란 말인가.


나는 모르겠다. 꿈쩍도 않고 너무나 완강한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이 무망해보이는 싸움이 어떤 결실을 거둘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기껏 ‘대단히 아름다운’ 수사라는 것을 해놓고도 골자가 ‘우연히 떨어진 화염병’ 때문에 다 죽었다 밖에 없는 검찰의 발표가 참 개소리라는 것만 안다. 그리고 분향소에 붙어있던 말, “저기에 사람이 있어요”라는 절규의 절실함 밖에는 모르겠다. 나의 글은 무력하다. 위선과 분열을 견딜 수가 없어 한동안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요점 없이 옆길로 새버린 이 포스트를 굳이 올리는 이유는 마음이 있다면 힘을 보탤 방법이 아직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사이버 조문이나 후원을 할 수도 있다. 한 달이 지났어도 여전히 고립무원의 처지인 그들에게 우리가 아직 잊지 않았다고 말해줄 방법은 여전히 있다.

마지막으로,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해야 할 주제에 다 잊고 용서하자는 철면피한 소리를 추기경님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랍시고 읊어댔다는 어떤 높으신 분께 말해주고 싶다.


“저기에 아직 사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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