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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터닝 포인트 3] 차백성 씨- 대기업 상무에서 자전거 여행가로
Before:
대우건설 상무
After: 자전거 여행가
Age at the turning point: 49


‘춤추는 사람은 바보/ 구경하는 사람은 더 바보/ 어차피 바보 될 바에/ 춤이나 추세.’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 씨(58)는 갑자기 일본 민속춤의 가사를 읊어주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 때려치우고 자전거 여행이나 하겠다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말립니다. 도피, 낭만이 동기라면 안 하는 게 나아요. 사람은 누구나 치열한 전장(戰場)에서 싸워보는 경험을 한번은 해야 해요. 나는 전장에서 물러난 게 아니고 내가 만든 새로운 전장에 뛰어든 겁니다. 구경하는 대신 춤추기로 결정한 거죠.”


겨울 끄트머리에 만난 그는 또래보다 한참 젊어 보이는 중년의 신사였다. 자전거 여행가는 자전거를 타는 모습으로만 비쳐지고 싶다면서 사진 촬영을 한사코 거부했다.


대우건설 상무였던 그는 50을 앞둔 해인 2000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자전거 여행가로 나섰다. 지금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린 거리만 얼추 3만km. 이른 은퇴 이후 유유자적하는 복 많은 사람이겠거니 했던 생각은 그와 이야기하던 동안 사라졌다. 그는 여전히 전사(戰士)였다. 필생의 꿈에 몰두하는 은륜(銀輪)의 전사.


● 30여년 준비한 자전거 여행


9년 전 그가 자전거 여행을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둘 때 사람들은 그를 “또라이”라고 했다. 아이들 둘에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내겐 돈보다 시간이 더 급했어요. 늙어서 다리에 힘이 빠지면 자전거를 못 탈 테니까. 불안할 텐데도 ‘대기업 상무보다 자전거 여행가가 더 멋지다’면서 전폭 지원해준 가족에게 고마울 따름이죠.”


가족이 씀씀이를 줄이고 10년 이상 해외 근무를 통해 모은 저축으로 몇 년은 버틸 거라 계산했다. 토목기술자인 덕분에 틈틈이 돈을 벌 수단도 있었다. 아이들이 자립하면 집을 처분해 생활비를 충당할 생각이었다. 죽을 때까지 집을 갖고 있을 생각도, 아이들에게 자산을 물려줄 생각도 없었다.


그의 말을 듣다보니 궁금해졌다.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자전거 여행이 중요한가?


그는 “자전거 여행은 내 필생의 꿈”이라고 단언했다. 자전거를 처음 갖게 된 중학교 3학년 때, 그는 혼자 서울에서 대구까지 3박4일을 자전거로 여행했다. 무모한 ‘생애 첫 여행’이후 그는 “자전거로 낯선 세상에 길을 내리라”하는 소망을 잊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나도 죽겠구나’하는 생각을 일찍 한 편이예요. 어떻게 살아야 되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람에게 주어진 시‧공간 중 시간은 어쩔 수 없지만 공간은 여행을 통해 확장할 수 있잖아요. 그런 공간의 확장을 통한 ‘삶의 풍성함’이 어릴 때부터 제 목표였어요.”


자전거 여행을 통해 그가 이룬 또 하나의 꿈은 책을 쓴 것. 대학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책을 쓰는 게 꿈이었다던 그는 세 번에 걸친 미국 자전거 여행을 ‘아메리카 로드’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출간 석 달 만에 5쇄를 찍을 만큼 반응이 좋은 편이다. 일본 유럽 대양주 아프리카까지 모두 5권의 자전거 여행 시리즈 책을 쓰는 것이 그의 계획. 지금은 일본 시고쿠 섬과 오키나와 자전거 여행을 준비 중이다.



● 실패보다 무서운 건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인생 아닌가? 


그는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나를 향해 매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인생을 사는 동안 두 번째 인생 때 할 일을 생각해두고 미리 준비해야 해요. 그게 자전거든 그림이든 뭐든 몰두할 수 있는 일을요. 나는 자전거 여행만 30년 준비했어요.”


‘몇 살엔 뭘 해야 하고, 어느 정도는 되어야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같은 남의 기준 말고 자신의 기준을 세우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출생신고를 5년 늦게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실제 나이보다 5년 젊은 마음으로 살고 있을 것 아니겠어요? 정말 나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풀빵 장사를 해도 대한민국 최고면 된다는 생각으로 몰두하다보면 거기서 돈을 벌 가능성도 열리고 새로운 관계도 따라와요.”


불안정한 미래가 겁나고 낯선 건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 그러나 몰두할 일이 있으면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에서 내려올 때 말이죠. 앞에 돌멩이나 나무뿌리 등 장애물을 보고 덜컥 겁이 나면 반드시 넘어져요. 그럴 땐 과감하게 확 지나가버려야 되레 안전합니다. 뭘 해보질 않은 사람들이 대체로 겁이 많아요. 그런데 사실은 뭘 하다 실패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 조차 없는 인생이 더 무서운 것 아닌가요?”


그는 자신이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느낀다. 마음껏 여행하고 책도 썼고 건강도 좋아졌다.
  완치가 어렵다고 했던 간염을 극복한 것도 여행의 부수적 소득으로 꼽았다.

“아프리카에서 근무할 때 비활성 B형 간염에 걸렸는데 놔두면 간경화,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자전거 여행을 하던 중인 2007년에 저절로 항체가 생겼어요. 지난해 10월 20일 ‘간의 날’에 세브란스 병원에서 자전거 여행으로 간염을 완치했다는 사례 발표를 했을 정도라니까요.”


그간 여행한 곳 가운데 경치가 너무 좋아 자전거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느꼈던 지역을 한 군데만 꼽자면 뉴질랜드 남 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과의 만남이 가장 진하게 남는다고 했다. 일본을 여행할 때도 도예가 심수관 씨 집에 찾아갔는데 “숱한 손님 중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면서 하룻밤 자고 가라는 환대를 받았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의미 있는 체험을 만들지 않겠어요? 전 근본적으로 비관주의자입니다. 인생이 뭘 남기고 이루고, 그러라고 사는 게 아니잖아요. 전반전 인생에서도 성취나 업적 같은 데엔 별 관심이 없었어요. 후반전 인생에서도 한번 태어난 인생, 잘 마무리하는 방법을 고민할 뿐입니다.”


스스로 즐거운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 자전거 순찰대 자문도 하고 자전거 문화 업그레이드를 위해 필요한 사회적 기여도 한다. 그의 말마따나 "스스로 즐겁고 다른 사람도 돕는다면, 그 이상 뭘 더"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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