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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터닝 포인트]<7> 심바루 씨-외국계 회사 사장에서 종합예술인으로

Before: 사이베이스365 동북아시아 사장
After: 종합예술인
Age at the turning point: 46


심준보 또는 에릭심 또는 심바루 씨(48). 그를 만났을 땐 약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삶 자체가 무대”라고 주장하면서 그가 쏟아놓은 말들이 너무 솔직한데다 그가 설명해준 자신의 행보도 희한했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그가 속내를 기록해둔 싸이 홈피를 보고서야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먼저 고백해야 하겠다. (심바루씨, 죄송.....^^;)


AT&T, 워너 브러더스, 노텔, 노키아 등 외국계 회사에서 줄곧 일해 온 그는 2007년 사이베이스365 동북아시아 사장을 마지막으로 20년간의 직장생활을 청산한 뒤 자칭 ‘종합예술인’으로 변신했다.

  

지난해 11월 배우 출신 미술작가인 강리나 씨(45)와 함께 ‘외계인 출입금지’라는 제목으로 첫 전시회를 가졌고, ‘봉춘홍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다니고 있으며, 강리나, 뮤지컬배우 김선경 씨와 함께 ‘지구방위대’를 만들어 환경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기획 중이다.


외국계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누릴 만큼 누려봤다”는 그는 이제 자신의 삶에서 ‘성공’과 ‘풍요’는 더 이상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재미있고, 특이하고, 용감하게” 사는 게 삶의 목적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는 ‘재미’있고 ‘특이’하고 ‘용기’있는 심바루 씨였다.


● ‘가짜인 삶’에서 벗어나기


자신의 과거를 그는 “쓰레기”라고 표현했다. 오죽하면 인터뷰 도중에 ‘아, 왜 그러세요’하고 말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가 설명해준 이력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부유한 집 아들로 10대 때부터 ‘날라리’였고, 1981년 미달된 외국어대 영어과에 운 좋게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문무대 입소 훈련 도중 “문제의식도 없는데 그냥 친구들이 맞는 게 화가 나서” 인권 유린성 훈련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가 두 달 뒤 징계퇴학을 당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TV오락프로그램인 ‘영11’에 개그맨으로 출연하고 장발에 흰색 디스코 바지를 입고 싸돌아다니던 그를 보고, 어느 날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고 한다.

“넌 나가는 게 좋겠다….”


그렇게 미국 뉴저지 주립대에 유학을 가게 됐다. ‘에릭심’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돌아온 뒤 AT&T 한국지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수직상승인생’을 살았다.

“조직생활도 싫고 적성에 맞질 않았지만 돈이 좋아서 참고” 회사를 다녔다고 한다. 늘 “내 삶은 가짜”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면서도, 고급 차에 고급 양복을 입고 가진 것을 남과 비교하며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렇게 살던 스스로를 어찌나 경멸했던지 그는 “난 상류인 척 위장하고 쾌락을 좇던 쓰레기였다”고까지 말했다.


왜 진작 방향을 바꾸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자조적으로 "돈이 좋아서"라고 말했지만, 이야기를 듣다보니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의 큰아들은 자폐증을 앓고 있다. “큰아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안심할 수준이 될 때까지" 그는 돈을 벌어야 했다. “자폐아에겐 한국이 힘든 사회”여서 2005년 그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그는 2년간 매일 전화로 아내를 설득한 끝에 2007년 11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두겠다고 노래를 불렀건만 정작 46살의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떠나는 건 그에게도 겁나는 일이었다.

“그만두기 직전, 원형탈모가 5군데나 생겼어요. 머리에 주사를 맞는 치료를 받는데 처음엔 너무 아파도 맞고 나니 견딜만하더라고요. 그만두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했죠. 지금은 두렵지만 저지르고 나면 견딜만하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결심할 수 있었지요.”


● “세상에 장난을 거는 게 재미있다”

회사를 그만둔 뒤 처음 두 달간은 후회막심이었다고 한다.

“비서도 없고, 기사도 없고, 그야말로 ‘노바디’가 되어버렸으니까요. 늘 대접받고 살아서 사람들이 원래 그렇게 친절한 줄 알았는데 나와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세상 참 터프하더군요.”


요리사가 되려고 캐나다에서 요리를 배우면서도 내면에서 들끓던 표현의 욕구가 가라앉지 않았다.

노키아에 다닐 때도 그는 3년간 주말마다 이태원 게이클럽에서 DJ로 일했고 틈틈이 영화 단역으로도 출연했다. ‘스캔들-남녀상열지사’에선 중국인 신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에선 게이 구둣방 주인 역을 맡았다. ‘다세포소녀’에서 맡은 변태 역할은 “최고의 연기였는데 편집 과정에서 잘려버렸다”고 한다.

2005년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간 뒤에는 분당에 프렌치 레스토랑인 ‘살롱 드 춘자’를 열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넘겼지만 ‘게이 필’이 나는 인테리어를 직접 하면서 너무 즐거웠다”고 한다.

‘요리사’로만 살기엔 표현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아내에게 재산을 다 넘기고 “3년만 군대에 다녀올게”하고 약속한 뒤 2008년 9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지금은 아버지와 둘이서 지내며 아내가 한달에 30만원씩 보내주는 용돈으로 산다. 고급 양복 대신 헌옷 수거함에서 주운 예비군복을 입고, 한때 푹 빠졌던 BMW 오토바이 대신 스쿠터를 탄다.

“주말엔 가끔 바지 위에 치마를 입는다”고 해서 내가 폭소를 터뜨리자 그는 한술 더 떠 “성남 모란시장에서 산 털신이 치마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 줄 아느냐”고 자랑했다. 내가 황당해하는 것처럼 보였던지 그가 혼잣말처럼 “남들은 다 꿀꿀하다고 하는데 난 왜 행복하지”하고 중얼거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예전에는 피곤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 피곤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서 얼마나 좋은데요. 난 웃기는 게 좋아요. 큰아들의 장애 때문에 집안이 어두워지지 않게 하려고 집에서도 늘 웃고 까부는 게 버릇이 됐어요. 이 세상에 장난을 걸면서 사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 공식 대신 ‘아트’로 살리라


그가 강리나, 김선경과 함께 만든 ‘지구방위대’는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재사용, 많이 걷기 등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환경보호를 주제로 전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는 공연에 쓸 돈을 벌기 위해 한 통신회사에 투자했고 캐나다에서 생수를 수입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소득의 10%를 공연에 쓸 계획이며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 환경보호를 위한 비영리 활동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삶의 목적이 ‘재미’라고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사소한 일 하나도 그는 남들과 똑같은 걸 못 견딘다. ‘심바루’라는 예명은 ‘똑바루 살자’에서 따왔고, 명함이라면서 ‘심바루, 배우, 종합예술인’이라고 판 도장을 꾹 찍은 재생용지조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넸다. 밴드의 이름을 지을 때도 가장 촌스러운 세 글자를 찾기 위해 고심하다 ‘봉’ ‘춘’ ‘홍’이 각각 떠올라 그걸로 작명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난 아티스트예요. 환경을 주제로, 요리와 공연, 미술을 키워드로 삼아 작업할 겁니다. 지금까진 공식에 맞춰 살아왔어요. 능력 있는 남자, 예쁜 여자를 선호하는 것도 번식의 본능 때문이라고들 하잖아요? 생존과 번식, 그 공식은 이제 나한테서는 끝났어요. 그 숙제는 다 했으니 이제 뭐든 마음 가는 대로, ‘아트’로 살래요!”

"근데 내가 왜 이런 말을 하지..." 하면서 묻지 않은 말까지 술술 털어놓던 끝에 그가 선언하듯 '공식 대신 아트'를 강조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다. 정말로 자유롭지 않으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없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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