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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터닝포인트]<11> 김용규씨-벤처기업CEO에서 숲생태 전문가로

Before: 벤처기업 CEO
After: 숲생태 전문가, 행복숲 공동체 대표, 농부
Age at the turning point: 39


그의 숲에 가는 길은 멀고 깊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충북 괴산 행 버스를 타고 내려간 뒤 다시 택시를 타고 숲으로 향했다. 산길에 접어들자 택시 기사는 계속 “어제 세차했는데…”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듯한 비포장 길 앞에서 딱 멈추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이런 차로는 못 가요.”


별 수 없이 내려서 걸어가야 했다. 산 속으로 한참 걷자 산 위쪽 꽤 높은 지대에 나무 집이 보였다. 저런 곳에서 살면 세상 소음이야 들리지 않겠지만…, 그 적요가 부럽다기보다 ‘무섭지 않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웬걸, 갑자기 개 두 마리가 컹컹 짖으며 적막을 깨뜨렸고 그 뒤로 여자 아이가 웃으며 달려 나왔다. 김용규 씨(42)가 집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늦은 아침 식사를 방금 마친 듯 그의 아내는 달그락 달그락 접시를 씻고 있었다. 산 속에서 막 기지개를 켠 가족의 일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집이 들어선 곳은 말 그대로 그의 숲이다. 그는 벤처회사 CEO를 하다 3년 전 그만 둔 뒤 뜻을 같이 하는 사람 5명과 함께 이곳 숲 7만5000평을 샀다. 앞으로 이 숲을 공동체, 생태 교육의 장소, 창작의 산실로 쓸 계획이며 그가 먼저 지난해 숲 속에 집을 지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숲에서 배운 것들을 최근 ‘숲에게 길을 묻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대도시에서 시골로, 사무실에서 숲 속으로. 간단치 않은 전환이다. 그 씨앗이 뿌려진 건 언제였을까. 변화는 곧잘 낯선 손님처럼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도 5년 전쯤 한창 회사를 운영할 때 우연히 ‘메신저’를 만났다고 했다.


“한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였어요. 인터뷰 도중 기자가 ‘꿈이 뭐냐’고 물었는데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는 거예요. 한 3분가량 멍하니 있었어요. 내 꿈이 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더라고요. ‘아, 내가 꿈을 잃어버렸구나’하고 자각하는 계기가 됐지요.”


당시는 그가 다니던 이동통신회사가 1999년 벤처 붐을 타고 설립한 벤처 회사에서 그가 CEO로 일하던 때였다. 가족도 미국에 보내놓고 회사를 키우려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사람 만나는 게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도 그러려니 하던 그에게 갑자기 던져진 질문, “꿈이 뭐냐”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주말만 되면 MTB를 타고 남산 오르내리고 산에 다니면서 ‘내 꿈이 어디 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때 유학을 다녀와 학자가 되겠노라 꿈꾸던 그 청년은 어디로 갔는가. 당장의 답은 구해지지 않았지만, 이전에 잘 몰랐던 숲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저 소나무는 어떻게 바위를 뚫고 자랄 수 있었는지, 질경이 풀은 왜 하필 하고많은 땅 중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지, 그런 것들이 궁금해졌다. 혼자 숲과 관련한 책을 찾아 읽을 때만 해도 그게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꿈을 고민하다가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나를 찾아 떠나는 꿈 여행’에도 참여했다. 그를 눈여겨본 구 소장이 이메일 뉴스레터인 ‘마음을 나누는 편지’ 필진으로 참여하라고 제안했고, 그는 산에 다니면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식물 자연을 주제로 칼럼을 썼다. 내친 김에 숲 연구소 전문가 과정도 수료했다.


그렇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숲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며 그에게도 꿈 하나가 생겼다. “지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숲을 만들고 싶다”는 꿈.


“상상해보세요. 이 숲에서 생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나무를 하나씩 심는 거예요. 자신만의 소망나무를 심고 거기에 자기의 꿈을 적은 메모를 붙여요. 이게 쌓이면 이곳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스토리텔링 포레스트 (Storytelling Forest)’가 되는 거예요. 제가 계속 나무를 보살피고 ‘당신 나무에 꽃이 피었어요’ 이런 소식을 홈페이지에서 업데이트해주는 거죠. 멋지지 않아요?”


반대하는 아내를 수목원을 함께 다니며 설득한 끝에 2006년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팔아 괴산에 내려왔다. 농사도 짓고 지난해 여름엔 넉 달간 집을 직접 지었다. 집으로서의 역할이 끝났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재료는 일체 쓰지 말자는 원칙을 정하고 시멘트를 쓰지 않은 채 밭 흙을 다져 기둥을 세우고 목재로  작은 집을 지었다.


직접 집을 짓다니. 그것도 마흔이 될 때까지 사무실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아득하게 느껴져 “집을 어떻게 지어요?”하고 묻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머리로만 생각하니까 그게 엄청 어려워 보이는 거예요. 집을 어떻게 짓긴요. 그냥 짓는 거죠. 집 잘 짓는 사람 모셔서 자문도 구하고요. 배우고 걷는 게 아니라, 걸어가면서 배우는 거잖아요.”


숲에 들어온 뒤 그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과잉친절 베풀기를 그만두었고 거침이 없이 당당해졌다. 세상 흐름에 휘둘리지 않으며 혼자 있으면 “우주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 충만해진다고 했다.


아직 다 현실화되지 않은 그의 계획을 듣다가 의문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봤는데 결국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공포는 없을까?


“왜 없겠어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계속 있어요. 그걸 끌어안고 가는 거죠. 되레 두려움은 죽을 때까지 동행하는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쉬워지죠. 또 이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는 길을 잃어보기 전엔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가 밖에 나가 숲을 보여주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지난해까지 양평에서 생애설계를 돕는 교육 프로그램인 ‘씨앗에서 숲으로’라는 프로그램을 3회 운영했는데 올해부터는 괴산의 숲으로 옮겨와 진행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20여명이 거쳐 간 ‘씨앗에서 숲으로’는 내 안의 씨앗을 발견해 숲의 일원인 나무로 성장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심리학자와 함께 운영하는 프로그램인데 저는 숲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사람들을 돕고 있어요. 숲에 가면 사람들에게 당신을 닮은 나무를 찾아 그 아래 서보라고 해요. 전부 제각각이에요. 어떤 사람은 뒤틀린 나무, 어떤 사람은 가시 많은 나무를 택하죠.”


그는 자기자신을 닮은 나무로 흔히들 ‘엄나무’라고 부르는 음나무를 꼽았다. 잔가지에 억센 가시가 잔뜩 들어찬 음나무처럼 그도 20~30대엔 가시가 많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숲을 만난 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생긴 나무들이 가시를 버리는 것”을 보았고, 변화의 힘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믿게 되었다.


여전히 그에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의 가족은 숲에서 가까운 증평 군에 산다. 당장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아이 교육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저축해둔 돈을 다 쓰면 어떻게 할 것인지…, 낯선 이의 무례한 질문에도 범상하게 “계속 노력할 것이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던 그가 “여기는 제가 숙연해지는 장소”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저 높은 곳 바위 위에 심하게 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나무의 성장배경을 들려주던 그의 말이 자신의 삶에 대한 은유처럼 들렸다.


“잘 보세요. 저기 느티나무의 뿌리가 바위를 끌어안은 모양새로 뻗어 있잖아요. 어느 날 바위 위에 떨어진 느티나무 씨앗이 점점 자라면서 제 살 길을 저렇게 찾은 거예요. 소나무처럼 바위를 뚫을 힘이 없는 느티나무 뿌리가 선택한 방법은 바위를 옆으로 끌어안는 것이었어요. 저렇게 바위를 안으면서 자신의 뒤로 신갈나무가 자랄 공간까지 만들어줬잖아요. 어려운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길을 내는 삶처럼 보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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