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는 날, 책이 나왔습니다.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된 원고였는데, 수정을 거듭할수록 제 생각이 덧붙여졌고 이젠 사람들 이야기인지 제 이야기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네요. 이런~ -.-;;;
최종 원고 교정을 볼 때부터, 광화문 네거리에 벌거벗고 선 것 마냥 망신살 뻗치기 전에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갈등으로 고민했습니다. 오랜 갈등 끝에 창피함을 무릅쓰고 굳이 책을 낸 이유는, 책에도 써두었지만 제게 아주 소중한 어떤 사람에게 했던 약속 때문입니다. 이 책으로 인해 어떤 비웃음을 당한다 해도, 그 사람만은 제 책의 출간을 기뻐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책에도 자기 운명이 있다지요. 모자란 마음을 애써 담아본 이 책도 제 운명을 살아가려니 믿고 이제 세상 속으로 내보냅니다.
출간 기념 이벤트라 하기엔 좀 남사스럽구요. ^^; 몇 분들이 가끔 책 언제 나오느냐고 물어봐 주신 터라, 궁금하신 분들께 책 보내드리겠습니다.
출판사가 낸 보도자료를 아래 붙여두었습니다. 이것 읽고도 여전히 책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성함, 연락처, 주소를 비밀댓글로 남겨주세요. 순서대로 10분께 책 보내드리겠습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성 야고보의 아름다운 전설이 시작된 길,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라고 불리는 길,
처음엔 혼자 시작해도 거의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끝나게 되는 길
평범한 이들을 위한 그 길에서,‘나’ 그리고 ‘그들’의 산티아고를 발견하다!
나 홀로 있는 곳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의 근심은 가벼운 웃음으로 깨어진다.
이 여행이 내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해주는 시구도 없으리라. ‘가벼운 웃음으로 근심이 깨어지는’ 반복적 경험을 통해 나도 마음을 열고 길이 선물하는 우연한 만남을 기꺼이 받아 안았다. 어디 온전히 ‘나뿐인 나’가 가능하기나 할까. 개별적 존재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실은 수많은 관계의 교차점이자 흔적들의 중첩일 것이다. 카미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카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인 이 글은 동시에 낯선 곳에서 만난 나 자신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_본문 중에서
카미노에서 만난 친구들과 나 자신의 ‘발견기’
_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인생의 문제를 고민하다
관계, 믿음, 지향 , 용기, 아름다움에 관한 성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성 야고보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으로 로마와 예루살렘에 이어 유럽 3대 성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곳.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는데 그중에서 프랑스 남부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에 이르는 ‘프랑스 길’, 일명 ‘카미노(Camino)’라고 불리는 길이 가장 유명하다. 산티아고의 카미노는 셜리 맥클레인이나 파울로 코엘료 등 명사들이 이 길에서 체험한 영적 깨달음, 삶의 변화를 고백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최근 2, 3년간 다양한 종류의 산티아고 여행기가 출간되었는데 거의 모두가 산티아고로 가는 여행의 기술, 개인적 감상, 풍경을 그리고 있다.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은 17년째 직업 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2008년 4월 11일부터 5월 14일까지 34일간 카미노를 걸으면서 자신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굳이 산티아고라는 길을 찾아 걷는 이유’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며 적어 내려간 기록이다. 기자 특유의 꼼꼼한 관찰과 취재를 바탕으로, 여행기로서는 보기 드물게 단단한 구성과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의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순례자들이 이 길에서 얻은 대단한 영적인 깨달음과는 다른 종류의, 삶의 획기적 변화와는 다른 소소하고 익숙한, 그래서 보다 구체적이고현실적인 깨달음을 전해준다. 저자는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자기 걸을 걷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고 일상의 숭고한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각 장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책은 일반적인 여행기의 일기식 구성을 취하지 않고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더욱 간절하게 고민하게 되는 타인과의 관계, 믿음, 삶의 방향성, 용기, 아름다움 등에 관한 성찰이 저자와 등장인물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때론 담담하게 때론 가슴 뭉클하게 펼쳐진다. 천 년이 넘도록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길,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길” 위에서 펼쳐지는 진솔한 이야기는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답이 보이지 않아도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삶의 건강성과 긍정성을 되새기게 해줄 것이다.
‘지금, 여기’를 떠나서 발견하게 된 바로 ‘지금, 여기’의 아름다움
_낯선 곳에서 맨 얼굴의 나를 만나는 강렬한 경험,
그곳에서 내 안의 노란 화살표를 발견하다
산티아고 하면 진지한 추구를 전제하는 ‘순례’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저자는 애초부터 깨달음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고 고백한다. 어떤 장소에서 정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진작 지리산 꼭대기, 설악산 능선, 페루의 마추픽추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어야 했다”며. 저자는 카미노가 “한쪽 방향을 향해 800킬로미터가량을 걸어가는, 안전하고 단순한 길, […] 길을 헤맬 걱정도, 내일은 어디에 갈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배낭을 메고 걸어갈 체력만 있으면, 그저 화살표를 따라 쭉 걷기만 하면 되는 길”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선택했다. 오로지 ‘지금,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저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낯선 길 위에서 평소에는 지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치사하고, 소심하고, 까탈스러운 모습들이 부지불식간에 수시로 밀려드는 것에 당황하지만 마침내 이것이 결국 길이 주는 선물이라고 받아들인다.이처럼 일상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짧지만 강렬한 경험을 통해서 저자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마흔을 넘어서도 여전히 흔들리는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 하지만 그런 모습을 거부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끌어안아 삶의 긍정성으로 전환 시키기. 이는 마침내 이런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나는 이미 마음 안에 불투명하지만 조심스럽게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노란 화살표를 갖고 있는데, 화살표가 가리키는 길이 진창길이나 험한 언덕일까 두려워 주저하는 것은 아닐까. 중요한 건 화살표를 따라 산길을 오르거나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저 너머엔 뭐가 있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를 품고 지금 당장은 땅에 밀착해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 인내. 그것뿐이지 않을까.”
세상의 속도가 아닌 나 자신의 속도 발견하기
_삶을 과정으로 인식하는 순간,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아무리 아름다운 길이라도 800킬로미터가량을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복적인 보행, 단조로운 풍경, 발의 통증, 열악한 숙박 시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육체의 고단함을 통해서 삶의 단순한 진실을 깨닫는다. 결국 삶이란 과정이라는 깨달음. 여기서 저자는 이런 경험을 일회적으로 끝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이를 일상적인 삶에 전반적으로 통합하려고 노력한다. “카미노에서의 여행을 끝낸 뒤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건 금세 시들고 마는 벅찬 느낌이 아니라” 삶이란 “어디에 도착할 수도 없고 완수될 수도 없는, 늘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여행 중반을 거치면서 저자는 이에 대해 신념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각자 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가장 진정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세상엔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누구도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완벽해 보이는 운명을 흉내 내려 안달하지 않고 나 자신의 불완전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카미노를 걸었다고 해서, 어떤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달라지진 않는다. 우리는 다만 변화하기로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대개의 변화는 늘 느리게, 알아차리기 힘들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속도였다. 내 속도에 맞지 않을 다른 지름길을 꿈꾸던 백일몽에서 빠져나와,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뎌야 했다.”
낯선 이의 친절로 살아간다
_답이 없는 인생과 세상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마음을 섞고 친구가 되다
‘산티아고의 순례자’가 아닌 ‘길 위의 순례자’,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저자는 생장피에드포르에서 혼자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한 달여간 길을 걸으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게 된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한 번 만나고 헤어진 사람도 있지만 다른 장소에서 몇 번씩 마주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순을 앞두고도 산 것 같지가 않다면서 모든 걸 청산하고 카미노에 온 신디, 스스로를 좋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나지막하게 읊조리던 서른 살의 시영, 혼자가 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는 마흔다섯 살의 마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싶다던 서른세 살의 애런, 자기 안에서 믿음을 발견하고 싶어 했던 예순다섯 살의 조지” 등등. 저자는 담담하게 고백한다. “물음표를 안고 길을 떠났으나 답을 가진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고. 하지만 그 대신, “답이 없는 인생과 세상을 불안해하고 외롭다고 느끼던 이들을 만나 마음을 섞었다”고.
저자는 카미노를 걸으면서 이 길이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임을 몇 번씩 경험했는데, 이 길이 보여주는 가장 큰 경이는 “내가 속한 현실에서 무겁게만 느껴지던 일들을 낯선 사람들과 서로 털어놓고 나면,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손아귀 안에서 버둥대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묘한 연대감”을 느낀 것이라고 말한다. 국적, 나이, 직업에 상관없이 저마다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앉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들의 건강성에서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시간의 횡포에 대해서도 웃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환한 얼굴로 말한다.
본문 내용 소개
이 책은 1년 전 이맘때쯤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 흔히들 ‘카미노’라 부르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 자신의 ‘발견기’다. 물음표를 안고 길을 떠났으나 답을 가진 사람을 만나진 못했다. 대신, 답이 없는 인생과 세상을 불안해하고 외롭다고 느끼던 이들을 만나 마음을 섞었다.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답이 보이지 않아도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겪은 공감의 한 자락이라도 전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 _프롤로그
사제의 강론과 기도를 들으면서 내 귀에 들어오는 단어는 딱 하나 ‘카미노’였다. 여러 차례 반복되는 ‘카미노’라는 단어를 마음속으로 따라 짚다가, 갑자기 사제가 뭔가를 암시하는 것만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내가 가려는 곳은 산티아고가 아니라 길 그 자체, ‘카미노’일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무엇이냐고 초조하게 스스로를 다그칠 필요가 있을까. 어느 한 곳에 도착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카미노’로 상징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일. 서울에선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졌던 ‘과정을 사는 삶’을 여기선 한번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딱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여기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p. 40)
어디서였는지는 잊었지만, 한 어머니가 딸아이의 머리를 감겨주며 “네가 머리 냄새 나는 아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했던 말을 읽은 적이 있다. 기억나는 말은 이랬다.
“너희 반에 옷이 더럽거나 가난한 아이를 보거든, 그래서 그 아이들을 비웃는 마음이 들거든, 반드시 기억해라. 아, 참! 나는 머리 냄새 나는 아이지, 하고. 그러면 네가 그 아이들과 똑같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난 자기가 냄새나는 줄도 모르고 있던 머리 냄새 나는 아이였다. 장을 보러 시내로 나가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잊지 말자. 난 머리 냄새 나는 아이야…….”
어떤 사람의 이유도 다른 사람의 이유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카미노에서는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똑같은 순례자들일 뿐이다. 길 위에서 ‘치사한 나’를 발견하는 게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역시 길이 가져다주는 좀 난감한 선물 중의 하나일지도 몰랐다. 평소에 자각하지 못했던 흉한 모습이 불쑥 드러나더라도 그것 역시 나인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리라. (p. 67)
이동의 편리를 위해 소유를 극도로 절제하는 생활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카미노에서야 한 달 안팎이라는 걸 알고 걸으니 견디는 것이지만, 계속 이렇게 길 위에서 떠도는 삶이라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유롭게 떠도는 유목민의 기질을 한때 동경한 적도 있으나 내겐 한곳에 정착하려는 정주민의 기질이 더 강하다. 이것도 겉멋인지,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유목민의 기질이 내게 별로 없다는 걸 확인할 때면 좀 실망스러웠다. 뭘 더 갖고 싶다거나, 누군가에게 더 사랑받고 싶은 집착 따위 훌훌 털고 흐르듯 살 수 있다면 좋겠는데……. 카미노에서 그런 태도를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게 될까.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상처, 상실의 아픔에 묶여 마음을 닫고 있는 한, 아무리 떠돌아 다녀본들 티끌만큼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흐르자. 마음을 열고 길을 따라 흘러가자.’ (pp. 74-75)
반복적인 보행의 리듬에 맞춰 오래 걷다 보면 다리의 뻐근함, 발의 통증, 배낭의 무게에 대한 의식이 서서히 지워질 때가 있다.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과 온 신경이 순수한 진공 상태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 내 안의 텅 빈 공간, 어떠한 생각도 없이 잠시나마 자아의 하찮은 주장을 몰아낼 수 있는 마음속의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그걸 알아차릴 때마다 여행의 목적을 완수한 듯 뿌듯해졌다. (p. 143)
짧게 걸었지만 애런은 카미노를 어디에 도착할 수도 없고 완수될 수도 없는, 늘 현재진행형인 자신의 길로 받아들였다. 계속 살아가는 방식, 일상 속에서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으로서 말이다. 카미노에서의 여행을 끝낸 뒤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건 금세 시들고 마는 벅찬 느낌이 아니라 이런 태도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슬며시 머리를 쳐들었다. 이 길이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모두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각자 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최선이고 무엇이 가장 진정하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길을 다 걸으면 그것 자체로 뭔가 완성되는 줄로 착각했던 내게, 애런은 다른 지평을 열어 보여주었다. (p. 158)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들었다. 나나 일마즈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평소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속마음과 비밀을 여기선 쉽게 털어놓곤 했다.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종종 치밀어 오르는 고해의 충동 때문일까. 한국 순례자들보다 낯선 외국인과 낯선 언어로 이야기할 때 더 쉽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아니면 어떤 사람들은 카미노를 ‘세라피 루트(Therapy Route)’라고 부른다더니, 이것도 카미노가 은연중 보여주는 경이 중의 하나인 걸까. 어쨌든 그렇게 내가 속한 현실에서 무겁게만 느껴지던 일들을 낯선 사람들과 서로 털어놓고 나면,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손아귀 안에서 버둥대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묘한 연대감 같은 게 뭉클 피어났다. 마음을 할퀴고 지나가는 시간의 횡포에 대해 웃어줄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p. 219)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던 길이 자갈밭으로 이어졌다. 카미노에서 화살표를 쫓아 걷는 길이 늘 멋지고 좋지만은 않았다. 이날처럼 끝도 없을 듯 팍팍한 길을 무더위 속에서 걸을 때도 잦았고 진흙탕길, 대도시의 번잡한 도로변,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고속도로의 위험한 갓길도 만났다. 하지만 그런 길들도 계속되는 건 아니었다. 진창길이나 자갈밭, 언덕을 힘겹게 지나고 난 뒤엔 때로 믿을 수 없도록 아름다운 풍경, 또는 좋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마음 안에 불투명하지만 조심스럽게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노란 화살표를 갖고 있는데, 화살표가 가리키는 길이 진창길이나 험한 언덕일까 두려워 주저하는 것은 아닐까. 중요한 건 화살표를 따라 산길을 오르거나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저 너머엔 뭐가 있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를 품고 지금 당장은 땅에 밀착해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는 인내. 그것뿐이지 않을까. (pp. 230-231)
감정의 굴곡이 심한 비일상적인 사건보다 그날이 그날인 예측 가능한 일상이 더 끔찍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생각해보면 카미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종일 걷고 저녁에 자는 단순한 생활의 반복. 한 달 내리 똑같은 옷을 입고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걷는 일에 무슨 대단한 변화와 드라마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관심을 기울였을 땐 그 단순한 리듬, 대단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도 풍성한 결을 발견할 수 있었다. (p. 261)
카미노에서 나는 스스로가 아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잘 씻지도 못하고 화장도 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이 평소보다 더 예쁘고 생기 있고 젊다고 느꼈다. 지도도, 가이드북도 없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별 걱정이 되지 않았다. 가끔 앞날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 툭하면 발목을 접질렸던 장소가 주로 평탄한 길이었다는 점을 떠올렸다. 전진하며 올라가는 길에선 아무리 힘들더라도 다리를 다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사실’로 겪어 아는 것은 내가 걷는 길의 아름다움뿐이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상상으로 내가 아는 길의 선물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을, 내게 벌어진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이 길의 굽이굽이에 숨겨져 있을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세상엔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누구도 갈 수 없는 단 하나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완벽해 보이는 운명을 흉내 내려 안달하지 않고 나 자신의 불완전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했다. 카미노를 걸었다고 해서, 어떤 대단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사람이 저절로 달라지진 않는다. 우리는 다만 변화하기로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 대개의 변화는 늘 느리게, 알아차리기 힘들게 일어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속도였다. 내 속도에 맞지 않을 다른 지름길을 꿈꾸던 백일몽에서 빠져나와, 느리더라도 단단하게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뎌야 했다. (pp. 299-300)
마농의 말에 지금까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줄줄이 떠올랐다. 예순을 앞두고도 산 것 같지가 않다면서 모든 걸 청산하고 카미노에 온 신디, 스스로를 좋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나지막하게 읊조리던 서른 살의 시영, 혼자가 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는 마흔다섯 살의 마틴,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싶다던 서른세 살의 애런, 자기 안에서 믿음을 발견하고 싶어 했던 예순다섯 살의 조지…….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 ‘확신범’의 얼굴을 한 사람은 없었다. 하긴, 확신에 찬 사람은 한 달씩 여길 걸으러 올 것 같지도 않다. 모두들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자기 길을 걷고 있다.
서울의 한 친구는 미니홈피 프로필에 ‘흔들리니까 사람이다’라고 써두었다. 흔들리고 불안하게 두리번거리지만,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성장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어디인지 모르지만 꼭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 꾸준히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 그것 말고 어떤 다른 희망이 가능하겠는가. (p. 256)
나에게 산티아고란....
산티아고가 어디인지는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내가 ‘산티아고의 순례자’가 아니라 ‘카미노의 순례자’라고 생각해. _영적인 여행을 꿈꾸는 애런
나는 신을 믿지 않는데, 만약 신이 있다면 이렇게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해. _ ‘베드 호퍼’ 마틴
카미노는 다른 사람의 기대를 생각할 필요 없이 자연스러운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죠. _떠돌이 개와 함께 걷는 바르바라
난 종교가 없어. 현실 세계의 종교는 권위적이라서 싫거든. 그런데 여기선 이상하게 계속 기도를 하고 싶어져. _영국에서 온 조지 할아버지
여기서 뭔가 이상한 감정이 꿈틀대는 걸 느껴. 설명하기 어려운데……. 길의 끝에 가면 나도 뭔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아무튼 카미노가 내면의 무엇을 찾게 만들긴 하는 것 같아. 겉으로만 여행을 하는 게 아닌 거지.” _ 카미노의 무슬림 일마즈
여기 오기 전에 나는 늘 내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겁쟁이 사자 같았어. 어디서 용기를 구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자 알지? 내가 딱 그 꼴이야. […] 천 년이 넘도록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카미노를 걸었으니 이 길이 우리에게 줄 영적인 에너지가 있을 거야. […] 난 확신을 갖고 싶어. 일상에 돌아가도 무뎌지지 않는 확신, 사소한 어려움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용기 같은 거 말이야. _겁쟁이 캐나다 아줌마 마농
내 평생 열정을 쏟은 대상이 딱 두 가지인데 그게 오페라와 카미노야. _카미노를 다섯 번째 걷는 에리카 할머니
이름도 모르지만 길에서 당신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어요. 움직이는 화살표처럼 느껴져서……. 내게 걸을 힘을 줘서 고마워요. _ M
카미노가 나한테는 바이러스 같아. 사람들을 만나는 게 가장 좋지. 힘이 남아 있다면 내년에도 다시 걸으러 올 거야. _독일 할아버지 울프
여행이 내게 무엇이었는지는 여행이 끝나고 한참 지난 뒤에야 알게 되겠지. _독일 청년 스테판
지은이 소개
지은이: 김희경
툭하면 넘어지면서도 오래 걷기와 등산을 좋아하고, 별 재능이 없는 줄 알면서 글쓰기를 좋아하며,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사람을 좋아한다.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 100가지’ 리스트를 몇 년째 만드는 중인데 ‘산티아고 가는 길 걷기’는 그중 3위였다. 인류학을 전공했고 17년째 직업 기자다. ‘인간의 거울’이라 할 인류학 공부와 정보를 요리하는 기자의 경험을 결합해 나 자신에게 세상의 풍성한 결을 설명하고 싶고, 그게 다른 사람에게도 들을 만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미국에서 MBA를 한 뒤 영화가 뜨고 망하는 이유를 분석해본 《흥행의 재구성》(2005)을 썼다. 블로그 ‘그녀, 가로지르다’(http://www.bookino.net)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