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한 마리 준마의 힘은 그 말이 적당한 때에 딱 정지할 수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밖에는 더 잘 알아볼 것이 없다. 분수 있는 사람들 중에도 줄기차게 말하다가 그만 끊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본다. 이야기를 끝낼 계기를 찾고 있는 동안, 그들은 마치 허약한 사람들이 쓰러져가는 꼴마냥 횡설수설하며 이야기에 질질 끌려간다.

 - “몽테뉴 수상록” 1권 9장 ‘거짓말쟁이들에 대하여’ 중에서 -

 

말 많은 사람에게 고문당한 날. 상대의 눈을 마주 보며 경청하기를 포기하고 휴대전화를 열어도 보고 다른 쪽을 쳐다봤다가 물 한 잔 더 달라고 소리를 치는 등등 온갖 산만한 몸짓을 해대며 ‘이제 그만 좀 입 다무실래요?’하는 신호를 줘도 상대는 아랑곳 않고 제 말만 한다.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대놓고 그만 말하라고 쏘아붙이기도 어렵다. 결국 말 자르기를 포기하고 나니 상대방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입술만 눈에 띈다. 저렇게 구강근육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왜 두툼한 입술은 다이어트가 안 되는 거지?


질린 기분으로 돌아와서 이달 말까지 해야 하는 어떤 글을 쓰던 도중, 별 생각 없이 비슷한 표현을 줄줄이 늘어놓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말 많아 피곤했던 정오의 만남이 떠오르다. 이런, 나도 다를 바 없잖아…. 찬찬히 살펴보니 전부 지워버려도 뜻의 전달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문장들 뿐 아니라 ‘기회를 움켜쥐었다’ ‘온갖 상을 휩쓸면서’처럼 진부한 표현 일색이다. 왜 만날 기회는 움켜쥐고 상은 휩쓰느냔 말이다. 사고의 게으름을 진부한 표현으로 위장하지 않으며 적당한 때에 딱 정지할 수 있는 힘. 한 마리 준마와 좋은 말, 잘 쓴 글의 공통점인 듯.

'몽 선생 가라사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줏대없음에 대하여  (2) 2012.01.19
방귀의 철학 2탄...아,놔!  (8) 2010.08.18
한가함의 독  (24) 2009.08.18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