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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주제로 잡지 한 권을 꾸미는 독특한 계간지 [1/n]의 여름호 주제는 '환승'입니다.

비행기나 버스를 갈아타듯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을 주제로 한 권을 꾸몄는데요. 전체 책의 구성과 디자인이 재미있네요. 각 꼭지 글들도 좋습니다. 방금 전에 손에 든 잡지를 밑줄 그어가며 읽었어요. (위 그림을 클릭하면 인터넷 서점에서 목차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버스 터미널에서'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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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터미널에서

얼마 전 나는 17년 넘게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렸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지만 불안했다. 이 장거리 여행길에, 갈아 탈 버스가 있기나 할까……. 하지만 이대로 더는 가고 싶지 않아서 큰 숨을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했던 대로 내가 탈 버스는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시간 맞춰 내리지 못한 스스로를 한심해 하고 어디로 갈지 궁리하며 터미널 근처를 서성이던 내가 한 일은 다른 환승객들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지난 1년간 18명의 환승객들을 만났다. 회계사가 요가학원 원장이 되고 광고회사 임원이 요리사가 됐으며 간호사가 소설가가 되고 음반가게 사장이 심리상담사가 되었다. 성공적인 환승의 결과보다 나는 이들 안에서 꿈틀대며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꾼 마음의 씨앗이 궁금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전복하고 싶은 열망? 혹은 오래 묵은 꿈을 더 늦기 전에 실현하겠다는 의지? 


이전의 삶이 좋기만 하다면 누가 환승을 꿈꾸랴. 한 분야에서 오래 길을 닦아 어른이 되고 나면 젊은 날의 혼란 따위 말끔히 해결하고, 살아가는 일, 아니 적어도 내가 하는 일에서만큼은 도사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기대는 번번이 배신당하며 성인이 되어도 삶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개 나이 마흔쯤 되면 발달심리학자 프레데릭 허드슨의 말처럼 “자신이 원했던 것은 갖지 못했고, 현재 가진 것은 바라지 않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자각은 여러 계기로 찾아온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선 자각이 위기의식에서 싹트는 경우가 많았다. 일 중독자였던 회계사는 어느 날 아침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던 일시적 마비 증세를 겪은 뒤 “일과 돈 말고 내 인생에 뭐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속승진을 거듭했으나 누가 ‘취미가 뭐냐’고 물을 때마다 대답이 궁했던 외국계 회사 사장에겐 “삶의 균형이 깨져 버렸다”는 자각이 깃들었고, 생계 때문에 음반가게를 운영하던 사람은 “인생에 의미가 없다면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또 어떤 이는 IMF 외환위기 때 한 팀이 몽땅 해고되는 사태를 지켜보며 단단해보였던 가치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겪었고, 10년 위 회사 선배들을 지켜보며 “나중에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구석에 밀쳐두었던 오래된 꿈을 다시 떠올렸다. 위기가 자기 삶에서 비롯되었건 외부에서 왔건 이들의 마음속에 터 잡기 시작한 질문은 “내가 지금 나 자신의 모습으로, 내 속도감으로 살아가고 있나” 하는 거였다.


그런 질문을 품는다고 누구나 ‘환승’을 선택하는 건 아니다.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대개의 사람들은 체념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환승을 선택하는 이들이 상세한 지도와 시간표를 갖고 있을 거라 여기며 부러워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내가 만난 환승객들 중 정밀하게 짜인 계획표대로 움직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 NGO 활동가가 된 전직 광고회사 임원은 “회복이 아니라 해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일단 회사부터 그만두었는데, ‘그 때가 그만둘 때라는 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내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을 내놓았다. “때가 되면 스스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을 엄두가 나지 않고 온갖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조바심이 들면 아직 때가 아닌 거다. 반면 때가 되면 질문이 단순해진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이건, 뭔가를 꿈꾸는 열망 때문이건, 언젠가 마음속에 자리 잡은 어떤 지향이 ‘일시적 충동’이라고 무시해버릴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지속적으로 나를 부르면, 더 이상 그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때를 만나게 된다. 그 때에 내린 선택으로 인해 나중에 ‘미친 짓을 했다’고 후회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만난 삶은 그 후회까지 포함해 한 번은 살아야만 하는 삶이 아닐까.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이들은 ‘내가 어느 때 가장 행복했던지’를 오래 생각했고, 자신의 강점과 연결되지 않는 판타지를 꿈으로 착각하지 않으려 주변의 도움을 청했으며, 온전히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하프타임을 갖고 미래의 꿈을 기록했다. 어디로 가는지 뚜렷하지 않지만 ‘일단 이만큼만 해보자’고 생각하면서 큰 점프 대신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러다보면 별개인 것처럼 보이던 경험들이 서로 연결되어 뒤돌아보면 어느새 하나의 길이 만들어져 있곤 했다. 

벤처기업을 운영하다 농부가 된 이는 내게 “배우고 걷는 게 아니라 걸으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들려주었다. 누군가 뭔가를 이루었다면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뚜렷이 알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일단 뛰어들어 경험하고 성찰하고 다시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 내가 환승객들로부터 배운 교훈이었다. 어쩌면 환승을 선택할 때 필요한 필수품은 상세한 노선도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 서로 이어지고 통합되어 결국은 ‘내 길’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믿음뿐일지도 몰랐다.


이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 나는 곧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신화의 힘』에서 들려준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떠올렸다. 자신의 영혼과 육신이 가자는 대로 그 부름을 따라 살면,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자신의 눈빛을 달라지게 하는 조그만 직관을 따라 가다보면, 창세 때부터 거기서 날 기다리고 있던 길을 만나게 되고, 늘 보이지 않는 손이 따라다니며 문을 열어줄 거라던 말. 

실제로 내가 만난 이들 중 상당수는 일부러 좇은 게 아닌데도 마치 계획이나 한 듯 시기가 딱딱 맞아 떨어지거나 도움을 받는 경험을 겪었다.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보트 제작을 배우고 돌아오니 보트 쇼가 열리고 요트계류장이 속속 들어서는 식이다. 물론 그저 우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정반대로 악운이 겹치고 학비 대줄 돈이 없어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했던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라던 캠벨의 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궤도였다.


손에 지도를 들고 있든 그렇지 않든 환승을 선택하면서 남들 따라 ‘되는 쪽’에 걸어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성배를 찾아서』의 오래된 프랑스판 문헌은 성배를 찾아 떠나는 기사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래서 그들은 저마다 가장 어둡고 길이 나 있지 않은 지점을 골라 숲으로 들어갔다.” 신화에서 남의 꽁무니를 쫓아가는 사람들은 곧잘 길을 잃는다. 공연장 대표가 된 전직 변호사의 말마따나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평가에 왜 내 인생을 거는가. 고작 그런 사람이 되자고 정작 나를 잊고 살 순 없는 노릇”이다. 남들이 다 가는 길 대신 나만의 길을 고르고, 자신의 괴물과 싸우고 자신의 시련을 감내해야만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일에 도전할 수 있다. 내가 만난 환승객들에게 인생 전환은 지금의 자기로부터 멀어지거나 다른 사람이 되려는 시도가 아니라 본래의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만난 18명 중 이전보다 수입이 확실히 늘어난 사람은 4명뿐이다. 세속적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순 없겠지만 삶의 만족도는 꽤 높은 편이었다. 그들로부터 나는 구체적인 삶을 사는 기쁨에 대해 들었고 먼 길을 돌아 미리 계획된 듯한 소명을 만났다는 충만함도 엿보았다. 반면 또 다시 일 중독자가 되어간다는 자기반성, 가끔 환승을 후회한다는 고백도 들었다. 그러나 현재 상태가 어떻든 단 한 번의 전환으로 삶이 완성되리라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환승객들은 미래의 불투명함을 불안하게 여기는 대신 우연에 열린 태도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곧게 뻗은 직선형 계단 대신 빙빙 도는 나선형 계단에 올라 거듭되는 부침(浮沈)을 긍정하면서도 점점 나아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하는 냉소를 거부하고 계속 성장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성인의 삶에 ‘성장’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다. 환승하는 우리들은 계속 자라고 싶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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