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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MBC FM 이동진의 문화야 놀자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인 이동진 씨가 제 책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의 한 구절을 읽어주었습니다. 제가 책에 쓴 구절보다 그가 덧붙인 해설이 좋네요. 그가 읽은 대목과 코멘트를 아래 올립니다. 그가 고른 구절에 언급된 '몰리나세카 가는 길'은 아래 사진에 나오는 길입니다. 아~이 사진을 보니 다시 가고 싶어지는군요....이제 '봄'이라 불러도 좋을 3월입니다.  

다시 혼자 걷기 시작했다. 이날 몰리나세카까지 가는 길은 카미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웠다. 가파른 산길이지만 굴곡이 큰 산등성이마다 갖가지 색으로 피어난 꽃들 덕분에 저절로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높은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정복의 쾌감 대신 스스로가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지는 느낌이 좋았다. 산등성이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 중 나를 위해 핀 꽃이 있으랴. 사람의 존재, 세상 모든 일과 무관하게 꽃은 피고 진다. 내가 거기 있건 말건 자연은 그저 그곳에 있다는 사실, 자연의 무심함을 자각할 때마다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문명의 흔적이라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광대무변한 허공을 배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는 티끌처럼 작고 사라질 운명인 인간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거대한 흐름을 웅변하는 것만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산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듯 인간의 차원보다 훨씬 위대한 무엇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그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중에서 -

(아래는 이동진 씨의 코멘트)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누구나 이런 순간을 맞게 되죠. 꼭 머나먼 이국에서의 여행이 아니더라도 혼자 등산만 가도 이런 기분, 실감하실 수 있을 거예요. 산을 오르고 길을 걷고 숲을 통과하다 보면 내 몸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집니다. 도시에서 빡빡한 일상을 치러낼 때는 세상 모든 것이 흡사 내 주위로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이렇게 생활에서 물러나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 없이 온전한 우주의 무심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김소월 시인은 그의 시 산유화에서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 피어있네라고 노래했는지도 모르죠. 여행이나 산책이 삶에 유익한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없어도 그 자체로 아무 부족함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쓸쓸히 인정한 뒤에도 저만치 혼자 피어있는 꽃의 아름다움에 작은 탄성을 터뜨릴 수 있는 것. 이제 이틀만 지나면 삼월이죠. 올 봄에도 나지막이 탄성을 터뜨릴 수 있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꼭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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