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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7년의 밤'을 쓴 
정유정 작가를 만났습니다. 세상에 소설가는 차고 넘치지만, (좁디 좁은 제 식견을 감안하여도) 이 분만큼 "이야기꾼"이 썼다는 느낌이 든 소설은 오래간만에 봅니다.

잔뜩 설렌 김에, 정유정 작가를 두 차례 만나 제 책 '내 인생이다' 실은 인터뷰를 독자 서비스 차원 (^^;)에서 전문 게재합니다. 꽤 길어서 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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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정유정: 간호사에서 소설가로

1980년 5월, 시가전이 벌어지던 광주에 공수부대가 진입하던 날이었다.

방 10개가 주르륵 붙어있던 기다란 한옥에서 하숙을 하던 대학생과 어른들은 출정식이라도 하듯 마당에 함께 모여 번개탄을 피워 삼겹살을 구워먹고 소주를 마셨다. 그러고는 한 명 뿐이던 여고생에게 “집 잘 보라”고 당부한 뒤 굳은 얼굴로 모두 트럭을 타고 떠났다. 밤새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던 여고생은 대학생이 묵던 옆방에 들어가 책을 하나 골랐다. 재미없는 책을 보면 잠이 올까 싶어 고른 책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 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총소리가 그쳐 있었다. 어른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창문에 쳐둔 이불을 들추고 밖을 내다보니 새벽이었다. 희뿌옇게 밝아오던 하늘, 깊은 정적에 휩싸인 새벽녘의 거리를 바라보던 여고생에게서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2009년 장편소설 "내 심장을 쏴라"로 1억 원 고료 제5회 세계문학상을 탄 정유정 씨는 자신이 왜 작가가 되고 싶은지를 고등학교 1학년이던 그날 알았다고 했다. 그 울음이 답이었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여고생의 몸과 마음을 꿈결처럼 홀리고 잠시나마 현실의 공포를 잊도록 해준 소설, 그렇게 울게 만들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 후 한시도 소설가의 꿈을 잊어본 적이 없지만, 자신의 꿈과 마주하기까지 그는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그는 5년 6개월간 간호사로, 9년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 직으로 일한 뒤 서른여섯 살 때인 2001년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독특한 이력의 소설가다. 글을 쓰게 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느냐고 물으니 그는 “생존 투쟁 때문”이라며 씩 웃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땐 그가 들려준 이십대의 고단한 경험이 ‘생존 투쟁’의 전부인 줄로 이해했다. 신산스러운 이십대를 보내면서도 꿈을 잃지 않은 일편단심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두 번째 만났을 땐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서른여섯 살에 인생의 방향을 튼 뒤 마흔 두 살에 등단하기까지 그가 살아낸 7년간의 캄캄한 시간이 눈에 밟혔다.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는 고시생처럼 공모전에 잇따라 낙방하면서 어떤 결실도 얻지 못한 채 흘려보내야 했던 시간을 그는 어떻게 버텨냈을까? 그는 “10년 넘게 습작 중인 사람도 있는데 내 7년은 아무 것도 아녜요”하면서 별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7년이면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자라 대학생이 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견디어낸 것이야말로 그가 작가라는 존재로 자신을 세우기 위해 치러야 했던 진짜 ‘생존투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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