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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간 번역하고 해설을 쓴 책 "푸른 눈, 갈색 눈-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 표지 예쁘죠?

 

이 책은 1960년대 미국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실시한 차별 실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꽤 유명한 실험이고 제가 예전에 칼럼에서 소개하기도 했었죠. 오래 전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왜 지금 하느냐를 설명하기 위해 무려 30페이지가 넘는 옮긴이 후기와 해설을 썼습니다

성인들 중 특히 학교 선생님들이 이 책을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다문화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과정을 간단히 적은 해설의 도입 부분만 아래 붙입니다.

   *            *          *          *          *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 옮긴이 후기와 해설

 

지금 당신의 손에 이 책이 들려 있게 된 사연은 열한 살 소녀가 서툰 솜씨로 그린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도화지의 위쪽 절반에는 주먹만 한 글씨로 ‘다른 나라 사람을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그 아래엔 덩치 큰 아이 세 명이 나란히 서서 혼자 동떨어진 작은 아이를 향해 소리친다. “저리 가! 너는 우리랑 달라!

작은 아이는 이 세 명에게 맞서는 모양새로 이렇게 항변한다. “아니야! 나는 너희와 같아.

 

작은 아이의 모델이자 그림을 그린 소녀는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의 아이다. 내가 이 그림을 본 것은 2010년 가을, 우연한 계기로 비영리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기 시작한 직후였다. 단체 연구진이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자료 수집을 이미 마친 프로젝트에 뒤늦게 합류한 뒤 그림을 그린 아이의 동영상 인터뷰도 보게 되었는데, 또랑또랑한 눈빛의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랑 다르다고 막 얘기하고… 어렸을 때요. 제가 발음이 많이 이상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애들이 (나더러) ‘너 우리랑 같은 사람 아니지? 저리 가’라고 하고, 만날 놀리고 그랬는데… (학교에서) 다문화가정인 사람 손들라고 만날 그러잖아요. 그럼 저밖에 손드는 애가 없잖아요. 그러면 애들이 ‘쟤 다문화가정인가 봐’ 어쩌고저쩌고해요.

 

이 아이는 “똑같은 사람이고 말만 다를 뿐인데,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은 필요도 없고(듣기) 싫다”고 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이라는 법률도 있고 지방자치단체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기에 다문화가 가치중립적 개념으로 쓰이고 있으려니 했던 나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그러고서 며칠 뒤에는 단체 활동가들에게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의 동아리 활동을 지원했던 경험을 듣게 되었다. 동아리 아이들이 직접 같은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다문화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평소 다문화가정의 아동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두 개만 적어보라’는 주관식 질문이 있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이랬다. “따돌림, 더럽다, 외모, 의사소통, 아프리카, 초콜릿, 짜장면, 흑인, 불행…….

 

이 학교 학생 중엔 외모로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다문화가정 아이는 없다고 했다. 설문에 응답한 학생들이 다문화가정 아이를 직접 본 적이 있건 없건 간에 ‘다문화’라는 개념 자체에 따라붙는 편견의 리스트가 놀라웠다.

 

내가 차별과 편견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두 사례를 접하고 난 뒤부터다. 말투나 피부색처럼 단순한 특징으로 ‘너는 다르다’라고 판단하고 이에 근거해 쉽게 차별하며 완강한 편견을 갖는 마음의 구조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사방에서 다문화 사회를 말하지만, 한국 사회는 정말 다양해지고 있는 걸까?

 

의문을 안고 자료를 뒤지던 중, 이 책의 주인공인 제인 엘리어트의 실험을 접하게 되었다. 엘리어트의 실험에서 핵심 주제인 ‘차별당하는 사람의 마음 공감하기’를 응용한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한겨레신문"의 오피니언 사이트 ‘훅(hook)’에 그 내용을 글로 썼다. 그 뒤 초등학교에 찾아가 엘리어트의 실험을 응용한 연극 수업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연할 연극 작품을 만들 무렵, 한겨레출판의 눈 밝은 편집자께서 이 책을 찾아내 번역과 해설을 제안해왔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는 것은 ‘다문화’라고 놀림받는 게 얼마나 가슴에 맺혔던지 그림을 그리고도 모자라 도화지 오른쪽 위 귀퉁이에 별표를 치고 ‘중요’라고 적어놓았던 소녀가 맺어준 인연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끈을 통해 다가온 당신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제인 엘리어트의 실험이 21세기 한국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차별은 오로지 나쁜 환경의 영향에서 비롯된 비뚤어진 마음일 뿐인가? 나는, 그리고 당신은 차별 따위 하지 않는 사람인데 왜 차별에 대해 생각해야 할까?

 

(너무 길어서 여기까지만 게재할게요. 나머지가 궁금하신 분은...책을 삽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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