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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렁슬렁 북한산행. 대성문 -> 대남문 -> 구기 계곡으로 4시간 산행. 천천히 걸어 그런지 마음도 넉넉했고 몸도 딱 기분 좋을 만큼 나른해지다.

가을 산이 곱다. 단풍도 제대로 못보고 가을을 넘기나 싶어 아쉬웠는데 오늘 제대로 원풀이 했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계곡 물이 불었다. 평소엔 마른 천이었다던 곳에도 물이 불어 콸콸 흐른다. 북한산이 아니라 설악산의 깊은 숲 속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 예전에 시드니에 놀러 갔을 때 후배가 살던 집에서 10분 거리에 설악산 같은 산이 있던 게 놀랍고 부러웠는데, 서울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실감.

 

# 산행을 마친 뒤에 들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오늘의 좋았던 점.

나는 살아가는 일이 각자의 이야기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책 "내 인생이다"의 마지막에도 이렇게 썼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 있는 동안에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사건이 삶에 더해질 때마다 줄거리를 계속 수정할 뿐이다. 길을 바꾼 사람들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불안해하는 대신 그렇게 이야기를 고쳐 쓰며 열린 태도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곧게 뻗은 직선형 계단 대신 빙빙 도는 나선형 계단에 올라 거듭되는 부침 (浮沈)을 긍정하면서도 점점 나아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는 냉소를 거부하고 계속 성장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성인의 삶에 '성장'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다. 길을 바꾼 우리는 계속 자라고 싶은 사람들이다."

오늘 들은 이야기는 누군가가 그렇게 써내려 간 이야기 중 극적인 어떤 순간, 짧은 만남, 찰나의 이미지들. 마치 '우연은 어떻게 운명이 되는가' 라는 제목이 붙은 짧은 영화를 보는 듯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연이 저절로 운명이 되진 않는다.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선택. 질게 뻔한 싸움인 걸 알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는 선택. 그런 선택들이 쌓여 우연을 자신의 길로 만들고, 삶으로 쓴 이야기의 밀도를 높인다. 오늘 들은 에피소드들은 그렇게 밀도가 높은 이야기의 단면들이었다. 역시 책 중에선 '사람 책'이 가장 재미있다.

 

'이야기'로서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조지프 캠벨이 말한 영웅의 여정이다. 요즘 부쩍 자주 생각한다. 문지방 하나를 건너온 나는치러야 할 싸움은 치렀는가, 내 곁의 조력자는 누구인가, 고래 뱃속은 지났는가, 남들이 이미 간 길에서 남들의 뒤꽁무니를 좇는 대신, 내가 가야 할 내 길을 가고는 있는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스스로 아는가.

퀘이커 공동체에서 전해 내려왔다던 오래된 경구를 생각한다. "Let your life speak"

조바심 낼 필요도 없지만, 침묵 속에서 귀 기울이기를 게을리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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