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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새는 움막집엔 어린 육남매가...

난민촌없는 피난생활, 살인적 집세에 울고 혹한에 덜덜

시리아 내전 21개월...민간인 참혹한 나날

사진 잘 나오는 '난민 풍경' 없어 관심 덜받는 듯

 

위의 기사들 취재 주선을 위해 한겨레신문 기자와 함께 12월 중순, 레바논에 다녀왔다. 2년 가까이 내전 중인 시리아를 탈출하여 레바논에 온 난민들의 생활상이 어떤지,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떤 인도적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등을 취재하러 갔던 길. 실태는 기사가 상세하게 전하고 있으니, 여기선 내 단편적 인상만 끼적이면..... 

 

# 맨 위의 기사에 게재된 사진을 보면 아이들이 맨발이다. 북부 레바논과 베카 계곡의 난민들 거주지를 돌면서 계속 유심히 보았는데, 한겨울인데도 예외 없이 맨발이었다. 돌아온 뒤에도 시리아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이들의 맨발...

 

 

 

아이들이 맨발로 돌아다녀도, 예외 없이 남의 비극으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이라 할 수도 없고 거적때기를 이어 붙인 가건물을 지어놓고 오갈 데 없는 난민을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 사람들.

한 번은 난민들에게 가건물을 지어 잘 곳을 제공하는 목수의 작업장을 지나치게 됐는데, 외지인인 우리와 이야기할 때 목수는 "하늘의 뜻"에 따라 이런 선행을 한다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돌아서는데 이 지역에 상주하는 우리 단체 필드 매니저가 고개를 가로젓더니 주의를 줬다. 난민의 증가를 돈 벌 기회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수혜자가 필요한 물품을 사기를 쳐서 추가로 받아와 가건물을 짓고, 난민이 임대료를 내지 않으면 가차없이 길거리로 쫓아낸단다. 지나치게 높은 임대료를 받아내고 돈을 못낼 경우 바로 쫓아내니 아파트에서 가건물로, 움막으로, 끝내는 길거리로 점점 하락하는 난민들이 많다고 한다. 소위 '선행'의 껍질을 까보면 냄새 나는 탐욕만 가득한 이런 경우가 레바논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어디 한둘이겠냐만...... 참 씁쓸했던 장면. 


더불어 떠오르는 아주 오래된 질문. 구조적 장벽과 그 장벽에 기생하는 착취자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질문...20대 때는 단호하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 생각이 점점 엷어졌다. 구조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 때문이기도 하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은? 글쎄다. 나보다 먼저 구호개발단체에서 10여년간 일하다가 그만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 현장에 가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던 그는 왜 비참함이 사라지지 않는가 고민하다보니, 쏟아지는 오물을 닦아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저 위에서 오물을 흘려보내지 않도록 손모가지를 비틀든, 차단하는 방법을 연구하든 해야지 이대로는 안되겠다면서 공부를 하러 떠났다. 

둘째날 베카 계곡의 난민들을 만나러 이동하던 차 안에서 그 사람 생각이 났다. 모금을 해서 현장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일하다보면, 아주 구체적인 삶의 요구에 응답한다는 보람도 있으나 동시에 한 사람의 삶, 한 마을의 삶이 장기적으로 나아지는 데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에 대한 회의도 질기게 따라다닌다. 그래서 '구조'의 문제를 다루라고 내가 일하는 advocacy 부서를 만들었고, 나 같은 사람도 뽑았겠지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 레바논은 여행유의지역, 특히 북부는 여행제한지역이라 미리 혈액형까지 신고해야 했고 바짝 긴장하고 갔는데, 수도 베이루트는 생각보다 평화로웠다. '중동의 파리'라 불린다더니, 대형 쇼핑몰들이 있고 입간판은 서울 못지않게 화려하고 크리스마스 마켓이 섰다. 음식도 맛있어서 중동의 유명한 요리사들 중엔 레바논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 돌아오는 날, 밤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시간 여유가 있어 베이루트에서 1시간 거리인 비블로스에 다녀왔다. 사람이 계속 거주한 도시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도시. 책이라는 뜻의 도시 이름 때문에 호감을 가질 준비가 돼있어서 그럴 수도 있는데, 한적하고 평화로워 아주 마음에 든다. 

이곳에서 알파벳의 기원인 페니키아어가 생겨났는데, 알파벳에 대응하는 철자를 보고 써본 페니키아어 내 이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움직이면서 베껴쓰느라 내 이름은 엉망이지만 조형미가 좋은 글자다. 관광객들에게 페니키아어로 이름을 써주는 기념품 샵 같은 걸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분쟁지역이라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겠지만.

 


비블로스도 그렇고, 베이루트도 그렇고, 지중해에 면한 레바논의 도시들은 눈물이 날만큼 아름다웠다. 신산스럽게 살아가는 난민들을 만나고 온 바로 다음 날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되는가 죄책감을 느낄 정도...

베이루트의 해변가에선 층층바위 위에 사람들이 하릴없이 앉아 해지는 풍경을 구경했다. 비교적 형편이 좋아 북부의 가난한 마을 대신 수도의 친척집에 머문다는 시리아 난민 가족도 만났다. 아름다움이 그들에게도 위안이 될까... 그럴 거다. 소설 '레미제라블'의 한 구절을 읽어보면 더더욱.

"꽃보다는 샐러드용 채소라도 심으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녀가 묻자 주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요. 아름다운 것은 유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익해요." 

그리고 다시 덧붙였다. 

"아마 더 유익할 거요."


- "레미제라블"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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