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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가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욥의 부르짖음에 대한 야훼의 답변은 이렇게 시작한다.

 

몇 년 전 욥기를 읽으며 놀랐던 건, 성당을 한참 다녔던 중학생 때의 어렴풋한 기억과 달리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욥의 태도였다. 욥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왜 내게 이런 짓을 하느냐고 야훼에게 따진다. 왜 이러는지 대답 좀 해보라고 끈질기게 묻는다.

왜 악한 자가 복을 누리고, 죄 없는 사람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죄 없는 한 사람이 치르는 끔찍한 고통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욥은 집요하게 묻고 따진다.

 

반면 그를 위로하러 온 친구들은 야훼 앞에 욥의 무릎을 꿇리려 애를 쓴다. 여섯 번에 걸쳐 욥에게 "무슨 이유가 있으니 이런 벌을 받겠지"하고 설득한다. 굽히지 않는 욥에게 급기야는 "네가 언제 그렇게 선량했느냐"고도 나무라고, "고통 속에서도 배울 게 있다"라고 달래기도 하고,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타이른다.

 

그러나 욥은 끝내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이 모든 끔찍한 고통이 내 탓이라고 움츠려 들지도 않았다. 욥은 끝까지 집요하게 야훼에게 묻는다. 죄 없는 나에게 내리는 이 고통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가...

 

침묵하던 야훼는 드디어 천둥처럼 입을 열어 욥에게 묻는다.

"내가 세상을 만들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너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와 같느냐.

네가 분노를 폭발시켜 건방진 자를 짓뭉개고 불의한 자를 짓밟을 수 있느냐."

......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알아주리라.

네가 자신의 힘으로 헤어날 수 있으리라고."

 

그제야, 스스로가 흙의 먼지로 빚어져 야훼와 논쟁해서는 안 되는 인간임을, 인간 밖에 안 되는  존재임을 깨달은 뒤에야, 자신의 고통이 스스로 불러들인 벌이 아니라 야훼에게 맡길 수 밖에 없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일 뿐이라고 이해한 뒤에야, 욥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받아들인다.

 

친구들의 그 어떤 설득에도 자신의 뜻을 접지 않던 욥은, "네 고통을 헤아릴 힘이, 고통에서 헤어나올 힘이 너에게 있지 않고 나에게 있다"는 야훼의 꾸짖음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이렇게 말한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다"....

 

야훼의 대답 어디를 읽어도 고통의 이유를 묻는 욥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그저 네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돌려서 말할 뿐이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추측할만한 대목은 하나밖에 없다. 야훼는 욥을 위로하고 타이르던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욥처럼 솔직하지 못하였다"고 분노한다. 친구들은 욥에게 "고통이 야훼의 뜻"이라고 설명하면서 위로하려 들었지만, 야훼는 그들이 가짜라고 화를 낸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느냐고, 고통에 대해 왜냐고 묻는 욥의 태도가 인간적이고 솔직한 것이라는 대답. 욥기에서 고통에 대해 야훼가 직접적으로 대답한 것은 이것 뿐이다.

 

....욥기의 끝에서 욥이 고통에 대해 "왜"냐고 묻는 대신 "예"라고 대답한 이후에도, 나는 그가 고통에 동의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상상한다. 끝까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지만, 답을 구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 욥의 선택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려면이해할 수 없는 일의 그 不可解性 자체를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 욥기가 들려주는 고통에 대처하는 자세다. 지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그것 이외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욥처럼 "도대체 왜"라는 질문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가.

 

대답하고,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질문이 되돌아오고, 다시 답을 몰라 헤매인다. 참혹한 고통 속에 놓인 내 절친한 벗을 생각하며, 그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세상의 모든 위대한 힘들 앞에 기도하며, 욥기를 다시 읽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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