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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쯤 시작한 프로젝트의 결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엄, 콘퍼런스를 오늘까지 이번 주에 두 개나 해치웠다. 낮에 시간 많은 거 내가 뻔히 아는 몇몇 친구들에게 오라고 했더니 두 개 다 재미없어 보인다며 무시했지만(주최측이 아니라면 나도 그랬겠지만...무정한 친구들 같으니라고), 내 나름대론 애써 준비했고, 둘 다 내가 사회를 본 행사들이라서 치르고 나니 몸과 맘이 고단하다. 기록 삼아 두 행사 중 하나는 이거. 또 하나는 이거.

 

발표, 강연자보다 사회자는 쉽다. 시간 관리를 하면서 행사의 전체 흐름을 다듬는 일이 은근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를 볼 때 질의응답 시간이 되면 '은근 재미'와 무관하게 바짝 긴장하게 된다. 우회하지 않고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을 기대하는 한편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올지도 모른단 불안감 때문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주 유체이탈하는 내 정신도 이때만큼은 꼼짝마라 상태가 된다. 하지만 사회자 입장에선 곤란해지더라도 질문이 많은 게 좋다. 질문 없는 질의응답시간에 사회자가 얼마나 난감한지 해본 사람은 안다.

 

이번 주에 두 번의 행사를 진행할 때에는, 알고 싶고 궁금해서 하는 질문과 자기 존재를 (그 대상이 누구든) 입증하기 위해 하는 질문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후자의 경우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한 번 더 확인하려고 하는 욕구가 더 강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질문은 상대에게 과하게 공격적인 경향이 있다. , 약간의 공격성은 토론에 긴장감도 주므로 나쁘진 않다.

 

다만 몇 개의 질문을 들으며, 미국의 진보적 활동가 사울 알린스키에 대해 언젠가 트위터에서 읽은 구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알린스키는 좌파 활동가들을 교육할 때 말의 공격성,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경고한 적이 있다. 어릴 때의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신랄하고 단정적이며 상대를 후벼 파는 어투를 골라 써야 나의 선명성 또는 신념과 의견의 우월함이 입증되기라도 하는 양 생각하고 말했던 치기. 지금도 그런 못된 버릇이 다 사라지진 않아서 누구와 의견 차이가 심해질 때면 과도하게 공격적으로 상대를 몰아세우다가 아차, 싶을 때가 있다.

 

사실 개인이든 단체든 자기주장이 제일 쉽다. 뱉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정말 어려운 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의 언어로 말하며 생각을 바꿔나가는 것일 텐데... 싫은 사람을 만나거나 이견이 심해지면 표정에서부터 다 드러나는 나한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래도 소통 형 인간은 아닌 듯하니 지나치게 면전에서 '돌직구'를 날리는 버릇이라도 좀 조심해야 할 텐데 말이다. 와인 홀짝거리는 와중에 삼천포로 흘러가버린 사회자 잡생각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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