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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기고문

경험과 쓸모

sanna 2016. 10. 5. 18:30

최근 북유럽의 한 도시에 갔을 때의 일이다. 번잡한 광장의 한 구석에서 특이한 모양의 목조 건물을 발견했다. ‘침묵의 예배당이라고 한다. 대화와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바깥의 소음에서 뚝 떨어져 고요히 자기 안으로 침잠하기를 권유하는 공간. 반가운 마음에 긴 의자에 앉아 침묵의 세계로 가라앉기를 기다렸지만 바람은 금세 무너졌다. 자리에 앉기는커녕 계속 움직이며 스마트폰으로 몰래몰래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때문이었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들만 탓할 일도 아니지 싶었다. 어디를 가든, 멋진 풍경과 작품, 맛을 경험하기 전에 촬영부터 하는 게 많은 사람들의 습관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게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자신을 변호라도 하듯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남는 건 사진뿐이잖아.”

 

침묵의 예배당에서 스스로 침묵해보는 경험 대신 공간의 규칙을 어겨가며 침묵의 이미지만 찍어대던 이들도 그랬으리라.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사실, 기억할 경험자체가 없는 이미지는 나 거기 가봤다이상의 아무 것도 우리에게 남기지 못할 텐데, 우리는 기를 쓰고 뭔가 남기려 든다. 어쩌면 매사에 나한테 남는 것부터 따지는 강박이 우리 몸에 밴 것은 아닐까?

 

나한테 남는 게 뭐지?’와 같은 질문은 효율성, 가성비를 따지는 현대사회에서 모든 사고의 중심을 차지해버린 듯하다.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을 쓴 독일 철학자 나탈리 크납은 이를 오래 세월 원금과 이자의 범주로 사고해왔고, 늘 모든 가치를 그것이 앞으로 더 불어날지를 잣대 삼아 평가해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삶의 가치는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이익을 가져다주어야 가치 있는 삶이라고 믿는 사고방식, 그저 삶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은 뭔가 손해 보는 장사로 여기는 마음의 습관 말이다.

 

슬픈 일은 우리가 이처럼 미래의 이득을 잣대 삼아 현재를 평가하는 태도를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내가 일하는 단체에서 얼마 전 개최한 한국 아동의 삶의 질 연구 발표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중학생은 자신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능력과 인성을 평가하는 자료로 쓰이는 생활기록부에 잘 기록되기 위한 생기부 인생을 살아간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중학생들이 왜 불행한지를 설명하던 그 학생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잊히지 않는다.

 

생기부 인생을 사는 우리들에겐 항상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일 덜 급하고 점수화되지 않을 일들이 가장 먼저 저희들의 인생에서 지워집니다. 어쩌면 행복은 지워진 일들 속에 있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중학생들 사이에서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한다. 오로지 미래에 남는 것’ ‘이득을 따지는 환경에선 미래의 결과로 환산할 수 없고 생기부에 기록할 수 없는, 벚꽃 날리는 봄날의 추억 따위는 가장 먼저 지워질 것이다. 그 학생 말마따나 어쩌면 행복은 그 지워진 일 속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침묵의 예배당에서 시작된 몽상이 교육제도까지 너무 멀리 뛰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지금 이 순간만 경험할 수 있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대신 미래에 무엇이 남는지만 따진다면 행복한 미래를 말하면서 정작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현재의 행복을 빼앗고 말지도 모른다. 그 위기감은, 몽상이 아니라 현실의 감각으로 여전히 생생하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

 

( * 월간 에세이 10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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