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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랑탕 트레킹을 다녀온 지 6일째. 틈틈이 해온 여행의 뒷정리를 오늘에야 마쳤다. 내 스마트폰으로 찍은 다른 사람들 사진을 보내주고, 등산복과 옷가지들, 배낭, 신발을 재질의 속성에 맞게 세탁하고 발수제를 뿌려 정리해두고, 빌려온 침낭과 배낭을 탈탈 털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돌려줬다. 뒷정리는 내 몸도 예외가 아니어서, 산에선 아무렇지도 않던 허리와 다리가 한국에 돌아온 뒤에야 아프고 당긴다. 매일 스트레칭을 하며 주의 깊게 지켜보는 중이다.

마음의 뒷정리도 필요할까. 별 생각이 없는 상태로 걸어서 딱히 느낀 점도, 깨달은 점도 없다. 혼자 걸었던 시간도 많았지만 내 마음이 그리 수다스럽지 않아서 되레 홀가분하니 좋았다. 그래도 가기 전에 고민스러웠던 선택의 방향 하나를 정했고 돌아와서 결론을 상대에게도 전했으니, 마음이 저 혼자 분주히 일을 하기는 한 모양이다.

1월 20~30일 네팔 여행. 그 중 6일을 히말라야에서 걸었다. 해발고도 1410m인 샤브루베시를 출발해 4200m의 초원지대인 랑시샤 카르카까지 다녀왔으니 2790m를 나흘간 올라갔다가 이틀 만에 내려왔다.  고산증은 겪지 않았고 추위도 예상만큼은 아니었다. 밤엔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갔지만 뜨거운 물을 담은 물통을 안고 핫팩 하나를 붙이고 겨울침낭에 들어가면 따뜻했다. 낮엔 쉴 때를 제외하곤 패딩을 거의 입지 않을 만큼 화창했다. 되레 트레킹을 며칠 더 하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짧아서 아쉬웠던 여행이었다.

나이와 직업이 모두 다른 여성들이 모여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함께 걸었다. ‘네팔은 여전히 아름답다’ 캠페인 진행자와 여성들끼리의 여행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 주최한 여행길이었다. 각자 알아서 카트만두에 모인 뒤 시작되는 여행. 2년 전 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사라져 버린 랑탕을 지나는 트레킹 코스를 일부러 골랐다. ‘기억의 시간을 함께 걷다’라는 주제로,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이 땅 아래 묻혀 있는 곳이지만 다시 살아가기 위해 삶을 시작한 사람들 또한 있는 곳” “아픔과 희망이 공존하는 길”을 함께 걸었다. 예상할 수 없었던 사고로 먼저 떠나버린 사람들을 기억하며, 어쩔 수 없이 세월호를 떠올리며 여행의 마지막 날엔 카트만두의 티벳사원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기억하는 촛불을 켜기도 했다.

매일 오전 8시에 출발해 오후 5시 정도까지 걸었는데 얼음과 눈을 밟은 적은 거의 없고 거개가 흙먼지길이었다.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펼쳐진 초원지대가 나는 가장 좋았다. 숙소가 있던 걍진곰파 (해발 3830m)에서 랑시샤 카르카 (4200m)를 왕복하며 약 8시간 반 걸었다. 산의 정상을 오르는 등반 (mountaineering)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며 산길을 따라 걷는 트레킹 (trekking)의 이미지에 가장 잘 부합한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설산을 바라보며 대평원 같은 느낌의 대지를 하염없이 걸어갈 수 있어서, 때로 홀로 걸으며 한 점에 불과한 내 존재의 사소함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어서 나는 이 길이 좋았다. 큰 점프 대신 작은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듯 땅을 꾹꾹 찍어 밟으며, 돌아가서도 이렇게 한 발씩 천천히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고산지대보다 트레킹 출발 지점과 카트만두 사이 깎아지른 계곡 위의 비포장길을 지프를 타고 구불구불 오고 갈 때가 더 아찔했다. 안전벨트도 고장났고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길에서 차바퀴는 휙휙 미끄러지고, 굴러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일 텐데.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순전한 우연으로만 느껴지는 상황. 트레킹 도중 랑탕 마을을 지나면서도 그런 느낌이었다. 지진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마을.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산사태의 여파로 지금도 그 마을 앞쪽 산엔 나무들이 가로로 누워 있다. 당연한 삶을 살고 우연히 죽는 게 아니다. 삶이 우연이고 죽음이 필연이다.

낮에 설산을 바라보며 걷고 밤엔 쏟아지는 별들을 보았다. 단순한 생활. 그리고 여행 기획자가 같이 읽고 싶다고 나눠준 앨리스 메니엘의 ‘삶의 리듬’에 대한 글.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의 운율은 있다. 생각의 궤적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주기성이 마음의 경험을 지배한다. 거리는 가늠되지 않고, 간격은 측량되지 않으며, 속도는 확실치 않고, 횟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되풀이되는 것은 분명하다. (...) 행복은 사건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 있다. (...) 기쁨은 우리에게 오는 길에 이미 우리를 떠난다. 우리의 삶도 차고 질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삶의 리듬에 따라 깨고 쉴 것이다. 모든 것--태양의 공전과 출산의 주기적 진통까지--을 지배하는 법칙에 우리도 지배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 앨리스 메이넬 ‘삶의 리듬’ 중에서 -

피할 수 없는 삶의 주기성과 리듬을 이제는 나도 조금은 안다. 중단 없는 행동과 열망 같은 건 없다. 멈춤과 후퇴, 그리고 다시 나아가기, 다시 멈춤의 반복. 내가 들어선 경계와 중립지대를 얼른 벗어나는 것보다는 내 운율에 충실하게 머무르기를 더 바란다. 그 리듬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앞일을 아직 모른다는 것, 불확실성이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도 얼마만의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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