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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 조지프 캠벨.

 

돌이켜보면 별 것도 아닌 일로 마음이 캄캄하던 때, 이 책을 읽었다. 지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얻은 책이다.

비교신화학자인 저자는 세계의 신화를 수집해 천의 얼굴을 가졌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영웅의 여정을 탐구한다. 어느 나라에서건 신화 속 영웅의 모험은 대체로 분리, 입문과 시련, 귀환의 단계를 따른다. 많은 문화에서 성인이 될 때 치르는 통과의례의 단계와도 유사하고 출생과 성장 죽음으로 이어지는 개인의 삶과도 닮았다. 그런 에너지의 순환을 우주의 원리라고 바라보는 인류의 누적된 지혜가 집단적 기억이라 할 신화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저자가 섬세하게 대조해 보여주는 신화 속 영웅의 여정은 결코 녹록치 않다. 영웅적 귀환이 서릿발 같은 증오에 맞닥뜨릴 때도 많다. 남의 뒤를 따라가는 영웅은 곧잘 길을 잃는다. 아서왕의 전설에서 성배를 찾으러 떠나는 기사들은 가장 어둡고 길도 나있지 않은 곳을 골라 숲으로 들어갔다. 영웅은 미지의 어둠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괴물과 싸우고 자신의 미궁을 탐색해야만 자기 삶에서 빠져 있던 것을 찾아낼 수 있다.

저자는 신화와 동화의 고유 사명은 희비극이 뒤섞인 삶의 뒤안길에 깔린 위험과 그 길을 지나는 기술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영웅의 모험은 결국 마음의 여정이다. 비현실적인 신화 속 괴물과 이무기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수없이 겪는 근심과 불안, 갈등과 유혹이고 영웅은 우리 내면의 힘을 상징한다. 영웅의 여정은 각자 자기 내면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끌어내라는 권유다.

나는 지금도 사소한 일로 주저앉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곧잘 이 책을 떠올린다. 내 삶 역시 신화 속 영웅의 여정 같은 순환의 흐름 속에 있으며, 헤맨다고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추스린다.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처럼, 이 책도 한동안 내게 마음의 길을 좇아 낯선 세계로 건너갈 힘을 갖게 해준 실타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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