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 주, 네팔에 다녀왔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다시 차를 타고 1시간을 가는 시골인 반케 지역 나우바스타 마을에 새로 지은 초등학교를 보러 나선 길. 내가 일하는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의 소개로 이 학교를 지은 한국의 후원자를 모시고 다녀왔다.
내게는 특별했던 출장이다. 모시고 간 한국의 후원자가 내 부모님이셨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5년 전 세상을 뜬 내 남동생이 후원자이다. 아들이 남긴 유산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이 돈을 의미 있게 쓸 곳을 찾고 싶어 하셨고, 내가 일하는 단체를 통해 연이 닿아 네팔에 초등학교를 지었다.
아래는 새로 지은 학교의 교실과 놀이터 풍경.
학교 완공 소식을 듣고 부모님은 기뻐하셨지만, 직접 보러 가실 계획까진 없었다. 아버지는 생색내기 방문은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셨고, 어머니는 몸이 편찮으셨다. 그런데 사양하고 말기엔, 후원자를 만나고 싶다는 주민들의 요청이 내가 약간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간곡했다.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너져 가는 흙집 학교로는 더 이상 안되겠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새 학교를 지어줄 후원자를 찾으려고 흙집 사진을 찍어 도시로 나가 여러 단체나 기업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외진 곳이고 최하층 계급이라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하기를 1년 반. 마침내 먼 나라의 낯선 후원자를 만난 거였다. 설움에 북받쳐 그간의 과정을 설명해주던 마을 아저씨의 격정적인 말투와 몸짓만 보아도 1년 반의 고생이 짐작 가고도 남았다. 이런 경우가 이례적이었던지, 학교 준공식엔 네팔의 4개 매체가 취재를 하러 와서 부모님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학교 준공식은 아예 마을 잔치였다. 주민들이 환영의 뜻으로 앞다퉈 이마에 붉은 염료인 티카를 발라주는 바람에, 부모님 얼굴은 붉은 티카 범벅이 되었다. 축하 인사를 하던 아버지는 아래 대목을 읽던 도중 목이 메었던지 자주 말씀을 멈추셨다.
"지금 이렇게 학교 신축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우리가 왔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 아들의 심부름을 대신 한 것입니다. 이 학교의 신축 기금을 후원한 김인배는 우리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아들 김인배는 4년 5개월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중략>...우리 아들 김인배도 이렇게 자신이 남긴 유산으로 네팔의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을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축사를 영어->네팔어로 통역해주던 세이브더칠드런 지역사무소장은 위의 대목을 통역하던 도중 끝내 울어버렸다. 나중에 자리로 돌아와 내게 "통역이 차분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말할 때에도 그의 얼굴은 눈물범벅인 채였다.
위의 사진은 아이들의 축하 공연 (왼쪽), 준공식에 모인 사람들과 기념 촬영
동생이 지은 학교를 직접 본 것이상으로 뿌듯한 사실은 이 학교가 교육청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된 거였다. 지역 교육청이 다음달에 1개 교실을 더 짓고 내년에 1개를 더 지어 5학년 (네팔의 초등학교는 5학년제다) 까지 학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교사들 급여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지역의 학교였는데, 동생의 후원이 학교가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셈이다. 배우지 못하면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학교라서 운영위원회에 주민들의 참여도도 높았다. 새 건물을 지을 때에도 주민들은 학교 건축위원회와 구매위원회를 만들어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고 한다. 주민들 스스로 '우리 학교'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그게 보기 좋았다.
이 학교의 이름인 스리딜람은 정부 군과 마오이스트의 내전 와중에 희생된 아이인 딜람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딜람과 김인배. 지금은 세상에 없는 소년과 청년. 그 둘의 마음이 만나 127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가 지어졌다. 세상의 일들은 이렇게 연결되기도 한다. 여행 기간 내내 해열제와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던 어머니는 학교와 아이들을 보고 계속 "참 감사하다"고 하셨다. 이런 인연에, 나도 깊이 머리를 숙인다.
'그(녀)는 멋졌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네팔에 지은 학교 (26) | 2012/04/29 |
|---|---|
| 어머니의 사진들 (13) | 2011/09/19 |
| 아버지의 꽃 컵과 채송화 (12) | 2011/08/22 |
| 하느님께 빌 뿐입니다. . . 김진숙 (4) | 2011/07/09 |
| 정유정 작가를 만나다 (9) | 2011/06/05 |
| 음악의 안부 (9) | 2010/08/15 |
| 일상의 낯선 풍경 (23) | 2010/03/13 |
| 예쁜 비밀 (25) | 2009/06/07 |
-
nabi 2012/04/30 12:56
산나님,
"...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사도가 빌립보교회를 축복했듯이 나도 산나님 가족을 위로하고, 축복하고 싶어요.
이 글을 읽으며 감사한 마음 가득했습니다. -
-
lebeka58 2012/05/01 10:28
드릴 말씀을 잊을 정도로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어요. 글을 읽어가면서 깜짝 놀랐어요.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가슴으로 전해집니다. 또 그 사랑이 큰 기적을 낳을 거란 생각입니다.
-
-
sanna 2012/05/01 16:28
네 말듣고 우편물추적조회해보니 4월25일 인천공항에서 운송사 인계했다고 나오네.
주말이 꼈으니 시간이 좀 걸릴 듯.
벚꽃엔딩은 수백번을 따라 불러서 가만 있어도 머릿속에서 윙윙 울려 ^^
금O는 내가 봐도 잘한 듯..오죽했으면...^^;
-
-
-
-
룰루룰루 2012/05/02 12:53
글 읽다가 울컥해 저도 윗분처럼 울고 말았네요.
산나 님과 부모님, 그리고 먼저 간 산나 님 동생 분께 박수를 보냅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암울했는데
산나 님 글 덕분에 정화된 거 같아요.
감사해요. 복 받으실 거에요.
-
권고마 2012/05/02 16:09
저두요.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놀라면서.
네팔 분들의 이야기도 또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런 마음이 이렇게 와 닿아서. 정말 아주 중요한 한걸음, 이구나 싶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
-
-
-
-
sanna 2012/05/16 23:34
간만에 와서 댓글 보시를 하고 가셨구먼~ ^^
히말라야는 좋던가?
아...정말 거기 트레킹가려다 못간거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ㅠ.ㅠ
-
하루에 한 두 개씩 달리는 스팸 댓글 때문에 못살겠다...
한동안 러시아어 스팸 댓글이 방명록에만 달리더니, 그 다음엔 중국어 스팸,
요즘은 한글 스팸이 글의 댓글 창에만 집중적으로 붙는데, 갈수록 수법도 교묘해져서 바로 위에 달린 댓글에서 몇 단어씩 복사해서 갖다 쓴다.
블로그 문을 닫게 된다면, 이유의 절반은 스팸 댓글 때문이다.
나만 겪는 문제는 아닐텐데...티스토리는 이런 거 안막아주고 뭐하나...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팸이 싫어요 (2) | 2012/04/19 |
|---|---|
| 산티아고, 파타고니아, 여기 (6) | 2012/03/16 |
| 청소 중 잡담 (7) | 2012/02/20 |
| 수첩을 정리하다가 (0) | 2012/02/17 |
| 색다른 밸런타인데이 체험 (0) | 2012/02/14 |
| "초콜릿보다 밥이다" 행사에 블로거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6) | 2012/02/09 |
| 새 수첩과 올해의 말 (8) | 2012/01/02 |
| 집앞 감나무 2 (3) | 2011/11/05 |

Prev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