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 장석남 '水墨정원 9 - 번짐' - --------------------------------------------------------------------------------------------------------------- 그렇게 번진 날. 6년 전 오늘 떠났으나, 번져서 내가 되고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되고..
4월 둘째 주, 네팔에 다녀왔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다시 차를 타고 1시간을 가는 시골인 반케 지역 나우바스타 마을에 새로 지은 초등학교를 보러 나선 길. 내가 일하는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의 소개로 이 학교를 지은 한국의 후원자를 모시고 다녀왔다. 내게는 특별했던 출장이다. 모시고 간 한국의 후원자가 내 부모님이셨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5년 전 세상을 뜬 내 남동생이 후원자이다. 아들이 남긴 유산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던 부모님이 돈을 의미 있게 쓸 곳을 찾고 싶어 하셨고, 내가 일하는 단체를 통해 연이 닿아 네팔에 초등학교를 지었다. 처음 소개를 받을 때부터 이 학교는 여러 모로 마음이 쓰였다. 마을 사람들은 정부 군과 마오이스트 사이에 10년 가량 이어진..
인배야. 어제 겨울 산에 혼자 올랐다. 쨍하게 시린 공기가 내 안으로 스며들어와 몸속을 맴도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더구나. 막혀있던 것이 툭 트이는 기분. 산에 오길 잘했구나, 생각했어. 인적이 끊긴 등산로에 낙엽이 쌓여 드러눕고 싶을 만큼 푹신하더라. 이파리를 벗어버린 길고 가느다란 나무들이 정직해보였다. 중턱에 올라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봤어. 가만히 널 불러보았다. 인배야, 잘 지내니? 그곳은 춥지 않니? 우린 모두 잘 지내려 애를 써. 그러니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고 부디 편히 쉬렴…. 네가 간지도 벌써 석 달째에 접어드는구나. 전화를 받고 미친 듯이 달려가던 그 가을날, 괘종시계의 추가 멈추듯 내겐 모든 게 정지되어 버렸다. 그날 이후 벌어진 일들이 아득하고 나쁜 꿈처럼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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