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 씨밖에 없네요." - 영화 '시'에서 창작을 가르치던 김용탁 시인이 -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심야 극장에서 보다. 관객이 채 10명도 안되었는데, 엔딩 크레딧에서 덮칠 듯 밀려오던 물소리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감정을 자극하는 배경음악 한 소절 없는데도 감정을 압도하는 영화, 주인공 양미자(윤정희)가 몸으로 써낸 시의 처절함, 아름다움, 그 매서운 윤리적 질문 때문에 가볍게 툭툭 털어버릴 수 없는 영화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자꾸 생각하게 만들고 무언가를 말하고 싶게 만든다. 뭔가 써보려고 꼼지락거렸지만....걍 포기하고 '시'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다가 가장 공감가는 글을 발견. 문학평론가 신형철씨가 한겨레21에 쓴 글. 시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2'에서 - 영화를 보고 1주일쯤 지난 뒤 위의 내레이션을 찾고 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던 대사와 달랐다. 엉뚱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위의 내레이션이 "그때 우리는 과연 무슨 짓을 한 것일까"로 남아 있었다. 그의 죄보다는 우리의 죄로 더 선명하게 마음에 남은 영화라서 그랬던 걸까. 이 영화를 볼지 말지 한참 망설였다. 2003년 입국한 송두율 교수가 북한 조선노동당 서열23위 김철수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해방이후 최대거물간첩'딱지를 붙이더니 급기야 가짜교수의혹까지 제시하며 미친 듯 몰아붙이던 검찰과 언론의 마녀사냥이 못마..
“잘 생각해봐. 소중한 추억이나 중요한 순간에, 혼자였어?” ('인 디 에어' 주인공 라이언이 결혼을 망설이는 매제에게) 이 영화, 이렇게 쓸쓸할 줄 몰랐다. 지난 주말에 마감해야 할 일로 며칠 내리 밤을 새면서, 손을 털면 가장 먼저 할 일로 찍어둔 게 ‘인 디 에어(Up In the Air)’를 보는 거였다. 내 눈엔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 조지 클루니가 2시간 내내 나온다니, 절대 놓칠 수 없는 영화다. 극장에 가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이 얼마만의 일이던가! ‘해고 전문가’라는 희한한 직업을 갖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라이언은 1년에 322일을 여행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기내 조명, 공항의 싸구려초밥에서 안정을 느끼는 남자다. 배낭을 무겁게 하는 온갖 관계, 소유물들을 다 태워버리고 매..
“죽으면 끝. 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 영화 ‘박쥐’에서 - 영화 ‘박쥐’를 보기 직전에 읽어서 그런지, 영화관에 가면서 블로그 이웃인 inuit님이 쓴 한 줄짜리 촌평 의 앞머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우가 닭 먹는 게 죄야?” 음, 그러니까 ‘박쥐’는 닭 먹으면서 죄책감 느끼는 여우, 죄가 아니라고 우기며 마구 닭을 먹는 여우, (죄의식이 있든 없든) 닭 먹고 사는 여우에게 돌 던지는 사람들, 아니 불쌍한 닭들, 뭐 그런 동물 농장이 무대인갑다…. 신부가 뱀파이어가 되어 친구의 아내를 탐한다는 설정 정도는 미리 알고 있었으니, 닭 먹으면서 죄책감 느낄 여우는 당근 이 신부이겠고, “여우가 닭 먹는 게 죄냐”고 우기는 자는 누구일지 궁금했다. (알고 싶으면 영화를 보시라~~~) 영화를 보는 ..
“의미 있게 사는 게 미친 거라면 난 얼마든지 미칠 거예요.”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에이프릴의 말)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불안해보였다. 그녀에게 설득당한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둘이서 이야기할 땐 들뜬 표정이었지만 친구들 앞에서 느닷없이 파리로 떠날 거라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을 거라고 말할 때 부부의 표정은 불안하고 군색했다. 친구들은 황당해하면서도 누구나 그렇듯 우정과 시샘이 뒤섞인 반응으로 약간은 부러워했고 약간은 멸시했다. 다 청산하고 떠나겠다는 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정신병원에서 휴가를 나온 미친 사람 밖에 없었다. 하지만 떠나야 할 이유를 들자고 치면 끝도 없듯,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 또한 끝이 없다. 아내의 임신, 승진, 거액 연봉의 제안, 여기서도 파리에서..
“이건 아니잖아~ ㅠ.ㅜ” - 영화 ‘데쓰 프루프’에서 커트 러셀이 울상이 되어 - 사이코 변태 마초 악당 커트 러셀이 징징대며 저 웃찾사스러운 대사를 내뱉을 때 어찌나 웃기던지! 소도시 심야영화관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를 봤습니다. 역시 타란티노! 별 생각 없으나 무지 재미있는 싸구려 펄프 픽션 한 권 읽은 기분입니다. 아, 당연히 성인용이구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지루하다가 끔찍하다가 약간 긴장되다가 다시 지루해지려고 하는 찰나 심장박동이 치솟으면서 손에 땀을 쥐다가 점점 황당해지면서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리는 영화'입니다. (음....무슨 한마디가 이렇담......-.-;) 허름한 동시상영관에서 킬킬대며 보면 딱일 영화이니 이 영화에 대한 글들은 가급적 읽지 말고 그냥 보세요...
케이트: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엉망진창으로 하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무슨 일이 있든 언제나 네 곁에 있으리라는 건 약속할게. 조이: …이모?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엉망으로 하진 않아요. - 영화 ‘사랑의 레시피’에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아마도) 30대 싱글여성이 언니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어린 조카를 키우게 됐다. 성질이 불같고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드높은 완벽주의자이지만, 선량한 사람이며 조카에게 정말 잘 해주고 싶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질 않고, 때론 조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 같은 걸 깜빡 잊어버리기도 한다. 버릇이 되지 않아서다. 너무나 잘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질 않으니 자신이 모든 걸 망치고 있다고 자책하는 이모에게 조카는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잘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
“우리가 어디 뜻보고 삽니까. 그냥 살지예” - 영화 ‘밀양’에서 종찬의 대사 - (스포일러 없습니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 고통이라니요. ‘밀양’을 보고나면, ‘밀양’에 대해 말하려면, 난감해집니다. 화창한 날, 구질구질한 내 삶도 화사해질 수 있다는 어이없는 기대를 품어보기도 하는 날, 이렇게 피 흘리는 상처라니요. 예고없이 덮쳐온 고통 앞에서 ‘나한테 왜?’라는 질문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밀양’은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각자가 겪은 고통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요. 비교할 수도 없는 거구요.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은 사람의 고통을 가스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텅 빈 공간에 가스를 주입하면 가스는 공간이 크든 작든 그 공간을 구석까지 균일하게 채운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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