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랑탕 트레킹을 다녀온 지 6일째. 틈틈이 해온 여행의 뒷정리를 오늘에야 마쳤다. 내 스마트폰으로 찍은 다른 사람들 사진을 보내주고, 등산복과 옷가지들, 배낭, 신발을 재질의 속성에 맞게 세탁하고 발수제를 뿌려 정리해두고, 빌려온 침낭과 배낭을 탈탈 털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돌려줬다. 뒷정리는 내 몸도 예외가 아니어서, 산에선 아무렇지도 않던 허리와 다리가 한국에 돌아온 뒤에야 아프고 당긴다. 매일 스트레칭을 하며 주의 깊게 지켜보는 중이다. 마음의 뒷정리도 필요할까. 별 생각이 없는 상태로 걸어서 딱히 느낀 점도, 깨달은 점도 없다. 혼자 걸었던 시간도 많았지만 내 마음이 그리 수다스럽지 않아서 되레 홀가분하니 좋았다. 그래도 가기 전에 고민스러웠던 선택의 방향 하나를 정했고 돌아와서 결론을 ..
직장을 그만둔 뒤 만나는 사람들이 "그래서 이제 뭐할 거야?" 라고 물을 때마다 나도 모르겠다고 답하는 나날들. 가고 싶은 모호한 방향은 있고 그리로 가기 위해 뭘 할지 뜬구름 잡는 공상은 중구난방 피어나지만, 구체적인 '무엇'은 나도 모르겠다. 해볼 수 있겠다 싶은 걸 조금씩 실험해보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히말라야 트레킹 다녀온 뒤에 생각하자고 유보해둔 상태다. 대신 '무엇' 말고 '어떻게'는 자주 생각한다. 불확실함에 대처하고 내 삶의 틀을 다시 세우는 과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 지금 당장 내게는 '무엇'보다 그 '어떻게'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정한 첫 번째 '어떻게'는 매일의 의례를 만든 것이다.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무수한 사회에서 사람이 성년이 되는 전환의 시기에 겪는 위험들..
올해 내게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다가 오래 전 인류학 수업 때 들은 liminality 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의 지대. 삶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기. 정해진 것 없이 모호하고 불투명한 시‧공간의 지대. 오래 전 수업시간에는 성년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의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의 하나로 배웠지만,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고민을 하던 당시의 내겐 스스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은유로 읽혀서 머릿속에 오래 남았나 보다. 다시 올해 약간 갑작스럽게 전환의 시기에 처하게 되면서,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의도하지 않아도 경계의 지대를 지나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런 liminality의 상황에 처할 때만큼 삶은 ‘과정’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때가 없다. 더불..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 속에 있는 동안에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사건이 삶에 더해질 때마다 줄거리를 계속 수정할 뿐이다. 길을 바꾼 사람들은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여기는 대신 그렇게 이야기를 고쳐 쓰며 열린 태도로 살아가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곧게 뻗은 직선형 계단 대신 빙빙 도는 나선형 계단에 올라 거듭되는 부침(浮沈)을 긍정하면서도 점점 나아지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는 냉소를 거부하고 계속 성장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다. 성인의 삶에 ‘성장’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다. 길을 바꾼 우리는 계속 자라고 싶은 사람들이다.- 내 책 ‘내 인생이다’ 에필로그에 쓴 마지막 문단.# 지난달 말일자로 직장을 그..
하나의 주제로 잡지 한 권을 꾸미는 독특한 계간지 [1/n]의 여름호 주제는 '환승'입니다. 비행기나 버스를 갈아타듯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을 주제로 한 권을 꾸몄는데요. 전체 책의 구성과 디자인이 재미있네요. 각 꼭지 글들도 좋습니다. 방금 전에 손에 든 잡지를 밑줄 그어가며 읽었어요. (위 그림을 클릭하면 인터넷 서점에서 목차 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버스 터미널에서'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답니다. * * * * * 버스 터미널에서 얼마 전 나는 17년 넘게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렸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었지만 불안했다. 이 장거리 여행길에, 갈아 탈 버스가 있기나 할까……. 하지만 이대로 더는 가고 싶지 않아서 큰 숨을 들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했던 대로 내가 탈 버스..
잔인했던 5월. 벌써 1년.... 지난해 이맘 때, 유난히 죽음의 소식이 잇따랐다. 모두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계속 생기냐"며 불안한 안부를 주고 받을 만큼....병마와 싸워 이겨주기를 바랐던 장영희 교수부터, 친구였던 영화사 아침 대표 정승혜씨, 그리고 지난 해 오늘, 도무지 현실이라고 믿겨지지 않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까지... 눈에 핏발이 선 채 밤을 꼬박 새운 날도 부지기수고, 울음을 터뜨리며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는 바람에 꼬리뼈가 부러지는 황당한 해프닝도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 인생의 방향을 트는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일련의 죽음들이 던진 질문의 영향도 컸다. 맥락은 모두 달랐지만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이들은,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었던 질문과 대면하게 했다. 너는 어떻게 살 것이..
[중년의 터닝포인트] 정유정 씨-간호사에서 소설가로 Before: 간호사 After: 소설가 Age at the turning point: 35 # 80년 5월, 광주에 공수부대가 들어오던 날이었다. 방 10개가 주르륵 붙어있던 한옥에서 하숙을 하던 대학생과 어른들은 출정식이라도 하듯 함께 모여 밥을 먹고, 한 명 뿐이던 여고생에게 “집 잘 보라”고 당부하더니 모두 굳은 얼굴로 떠났다. 밤새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던 여고생은 대학생이 묵던 옆방에 들어가 책을 하나 골랐다. 재미없는 책을 보면 잠이 올까 싶어 고른 책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그 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는 모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총소리가 그쳐 있었다. 어른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불빛이 새어..
[중년의 터닝포인트] 이인식 씨- 대기업 상무에서 과학칼럼니스트로 Before: 대성그룹 상무이사 After: 과학칼럼니스트 Age at the turning point: 46 지금이야 ‘평생직장’이 낡은 개념이 되었지만 18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평생직장 시대’에 42살에 큰 기업체 상무가 될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제 발로 걸어 나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칼럼니스트인 이인식 씨(64)를 이 시리즈의 인터뷰 대상으로 떠올린 이유는 그래서였다. 금성반도체(현 LG 정보통신)에서 최연소 부장이 되었고 대성그룹 상무이사를 지낸 그는 중년의 절정인 46살에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다. 인생 2모작, 3모작이 낯설지 않은 요즘에도 쉽지 않을 결단이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지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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