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고 하기엔 추운 영하 7도의 날씨이지만 어쨌든 3월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시작의 달. 대학에 애매하게 한 발 걸치고 있는 내게도 방학이 끝나고 봄 학기가 시작되는 달. 수업계획서를 계속 수정하고 새로 추가한 교재를 뒤적이며 올해 만날 학생들을 상상해보는 중이다. 날이 춥고 바람 소리는 요란해도 봄 기운을 들이고 싶어 하이쿠 달력을 교체. 2월의 하이쿠는 집안을 오가며 눈에 띌 때마다 어쩜 저렇게 절묘한 표현을 했을까 탄복했더랬다. “별이 날아와 품 속에 들어오는 밤 추위구나” 별이 날아와 품 속에 들어오다니. 겨울 끝자락인 2월 추위의 선득선득하고 차가운 느낌이 곧장 몸에 전달되게 만드는 표현이 아닌지. 2월엔 기온이 높아져 두툼한 패딩을 벗게 됐지만 공기의 찬 기운은 가시질 않고 되레 옷 속까지 ..
2020년 9월 8일 과제 하나를 내려놓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끝낼 때 자주 떠올렸던 글. 그리고 지금도. 소설가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 중에서; “그것보다는 늘 지고 있다는 느낌이 어렵습니다.” 모든 곳이 어찌나 엉망인지, 엉망진창인지, 그 진창 속에서 변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또 얼마나 잦게 좌절되는지, 노력은 닿지 않는지, 한계를 마주치는지, 실망하는지, 느리고 느리게 나아지다가 다시 퇴보하는 걸 참아내면서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지 현재는 토로하며 물었다. …...(중략)......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잊어버리고 있던 블로그가 문득 생각났다. 아직 살아는 있나 싶어 주소 www.bookino.net 을 치니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다는, 그런 IP를 찾을 수 없다는 안내 문구가 뜬다. 엉? 왜 그러지? 하다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메일. 몇달 전에 블로그 주소와 관련한 뭔가의 만료시한이 곧 다가오니 연장을 원하면 어디로 가서 뭐 하라는 안내 메일을 본 것도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개씩 쏟아지는 스팸메일더미 속에서 그걸 읽고 아, 그런가, 나중에 해야지, 하고 잊어버렸는데, 내버려둔 사이 시한이 지나 저 주소가 사라져버린 거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부터 쓰던 주소인데 아쉬워서 되살려볼까 싶어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그냥 포기했다. 간단히 검색해봤는데 확장명만 다를 뿐 같은 이름의 주소들이 이미 많아 어느 소도시에나 ..
오래되고 고요한 물건들을 보고 싶어 중앙박물관에 갔다. 신안해저문화재 흑유자 특별공개전. 695년 전 침몰한 무역선에 실려 있던 찻잔과 다기들. 그 시절에 유행했던 거품을 내는 차에 어울리는 먹빛의 찻잔들. 종이를 잘라 장식한 치자꽃 무늬며, 1300도의 고온에서 흘러내린 유약이 만들어낸 토끼털 무늬며. 거의 700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칠기처럼 윤기가 흐르는 자기들을 들여다보면서 공들여 이 물건들을 빚어냈을 도공들을 상상한다. 심한 두통으로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한 트레킹을 취소한 주말, 김서령 작가의 부음을 들었다. 오래 전 내가 일했던 신문사에 실린 칼럼으로 처음 알게 됐던 사람. ‘생활칼럼니스트’라는 필명, 따뜻하고 담백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무심한 듯 마음으로 스며드는 글이랄까. 그의 글이 좋..
며칠 전, 반응이 좋은 디지털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듀서가 콘텐츠 제작 비법(!)을 설명하는 것을 듣다가.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의 요지는 이랬다."계속 뭔가를 생각하고 머릿속에 넣어두면 언젠가 그것들이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이 순간을 맞이하려면 매일 생각하고 끊임없이 왜?를 묻는 수밖에 없다" 평범한 말이었는데, 갑자기 그 말의 꼬리를 붙잡고 몇 년 전 창조의 절차에 대한 짤막하고 인상적인 글을 읽은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름. 오늘 갑자기 다시 생각이 나서 무려 1시간이 넘는 검색 노가다를 통해 그 글을 찾아냄. (장하다, 나여!)Brain Picking 에 2012년에 올라온 글이로군.http://www.brainpickings.org/2012/02/24/william-gibson-perso..
할 수 있을 땐 안하고, 하기 어려울 때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뽀. 글을 쓸 시간이 많을 땐 꼭 써야 하는 글 이외엔 거의 쓰지 않았다. 안 쓰는 핑계는 많았다. 바쁘다 (지금에 비하면 엄청 한가했는데), 쓸 게 없다 (정말?), 시간을 다른 더 유익한 일에 쓰자 (그런 적 없었다 ;;), 돈도 안 되는 글을 뭐하러 (노회해졌군) 등등....그런데 글 쓸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니, 글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몹시 위기인 것처럼 느껴지고. 뭔가 써야 할 것같고, 그래야 내 중심이, 근본이 잡힐 것같은 기분까지 드는 거다. 사실 써보자 생각하니 딱히 쓸 게 없긴 하다만. 그냥 되는대로. 새로운 일, 성인이 된 이후 네번째 일을 시작한지 한 달쯤 되었다. 호기심을 잔뜩 품고 시작했는데, 한 달의 ..
전시된 뜨개작품의 톡톡한 재질을 만져도 보고 부드러운 표면을 쓰다듬어도 보고 대형 뜨개러그 위에 앉아도 본다. 목도리와 가디건, 지갑, 가방을 뜨개질로 만든 엄마들이 이 작품을 누구한테 왜 주고 싶은지 쓴 사연도 찬찬히 읽어본다. 그렇게 걷다보면 "옆도 뒤도 돌아보기 무서웠던 때 뜨개바늘을 잡고 직진만 했던" 엄마들이 그 보들보들한 목도리와 방석, 컵받침 등에 촘촘히 녹여 넣은 고통, 그리움, 애달픔이 온 몸으로 전해져온다. 보드라운 방석들을 쓰다듬다가 옆 벽면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속마음 말들을 읽다 보면, 울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다. 세월호 엄마들의 뜨개 전시 '그리움을 만지다' (~19일, 서울시민청 갤러리) 는 컵받침 2800개가 별처럼 공중에 걸개로 떠 있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뜨개작품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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