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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청개구리 심뽀

sanna 2018. 3. 1. 12:55


할 수 있을 땐 안하고, 하기 어려울 때 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뽀. 
글을 쓸 시간이 많을 땐 꼭 써야 하는 글 이외엔 거의 쓰지 않았다. 안 쓰는 핑계는 많았다. 바쁘다 (지금에 비하면 엄청 한가했는데), 쓸 게 없다 (정말?), 시간을 다른 더 유익한 일에 쓰자 (그런 적 없었다 ;;), 돈도 안 되는 글을 뭐하러 (노회해졌군) 등등....
그런데 글 쓸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니, 글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몹시 위기인 것처럼 느껴지고. 뭔가 써야 할 것같고, 그래야 내 중심이, 근본이 잡힐 것같은 기분까지 드는 거다. 사실 써보자 생각하니 딱히 쓸 게 없긴 하다만. 그냥 되는대로. 

새로운 일, 성인이 된 이후 네번째 일을 시작한지 한 달쯤 되었다. 
호기심을 잔뜩 품고 시작했는데, 한 달의 시간은 시작하는 사람의 설렘보다 걱정이 앞선 채 지나간 듯. 주로 혼자서 이런저런 일들을 파악해야 했던 상황을 비롯하여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절감한 것은 나는 확실히 과정을 감정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정해진 게 없고 앞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종류의 일에서 과정은 늘 그러했다. 뭔가 확실한 상태로 차곡차곡 절차만 밟으면 되는 과정이 있기나 했던가? 늘 과정은 불투명하다. 그럴 땐 어떻게 했더라? 큰 결심을 하지 않아도 해볼 수 있는 작은 단계로 일을 쪼갰다. 그리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엄청 어려워보였던 일들도 어느새 하고 있곤 했다. 
지난해 진행해서 다행히 망하지 않았던 프로젝트를 할 때도 그랬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면서도, 내 뇌는 손가락 끝에 달려 있다 되뇌면서 무조건 자판을 두드렸다. 계속 골똘히 생각하다보니 저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기획안을 고쳐 쓰기 일쑤였고, 다음날 아침에 보면 밤에 쓴 연애편지마냥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정안이라는 걸 깨닫고 한숨을 쉬며 다시 고쳐쓰기를 수차례. 중간에 때려치울까도 얼마나 많이 생각했었나. 뭣 모르고 해대는 말이 아닐까 불안하고 자신 없고 지금 엎자,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정보를 하나만 더 찾아보고, 하나만 더 알아보고, 하면서 기신기신 갔다. 심지어 나는 형편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실패할 권리도 있다, 되뇌면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하다보니 최종 결과물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작업이 아니었는데.

내가 하는 일은 늘 그랬다. 과정 안에서 뭐가 나올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하다 보면 뭐가는 나온다. 그냥, 나는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다. 목표를 잘 정하고 치밀하게 계획하여 조준하기보다 일단 쏘고 수정해서 다시 쏘면서 방향을 잡는 사람이다. 뇌가 손가락 끝과 발바닥에 달렸는지 내게 '생각'이란 건 자판을 두드리고, 펜을 잡고 뭔가를 쓰고, 걸어다닐 때 비로소 작동하는 기능이다. 쓰고 행동해야 배우고 다음 단계가 보인다. 

음.....횡설수설 쓰다보니 과정을 즐기지 않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 
가끔은 '과정을 즐겨라'라는 말이 '행복하게 살아라'처럼 무의미하고 아무 정보값이 없는 공허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즐김과 행복의 폭을 매우 좁혀놓는 말. 자주 나는 감정적으로 고양되고 충만한 상태이기는커녕 바짝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하지만 그게 '행복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정을 즐기느냐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 둘 다를 기분 좋은 감정의 고양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도달하기 어려운 신기루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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