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2'에서 - 영화를 보고 1주일쯤 지난 뒤 위의 내레이션을 찾고 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던 대사와 달랐다. 엉뚱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위의 내레이션이 "그때 우리는 과연 무슨 짓을 한 것일까"로 남아 있었다. 그의 죄보다는 우리의 죄로 더 선명하게 마음에 남은 영화라서 그랬던 걸까. 이 영화를 볼지 말지 한참 망설였다. 2003년 입국한 송두율 교수가 북한 조선노동당 서열23위 김철수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해방이후 최대거물간첩'딱지를 붙이더니 급기야 가짜교수의혹까지 제시하며 미친 듯 몰아붙이던 검찰과 언론의 마녀사냥이 못마..
“죽으면 끝. 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 영화 ‘박쥐’에서 - 영화 ‘박쥐’를 보기 직전에 읽어서 그런지, 영화관에 가면서 블로그 이웃인 inuit님이 쓴 한 줄짜리 촌평 의 앞머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우가 닭 먹는 게 죄야?” 음, 그러니까 ‘박쥐’는 닭 먹으면서 죄책감 느끼는 여우, 죄가 아니라고 우기며 마구 닭을 먹는 여우, (죄의식이 있든 없든) 닭 먹고 사는 여우에게 돌 던지는 사람들, 아니 불쌍한 닭들, 뭐 그런 동물 농장이 무대인갑다…. 신부가 뱀파이어가 되어 친구의 아내를 탐한다는 설정 정도는 미리 알고 있었으니, 닭 먹으면서 죄책감 느낄 여우는 당근 이 신부이겠고, “여우가 닭 먹는 게 죄냐”고 우기는 자는 누구일지 궁금했다. (알고 싶으면 영화를 보시라~~~) 영화를 보는 ..
올림픽 시즌.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 올림픽 중계를 거의 못봤지만, 잇딴 승전보에 기분이 좋군요. 오늘 어떤 분이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호 선수에 대해 4년 전에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으셨다면서 “놀랐다"고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 솔직히 4년 전에 제가 뭘 썼는지도 가물가물해서 이게 무슨 말이지…하고 한참 얼떨떨했습니다. 영문인즉슨, 이 블로그에도 방을 만들어 모아두었지만 4년 전에 ‘영화 밑줄긋기’라는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어요. 그때 열린 올림픽에서 동메달에 그쳤던 최민호 선수의 말이 인상적이어서 그걸 모티브 삼아 칼럼을 썼습니다. 최 선수의 말과 마침 봤던 영화, 올림픽에 나가는 10대들을 취재했던 경험 등을 잡탕으로 끌어다 쓴 건데요. 최민호 선수 이야기는 맨 마지막에 나옵니다. 간단한 코..
“이건 아니잖아~ ㅠ.ㅜ” - 영화 ‘데쓰 프루프’에서 커트 러셀이 울상이 되어 - 사이코 변태 마초 악당 커트 러셀이 징징대며 저 웃찾사스러운 대사를 내뱉을 때 어찌나 웃기던지! 소도시 심야영화관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쓰 프루프’를 봤습니다. 역시 타란티노! 별 생각 없으나 무지 재미있는 싸구려 펄프 픽션 한 권 읽은 기분입니다. 아, 당연히 성인용이구요.^^;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지루하다가 끔찍하다가 약간 긴장되다가 다시 지루해지려고 하는 찰나 심장박동이 치솟으면서 손에 땀을 쥐다가 점점 황당해지면서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리는 영화'입니다. (음....무슨 한마디가 이렇담......-.-;) 허름한 동시상영관에서 킬킬대며 보면 딱일 영화이니 이 영화에 대한 글들은 가급적 읽지 말고 그냥 보세요...
케이트: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엉망진창으로 하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무슨 일이 있든 언제나 네 곁에 있으리라는 건 약속할게. 조이: …이모?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엉망으로 하진 않아요. - 영화 ‘사랑의 레시피’에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아마도) 30대 싱글여성이 언니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어린 조카를 키우게 됐다. 성질이 불같고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드높은 완벽주의자이지만, 선량한 사람이며 조카에게 정말 잘 해주고 싶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질 않고, 때론 조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 같은 걸 깜빡 잊어버리기도 한다. 버릇이 되지 않아서다. 너무나 잘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질 않으니 자신이 모든 걸 망치고 있다고 자책하는 이모에게 조카는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잘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
“우리가 어디 뜻보고 삽니까. 그냥 살지예” - 영화 ‘밀양’에서 종찬의 대사 - (스포일러 없습니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 고통이라니요. ‘밀양’을 보고나면, ‘밀양’에 대해 말하려면, 난감해집니다. 화창한 날, 구질구질한 내 삶도 화사해질 수 있다는 어이없는 기대를 품어보기도 하는 날, 이렇게 피 흘리는 상처라니요. 예고없이 덮쳐온 고통 앞에서 ‘나한테 왜?’라는 질문을 떠올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밀양’은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각자가 겪은 고통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요. 비교할 수도 없는 거구요.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은 사람의 고통을 가스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텅 빈 공간에 가스를 주입하면 가스는 공간이 크든 작든 그 공간을 구석까지 균일하게 채운다. 마..
“날 크레타로 데려가 주시겠소?”(조르바) “왜요?”(배즐) “그놈의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거요? 그냥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됩니까?”(조르바) -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말인 어제 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에서 상영한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러갔습니다. 꼭 보고 싶은 옛날영화이지만 국내에 DVD도 출시되지 않아 안타까웠던 참에, 이게 웬 떡이랍니까. 게다가 무료 상영! 공짜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판에 이걸 놓칠 리가 없죠~. 막상 가보니 ‘그리스 걸작 영화제’라는 행사 명칭에 걸맞지 않게 작은 세미나실 같은 곳에서 앞사람들 머리 사이로 몸을 기울이고 보느라 허리 아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 원작이 있는 영화는 대개 원작보다 못하거나 낫거..
“관객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 이런 모습 안어울려요.”(비즐리) “(힘없이 피식 웃으며) 이 꼴이 진짜예요….”(크리스타) “그래도 난 당신의 관객입니다. …당신은 멋진 배우인데 그걸 몰랐어요?”(비즐리) - 영화 ‘타인의 삶’에서 술집에서 마주친 비즐리와 크리스타의 대화 -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언젠가 사는 의욕이 안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중이 없으니까 흥이 안나.” 그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었는데, 뭘 잘 해도, 잘못 해도, 지켜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뭘 열심히 하려는 마음도 먹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사람에겐 몇이 됐든 관중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가 말하는 관중이란 ‘친밀한 타인’일 터…. 그의 말이 외롭다는 말의 다른 표현임을 모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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