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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이모?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엉망으로 하진 않아요.
- 영화 ‘사랑의 레시피’에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아마도) 30대 싱글여성이 언니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어린 조카를 키우게 됐다. 성질이 불같고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드높은 완벽주의자이지만, 선량한 사람이며 조카에게 정말 잘 해주고 싶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질 않고, 때론 조카를 데리러 가야 할 시간 같은 걸 깜빡 잊어버리기도 한다. 버릇이 되지 않아서다.
너무나 잘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질 않으니 자신이 모든 걸 망치고 있다고 자책하는 이모에게 조카는 이모가 ‘모든 일’을 다 잘못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준다.
...어린 조카 말이 맞다. ‘모든 일’을 다 잘하고 ‘모든 일’을 다 잘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든 통제해 뜻대로 하려는 강박이 심한 사람일수록 ‘모든 일’을 다 잘하고 싶어 하고, 조금만 삐끗하면 ‘모든 일’이 다 글러먹었다고 자책하곤 한다. 원하는 것을 언제나 얻을 수는 없고, 무엇이 자신에게 이로운지를 스스로가 항상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꽤 오랜만에 본 영화 ‘사랑의 레시피’는 별 (5개 만점에서) 3개쯤을 주고 싶은 로맨틱 드라마다. 러브 스토리의 전개과정에 뻔한 면이 많아 흠잡기도 쉬운 영화이지만, 배려가 뭔지 생각하게 만든 몇 장면들 덕분에 (그리고 예쁘고 기품있는 캐서린 제타 존스, 서글서글한 인상의 아론 에크하트 때문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뉴욕 맨해튼의 일류 요리사인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가 조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차려준 아침 밥상은 일류 식당에서나 먹을 수 있는 완벽한 농어구이였다. 내가 봐도 아이가 먹기엔 좀 거시기했다. ^^; 초등학생에게 복 지리 한상 차려준 꼴이다. 접시 위에 입을 벌린 생선을 보는 순간 질려버린 아이의 얼굴이라니. ^^ 케이트가 생각하기엔 최상이었겠지만 아이는 음식을 보고 질려 손도 안대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반면 레스토랑의 부주방장 닉 (아론 에크하트)은 어떤가.
케이트를 따라와 주방 한쪽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조이를 보더니 그냥 옆으로 쓱 다가가서 야채를 다듬는 척 하며 “이건 바질이야” 하고 말을 건넨다. 심심한 아이에게 이파리를 하나씩 따는 일을 하도록 유도한다.
조금 있다가 스파게티 한 접시를 들고 온 그는 바질 잎 다진 것을 뿌려 아이 옆에 서서 그냥 맛있게 먹는다. 한두입 먹다가 저쪽에서 새로운 주문을 외치자 바쁜 척 하며 아이에게 그릇을 안겨주고 “잠깐 들고 있어”하고 사라진다. 잠시후 스파게티 그릇에 코를 박고 먹고 있는 아이를 먼 곳에서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자신의 일에 엄격한 케이트의 배려는 농어구이처럼, 자기가 할 줄 아는 최고의 것을 해주는 것이었다.
반면 자유분방한 닉의 배려는 스파게티처럼, 상대방이 부담 없이 받도록 해주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순 없다. 케이트의 방식은 고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최고일 것이고, 닉의 방식은 배짱 좋은 지지자가 필요할 땐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해본 몇 번의 배려(?)가 상대방 입장에선 어떠했을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해주면서 그에 상응하는 보답 또는 고맙다는 인사를 듣지 못해 안달복달하지는 않았나? 내가 ‘대단한 희생’을 감수하며 100을 주었는데 상대방은 내 기대의 50에도 미치지 못할 때 분개하지 않았나?
그런 태도의 베풂은 배려라기보다 고작 자기만족을 위해 상대방을 ‘증인’으로 끌어들이려는 행동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배려의 핵심은 어쩌면 ‘내가 이렇게 너를 생각한다’고 하는 그 마음의 크기보다, 받는 상대방이 수치심을 갖지 않도록 좌우를 살피고 상대의 입장에 서보는 태도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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