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차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16개월 입양아동이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으로 전국이 들끓던 이달 초순, 아동보호체계 진단을 위한 국회 긴급 간담회에서 국내입양인연대 민영창 대표가 했던 말이다. 전례 없이 입양이 전국적 관심사가 되어버린 이달 내내 한 살 때부터 입양인으로 살아온 민 대표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뭣이 중헌디’라는 한때의 유행어처럼, 입양이라는 복잡한 관계에서 누가, 왜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를 잊지 말라는 일침처럼 들렸다. 불가피하게 친생부모가 키울 수 없게 된 아이에게 영구적 가족을 찾아주는 입양에서, 아이는 가장 중요한 당사자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선택권이 없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입양아를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부르..
#1. 몸에 멍이 든 아이를 세심히 관찰한 어린이집 교사가 지속적 학대의 증거를 모아 신고했지만, 학대로 판정되지 않았다. 그 뒤 사례관리를 맡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전화로 부모의 말만 들었다. #2. 경찰은 아동학대신고를 받고서도 ‘아이를 입양하여 키우는 사람이 학대할 리가 없다,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생긴 문제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3. 아이의 몸 상태를 확인한 의사가 아동학대로 신고했지만, 경찰은 입양부모와 알고 지내던 다른 의사가 학대가 아니라고 하자 더는 조사하지 않았다. 전국적 공분을 자아낸 일명 ‘정인이 사건’의 정황들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1은 2014년 울주 아동학대사망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펴낸 〈이서현 보고서〉에서, #2..
툭하면 ‘기승전스위스’ 타령을 했다. 내 또래와 만날 때면 아픈 부모의 돌봄이 자주 화제에 올랐는데 근심 섞인 대화는 ‘나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로 이어졌고, 답 없는 수다는 곧잘 ‘우리는 나중에 안락사가 가능한 스위스로 가자’는 결론으로 치닫기 일쑤였다. 농반진반인 그 말에 담긴 절반의 진심은 전적으로 남에게 삶을 의탁해야 하는 상황을 겪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사랑하는 이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힘으로 먹고 배설하지 못하는 비참을 견디느니 내 손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소망이 선택에 대한 환상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건강하고 자기관리에 성실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진 뒤부터다. 평소 자율성의 상실을 끔찍하게 여기던 사람이 순식간에 가장 피하고 싶어 했던 바로..
계간지 "뉴필로소퍼" 2020 12호에 실린 "나만의 인생철학 13문13답" 미니인터뷰. 인생철학이라니 제목은 거창하지만 그냥 몇가지 단상들. 이번 호의 주제가 '가족으로 산다는 것'이어서 가족에 관한 질문 포함한 듯. 알라딘 링크 바로가기 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3028966 ----------------------------------- 1. 삶의 기준은 무엇인가? 행동하면서 생각하기.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가면서 배우겠다는 원칙. 2. 당신이 받은 교육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발견되고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영혼 저 깊은 곳의 '진정한 자아'란 없으니, 다양한 '여러 자아들'을 실험하라는 가르침. 3. 일상생활을 하면..
⑤ 멀고도 가까운 | 리베카 솔닛. 대부분 타인이 얽혀 있는 우리 삶의 문제들은 예고 없이 불쑥 일상을 깨뜨린다. 저자의 집에 어느 날 ‘들이닥친’ 살구 더미처럼. 저자의 삶에 끼어든 문제적 타인은 어머니였다. 평생 불화해온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저자는 어머니와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어머니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두텁지 않은 부피의 산문이지만 이 안에 짜여 들어간 이야기들을 다 펼쳐 놓으면 대작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시작해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 아이슬란드 여행, 체 게바라와 친구들을 거쳐 다시 어머니와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들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직조의 기술이 놀랍다. 수식어들의 도움 없이도 얼마나 글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전범으로 나는 ..
④ 사람, 장소, 환대 | 김현경. 사람됨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초사회성을 지닌 동물이니 태어나면 저절로 사람됨이 갖춰지는 걸까.인류학자인 저자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사회는 무엇인지 묻는 거대한 질문을 촘촘하고 유려하게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사회를 유기체나 벌집 같은 구조 대신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펼쳐지고 일렁이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얻게 되었다.저자는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빌려와 사람됨을 설명한다. 몸과 달리 그림자는 만져지지 않지만, 마음과 달리 눈에 보이며 일정한 자리, 즉 장소를 필요로 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라 소설에서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배척당한다. 사람이 된다는 건 이를테면 그런 그림자를 갖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필요한 사회적 성원권..
③ 몽테뉴 수상록 | 미셸 에켐 드 몽테뉴. 표지와 제목이 풍기는 근엄한 이미지 때문에 하마터면 이 귀한 책을 지나칠 뻔 했다. 수상록은 추상적 사색보다 몽테뉴의 깨알 같은 경험과 자유로운 생각으로 가득한 책이다. “나는 나 자신을 연구한다. 이것이 나의 형이상학이고 나의 물리학”이라고 선언한 사람답게 몽테뉴는 자신의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인간적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최초의 인간이다.그는 보르도 고등법원 심의관으로 일하다 38세에 퇴직한 뒤 20년간 이 책을 썼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일 중 비인간적인 것은 없기 때문”에 사람이 겪는 거의 모든 일을 소재로 삼았다. 슬픔, 공포심, 우정, 줏대 없음, 술주정, 심지어 자신의 용모와 방귀에 이르기까지 수다스럽다고 할 정도로 써댔다. ..
②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셔윈 눌랜드. 이 책의 구판을 선물받았을 때는 20대 후반이었다. 삶이 창창했을 뿐 죽음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때였다.수십 년간 죽음을 지켜본 의사인 저자가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상이 실제와 거리가 멀다고 설명할 때, 두렵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됐다. 평온한 종말은 착각이었다. 모든 생명체가 죽음으로 생의 무대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건 자연의 섭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예컨대 노화로 방광 조절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도 그 섭리의 일부라는 자각엔 몸서리가 쳐졌다.저자는 최후의 승리는 늘 자연이 거두게 돼 있는 섭리를 억지로 외면하는 인간의 총체적 저항을 ‘불필요한 의지’라 불렀다. 끝없이 치료를 시도하는 의료진의 행위가 무의식중에 환자를 학..
- Total
- Today
- Yesterday
- 스티브 잡스
- 블로그
- 세이브더칠드런
- 글쓰기 생각쓰기
- 사랑
- 차별
- 1인분
- 여행
- 인류학
- SNS
- 단식
- 김현경
- 인터넷 안식일
- 페루
- 엘 시스테마
- 중년
- 산티아고
- 서경식
- 알라딘 TTB
- 제주올레
- 조지프 캠벨
- 인생전환
- 영화
- 터닝포인트
- 김진숙
- 김인배
- 몽테뉴
- 책
- 중년의터닝포인트
- 다문화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