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이 게임, 인터넷에 빠져 놀 줄 모른다고들 개탄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오해다. 내가 일하는 단체가 최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아동 삶의 질 조사’에서 두드러진 결과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골목길, 놀이터처럼 또래와 노는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마을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주변에 놀 곳이 없다, 으슥한 골목길, 안전하지 않은 놀이터’를 꼽았다. 반면 마을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서 가장 자주 거론된 요인도 놀이터였다. 연구진의 예상 이상으로 아이들은 놀이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공터 이상의 의미, 동네를 안전하게 느끼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점점 더 아이들이 놀 곳이 사라져간다. 놀이터에는 철조망이 둘..
“대학 갓 졸업한 사회복지사들이 태반인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에게 국가의 일을 떠맡겨놓고 아이가 죽으면 책임을 묻지요. 전국에 375명뿐이에요. 이 숫자,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경기도 한 도시의 아동보호전문기관장은 울먹이며 내게 물었다. 그 375명 중의 한 명인 상담원 박 아무개(27)씨는 최근 사표를 냈다. “죽도록 일해서 얻은 건 자부심은커녕 병밖에 없습니다. 입사 6개월 만에 그만두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지만 더 이상은 감당 못 해요….” 그는 사표를 낸 다음날도 오전 6시에 출근해 밤늦도록 현장조사를 다니느라 4시간밖에 못 잤다고 했다. 그가 일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6명은 현재 1인당 60건 이상의 아동학대사례를 맡고 있다. 요즘 신고가 급증하여 1주일에 20건 가까운 신규 접수..
컴퓨터 폴더 정리하다가 찾은 글. 재작년인가, 인류학과 창립 50주년 기념 문집에 논문을 쓸 역량은 안되고, 동문 이야기 코너에 썼다. 선배의 반 부탁, 반 강제가 없었더라면 이조차 쓰지 않았겠지만... 이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장기 휴학 상태가 될 줄은 모르고 대학원은 마칠 거라고 상상했던 듯하다. ㅠ 사실 코스는 마쳤고 논문만 쓰면 되는데... 논문 주제를 정하질 못했다. 한때 대강의 주제를 정하고 관련 논문들을 찾아 읽기도 했으나, 내가 논문을 써서 대답하고 싶은 '질문'이 영 떠오르질 않았다. 지도교수인 선배는 문제 자체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논문을 쓸 수 있는데 내가 자꾸 "그래서 해결책은 뭔데?"쪽에 너무 관심이 쏠려 있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라서 더 그랬는지..
나는 신문기자를 하다가 4년 전에 그만두고 지금은 국제구호개발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한다. 그런 이력을 아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촌평은 “슈퍼 갑에서 을로 옮겼네?”이다. 내 딴엔 고심해서 내린 결정을 ‘갑을의 지위 전환’으로 명쾌하게 정리하는 촌평을 하도 자주 듣다보니 미욱한 내 눈에도 갑을관계의 풍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요즘은 TV 개그 프로그램에 ‘갑을컴퍼니’라는 풍자코너도 생겼고,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관계에서부터 대북관계, 심지어 친구나 연인, 부부사이도 갑과 을로 설명하면 누구나 단박에 알아듣는다. 이제 어느 누구도 갑과 을을 단순히 계약서상의 쌍방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와 권력의 우열이 있는 모든 관계는 죄다 갑을관계이며 사람들은 그 관계 속 자신의 위치에 더욱 민..
포스코 그린워크 홈페이지에 쓴 글 (바로가기) --------------------------------------------------------------------------------------------------------------------- 미얀마의 열두 살 난 소년 니 레이는 4년 전 초대형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들이닥친 5월의 어느 날을 잊을 수 없다. 그의 고향은 수십 개의 마을이 통째로 사라진 라부타 읍이다. 강풍과 호우로 집이 붕괴되자 식구들은 모두 손을 잡고 강둑으로 대피했다. 강둑 위에서도 물이 아빠의 가슴높이까지 차오르자 모두 나무 위로 대피했지만, 강풍으로 나무가 쓰러졌고 그 순간 소년은 아빠의 손을 놓쳤다. 나무에 매달려 밤새 급류에 떠내려간 니 레이는 내리꽂던 빗줄기를 ..
통영 초등학생 사망과 관련, 오늘 아침자 한겨레신문에 글을 썼는데 "비극을 막을 아동보호체계'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신문에 실린 글을 보니 정리가 잘 안 된 느낌...ㅠ 말하고 싶었던 요지는 대도시가 아니라 읍 단위의 시골에 사는 아이들, 절대빈곤상태인 기초생활수급자엔 포함되지 않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방치된 아이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데, 왜 그런가, 뭐 그런 거였는데...쓰다보니 괜히 열이 막 올라서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 좌우간, 정부나 국회나 언론의 누군가는 개탄만 하지 말고, 전국 단위의 거시적 대책만 말하지 말고, 그 마을에 가서 주민들과 학교 교사들, 아이들을 꼼꼼히 조사해서 어느 단계에서 막을 수 있었는데 왜 안되었는지를 조사했음 좋겠다. 그런 디테일 없인..
공포 영화를 방불케 하는 ‘도가니’ 상영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 여당의 대책이 쏟아진다. 가해자 처벌 강화, 법인 취소 방침 등의 대책 발표가 잇따르고, 4년 전 “사회주의적”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공익이사제 도입도 실현될 태세다. 잇따른 대책들을 지켜보다 의문이 생겼다. 가령 지금 거론되는 대책들이 이미 다 있다고 가정한다면 ‘도가니’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그렇다’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는다. ‘도가니’의 아이들은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아동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장애아동은 폭력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일반 아동보다 4~5배 높다. 게다가 시설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성적 학대를 당할 확률은 일반 아동보다 4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두 경우가 결합되었으니 ..
“아빠보다 더 큰 어른이 되면 아빠를 패주고 싶어요.” 이 한 마디를 읽는 순간, 움찔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이를 만난 상담원의 이야기를 자세히 청해 들었다. 열 살 민수(가명)의 머리엔 500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의 원형탈모가 있다. 한 달 전쯤 아버지에게 막대기로 심하게 맞은 뒤 생겼다고 한다. 민수가 아버지에게 맞기 시작한 건 네 살 때부터다. 멀쩡한 직장인인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한 채 귀가해 아들과 아내를 때렸다. 6년 넘도록 두들겨 맞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의 마음이 온전할 리 있을까. 민수는 학교에서도 수업 도중 갑자기 나가버리는 건 예사고 눈에 살기가 가득한데다 입이 험해 친구가 없다. 유일한 낙은 좀비를 죽이는 온라인 게임이다. 민수는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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