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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기고문

인류학과 나

sanna 2013. 3. 24. 23:12

컴퓨터 폴더 정리하다가 찾은 글. 재작년인가, 인류학과 창립 50주년 기념 문집에 논문을 쓸 역량은 안되고동문 이야기 코너에 썼다. 선배의 반 부탁, 반 강제가 없었더라면 이조차 쓰지 않았겠지만...

이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장기 휴학 상태가 될 줄은 모르고 대학원은 마칠 거라고 상상했던 듯하다.

 

사실 코스는 마쳤고 논문만 쓰면 되는데... 논문 주제를 정하질 못했다. 한때 대강의 주제를 정하고 관련 논문들을 찾아 읽기도 했으나, 내가 논문을 써서 대답하고 싶은 '질문'이 영 떠오르질 않았다.

지도교수인 선배는 문제 자체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논문을 쓸 수 있는데 내가 자꾸 "그래서 해결책은 뭔데?"쪽에 너무 관심이 쏠려 있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내 성향이 원체 실용적이어선지,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질 않아서인지... 아무튼 논문을 써서 학위를 꼭 따야 하겠다는 절박감도 없고 해서 휴학 상태가 길어졌다.

논문을 써서 대학원을 마치겠단 생각을 앞으로 내가 하게 될진 모르겠다.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될 것같진 않다. 그래도 가끔씩 인류학 논문들을 읽고, 미국의 인류학 블로그들을 구독하고 인류학자들의 트위터들을 읽는다. 지식을 생산하기보다 그저 즐기는 애호가, 딜레탕뜨로 살아도 뭐 괜찮지 않은가 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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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을 돌아 다시 만난 인류학

 

저는 학부 85학번, 대학원 석사과정 09학번입니다. 그 사이에 18년 간 신문기자로 일했습니다. 기자를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가니 ‘왜?’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럴 때마다 저는 “학부 때 너무 공부를 하지 않은 게 한이 돼서”라고 대답합니다. 다들 농담으로 받아들이시던데…, 진담입니다.

 

학부 시절엔 강의실보다 집회·시위 장소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고, 6월 항쟁이 불붙었던 1987년에는 어쩌다가 과 학생회장을 했어요. 공부를 하기는커녕 길거리로 나가자고 자주 수업거부를 부추기느라 교수님들 속을 많이 썩여드렸지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광대한 ‘앎’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에 최적인 20대 초반을 사회적 의무감과 이념에 짓눌려 보내야 했던 그 때의 풍경은 오래 안타까웠습니다.

 

모두들 한 번쯤 겪어봤겠지만, 인류학과 재학생은 유난히 “그 과 졸업하면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학부 땐 “사람과 관련된 일이면 뭐든 다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기도 했는데 졸업생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그게 꼭 농담만도 아니더군요. 제 동기들은 그 숱한 ‘사람과 관련된 일’들 중 언론사에 많이 들어갔습니다. 졸업할 무렵 소위 ‘언론고시’의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 경우엔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데모로 날을 지새우느라 그리 좋지 않은 학점의 영향이 큽니다. 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는데, 엉망진창인 학점 때문에 1차를 서류전형으로 걸러내지 않는 취직자리를 찾다보니 그 땐 언론사 밖에 없었어요. 인생의 방향이 그렇게 어영부영 정해지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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