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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에 답해보자. 지적 장애가 있는 열한 살 아들을 곧잘 때리던 아버지가 계속 강제로 아들의 성기를 만졌다. 이건 애정표현인가, 성폭력인가? 이런 질문도 생각해보자. 가출을 일삼던 열네 살 딸을 설득하던 아버지가 목검으로 딸을 때렸다. 이건 훈육인가, 학대인가?

 

최근 아동학대와 성폭력에 대한 법원의 잇따른 판결을 보면서 통념에 은폐된 폭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들의 성기를 만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기소된 아버지에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의 나이, 성별,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행위, 장소의 공개성, 현재 우리 사회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아들에 대한 애정의 표시로 보일 뿐”이란 이유에서다.

 

이 사건은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가 아버지의 추행이 싫다고 여러 번 말했고 이를 알게 된 제3자가 신고했으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이 성학대와 신체학대로 판정한 뒤 법정에 가게 됐다. 동성 간에도 성폭력은 성립한다. 그런데 신체학대는 유죄 판결을 받을 만큼 폭력적인 아버지가 성기를 강제로 만진 건 애정이라고 봐주는 관대함이라니. 게다가 그 행위가 “현재 우리 사회의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니, 재판부가 전제하는 ‘우리 사회의 성적 도덕관념’은 뭘까? 부모가 애정이라 우기면 아이는 싫어도 감당해야 하는 그런 것인가?

 

두 번째 사건에서 딸을 목검으로 때려 숨지게 한 아버지에게 법원은 “최근 문제가 된 아동학대와 다르다”며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형량보다 눈에 띄는 건 “사건 당일의 폭행도 설득과 훈육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었다”고 판단한 대목이다. 1시간 반 동안 주먹으로 폭행하고 목검으로 온 몸을 30여 차례 때린 행위를 일종의 설득과 훈육이라고 볼 수도 있다니 그저 아연해진다.

 

아이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두 판결에는 부모의 애정 또는 가르침의 행위에는 폭력이 수반될 수도 있다는 통념이 짙게 배어 있다. 이는 평소 자주 듣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아동학대의 문제점을 말할 때마다 듣는 체벌과 학대의 경계에 대한 질문, ‘사랑의 매’는 괜찮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체벌과 학대, 즉 폭력과 폭력 사이에 무슨 경계가 있을 수 있는가. 게다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사랑과 연관 짓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사랑하면 신체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힘으로 억눌러도 괜찮다고 가르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최근 그런 폭력이 빚어낸 연쇄효과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에게 맞고 자란 한 아이가 상담 과정에서 ‘내 몸은 소중해요’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책에선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내 몸이 왜 소중한지 잘 모르겠어요. 매일 맞고 불행한데 뭐가 소중하다는 건지….” 안타깝게도 이 아이는 다른 아이들을 성추행한 논란에 휩싸였다. 소중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키우지 못한다.

 

폭력을 은폐한 통념은 이전에도 많았다. ‘북어와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는 끔찍한 말을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던 때가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적어도 그런 폭력을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하려 노력하지 않는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아이에 대해서만은 유독 그렇지 않다. 애정, 훈육 등 통념의 미명 하에 관계의 폭력이 용인되는 최후의 식민지. 거기에 아이들이 있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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