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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은 유엔아동권리협약 제정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내가 속한 단체의 이름을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의 일을 하기 전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잘 몰랐다. 이름이야 들어봤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지한 사람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실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단체에서 일해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 일이 작은 변화를 만들 수 있으면서 정치적 이념과 무관한 보편적 가치를 다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에 무슨 정치가 있겠는가. 정치적 이념과 갈등으로 갈가리 찢긴 업계에 오래 몸담고 있다가 빠져나온 나로서는 솔깃한 일이었다.

 

그런 기대가 매우 순진했다는 것을 오래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아이에게 무슨 권리가 있느냐’고 바라보는 사회에서 아동권리와 관련된 이슈들은 꽤 자주 정치적 싸움의 대상이 된다. 권리의 주체에서 늘 배제되어온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획득하려는 노력은 곧잘 정치적 맥락에 처할 수밖에 없다. 차이가 있다면 성소수자 장애인 등 다른 사회적 약자와 달리 아이들은 자신과 관련된 일에 직접 목소리를 내고 참여할 기회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는 장치가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정한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이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것이 있을 때 그 어른은 아이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게 이 원칙의 요체다.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을 맨 앞자리에 두지 않고 진행되는 의사결정은 종종 폭력적인 양상을 띤다.

 

최근 학교급식과 누리과정 보육지원을 놓고 벌어지는 일대 전쟁이 그 한 예다. (참고로 무상의무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주는 밥은 학교급식이 맞다고 보기 때문에, 3년 전부터 거의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인 급식을 일컬을 땐 무상급식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

 

나는 학교급식과 누리과정 보육지원을 대립시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이 논쟁이 매우 잔인하다고 느낀다. 이전에 ‘선별적 무상급식’을 지원받을 때 겪어야 했던 열등감이나 수치심 없이 마음껏 학교급식을 먹을 수 있게 된 아이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도 없다.

 

‘공짜 밥’을 먹으려면 한부모 가정 증명서 등 온갖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급식 지원받으라고 교무실에 불려 다니고, 그러느니 차라리 공짜 밥 먹기를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했던 과거로 돌아가라는 것인가? 선별적 무상급식 시절 “공짜로 먹는 데 많이 먹을 땐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까지 말했던 아이가 있었다. 3년간 안심하고 학교급식을 먹어오던 이 아이는 최근 요란한 논쟁을 보면서 자기가 이 밥을 먹음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자괴감을 다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부 입장에선 고려할 요소가 많겠지만 아이들에게 속 편한 밥을 먹이는 일은 뒤로 밀리면 안 될 ‘최선의 것’중의 하나다. 아이의 밥 대신 4대강 사업처럼 낭비하는 예산을 줄여 학교급식과 누리과정 보육지원을 둘 다 하면 안 될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과잉복지’를 하자는 거냐고 화낼 사람이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한국의 아동복지지출 비율은 전체 예산의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거의 꼴찌인 32위다.

 

12년 전 아동권리를 주제로 열린 유엔특별총회에 모인 아이들의 선언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아동에게 꼭 맞는 세상을 원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세상은 모든 사람에게도 맞는 세상일 테니까요. 당신들은 우리를 ‘미래’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또한 ‘현재’랍니다.”

아이들은 ‘현재’ 최선의 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들이다. 식판을 도로 빼앗지 말라.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한겨레 신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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