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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코스_송악산에서 본 형제섬
가을 제주. 좋았다. 말그대로 힐링 여행.
일부러 정해둔 것은 아닌데, 지난해 말부터 서너 달에 한 번 꼴로 제주 올레를 걷는다. 뭔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절박한 느낌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 충동적으로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는데, 그게 묘하게도 서너 달에 한 번씩이다. 얼추 그 간격으로 항아리에 물이 차듯 스트레스가 넘실넘실 차오르는 걸까.
이번에도 그랬다. 야근을 하던 중, 6월에 제주를 같이 갔던 후배가 가을 제주를 보러 가겠다는 트윗을 띄운 걸 보고 곧장 연락해 후다닥 날을 잡고 일사천리로 표를 끊었다. 이번엔 아예 월요일 휴가를 내고 기간을 길게 잡았다. 덕분에 올레 9, 10코스를 걷고 8코스도 역방향으로 걷다.
9코스_솔밭길
9코스를 걷기 시작한 날 아침, 걷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지 좁은 오솔길에 거미들이 빼곡히 거미줄 집을 지어놓았다. 난데없는 큰 동물들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화들짝 거미들도 도망치고, 새들도 푸드득 요란하게 달아난다. 숲에 작은 파란을 일으키며 도착한 고즈넉한 솔밭. 들끓던 마음이 비로소 가라앉다.
8코스_대평포구
대평리 바닷가에 선 해녀상. 투명한 몸 안으로 바다가 흐르고 파도가 밀려온다.
표면으로는 별 일 없어 보이나 마음이 들끓는 나날.
3년 전 지금의 일을 시작한 이래 요즘 가장 회의가 깊다. 운동장에서 고개를 처박고 바닥에 금을 긋고 있는데 이 금이 애초에 가고자 했던 나무 쪽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불안하고, 고개를 들어도 목적지인 나무는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느낌. 금은 점점 삐뚤삐뚤.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자기의심은 커져가고, 날 따라오던 사람들 사이에선 원망이 쌓여간다.
8코스_어딘지는 까먹었음.
덧붙여 허영이라고 스스로 매도하고 밟아 없애려 해도 계속 고개를 들이미는 어떤 열망에 대한 확인. 사람이 왜 이리 미련한가, 싶다가도 어쩌겠나, 그게 나인 것을. 나 아닌 것을 구하지 않을 만큼은 이제 스스로를 받아들인다. 어정쩡한 흉내쟁이로 살기엔 남은 인생이 짧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 혼가 고민하지 말고 연대를 구하되 엉뚱한 관계에서 연목구어하지 말고, 애매한 상태도 견뎌보기. 돌이켜보면 애매함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내 조급증이 최근의 화를 부채질했다. 답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을 제대로 잘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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