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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터닝포인트]<9> 최해숙씨- 디자이너에서 소믈리에로


Before: 인테리어 소재 디자이너

After: 소믈리에

Age at the turning point: 35



나이가 들면 사람은 잘 안변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최해숙 씨(43)는 인생의 행로를 바꾼 뒤 얻은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로 ‘이전과 달라진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을 꼽았다.

안정감 있고 자신만만해 보이는 인상인데, 그는 예전엔 안 그랬다며 손사래를 쳤다.


“늘 스스로를 끈기가 없고 우유부단하다고 생각해왔어요. 내가 강하거나 악착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길을 바꿔보니 내게 강한 면이 있더라구요. 육체적으로 힘든 일처럼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고 상상하던 일을 해냈다는 충족감도 커요.”


그에게 인생 전환은 ‘지금까지 속해있던 상자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다. 두렵고 불안했지만 바깥으로 한 발짝 내딛고, 낯선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지내다 보니 이번엔 달라진 자기 자신이 보이더라고 했다.


LG화학에서 인테리어 소재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35살에 길을 바꿔 이탈리아 유학을 통해 소믈리에로 변신했다. 현재 건국대 와인학 석사과정 겸임교수, 와인나라 아카데미 강사로 일하며 소믈리에를 꿈꾸는 사람들을 가르친다.


만약 길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그는 “열의 없이 일을 하면서 ‘이것 말고 다른 세계가 있을 텐데…’ 하며 답답해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똑같이 바빠도 어떤 일은 힘을 소진시키는가 하면, 또 어떤 일은 되레 에너지 공급원이 된다. 그에게 전환 이후의 세계는 후자처럼 보였다.


● 하나의 기회가 새로운 기회를 낳고


대기업에 다니던 10년 전쯤, 그는 늘 ‘내 것’과 ‘창의적인 일’에 목이 말랐다.

전문직이었지만 실제로는 차별화할만한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는 일이 시장, 자재의 트렌드에 제한을 많이 받아 말이 디자이너지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외환위기 때 여자 선배들이 줄줄이 그만두는 것을 보고 ‘내 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조바심도 커졌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은데 그게 뭔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좀 막막했어요. 그래도 답답하니까 그냥 모호하게 디자인과 관련된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바람이 딴 데서 불어오듯’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2000년, 잡지에서 일하던 아는 이가 요리 코디네이터를 해달라고 부탁해온 것.


“그저 디자이너니까 이것도 잘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부탁했던 모양이에요. 재미있겠다는 생각 하나로 시작해서 몇 달 독학하며 준비해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내가 찾던 게 바로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요리와 미(美)를 결합하는 일에 매료된 그는 내친 김에 퇴근 이후 이탈리아 요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2001년 회사를 그만둔 뒤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입학했다.


요리를 배우면서 와인의 세계에도 눈을 떴다. 요리 학교를 졸업한 뒤 요리사로 일하면서 소믈리에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요리사로 일하던 소도시 캄피오네 디탈리아는 스위스 안의 이탈리아령. 이탈리아 북부 코모 주의 소믈리에 학교에 가려면 편도 3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다. 그 길을 1년간 1주일에 두 번씩 다니면서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고 스위스 레스토랑에서 6개월간 소믈리에로 일한 뒤 귀국했다.


결국 요리 코디네이터에 매료돼 요리사가 되었고 지금은 소믈리에로 일한다. 이전에 한 번도 ‘내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그의 삶이 된 것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가 새로운 기회를 낳고, 그렇게 우연의 여지를 열어두고 사는 게 재미있잖느냐”고 말했다.


“어떤 일을 하든 저는 3년 단위로 끊어 생각해요. 예를 들면 10년 뒤에 나는 뭘 하고 있을까, 그런 질문은 제게 너무 커요. 3년, 그리고 그 안에서 기간을 더 잘게 쪼개어 생각하면 구체적인 목표가 서고, 거기에 도달하고 나면 또 다른 조건이 형성되고 하는 거잖아요. 인생을 미리 어떻게 계획하겠어요. 엄청난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 해보고 후회하자


인생 전환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그에게도 마치 계획이나 된 듯 시기가 딱딱 맞았다. 미리 예견하고 준비해서 그리 된 게 아니라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처음에 회사 그만두고 요리 유학 간다니까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하고 많은 일 중 왜 하필 요리를 배우냐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에서 어찌나 걱정들을 하던지…. 우리 엄마만 해도 딸이 요리 공부하러 갔다고는 말씀을 못하시고 디자인 공부하러 유학 갔다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이탈리아에서 1년 반을 지낸 뒤 한국에 잠깐 왔을 땐 그를 대하는 사람들 태도가 달라졌다. 왜 그런가 했더니 ‘대장금’ 영향이라고들 했다. 와인을 배우고 다시 돌아오니 이번엔 웰빙 트렌드를 타고 와인 붐이 불었다.


“시기가 우연히 맞았을 뿐 전략적으로 좇은 건 아니에요. 저는 남들이 많이 하는 일엔 관심이 별로 안 생겨요. 남이 별 관심 없거나 ‘그건 좀 빠르지 않아?’할 때 슬슬 마음이 동하기 시작하지요.”


독자적인 판단으로 길을 열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도 처음에 고민을 시작할 때는 남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내가 뭘 잘 할 것 같은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친구들 중엔 ‘넌 요리를 잘하니까 그런 건 어때?’했던 사람도 있었고 성격이 외향적이니 사람 대하는 일을 하라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 말을 들을 땐 서로 연결이 잘 안되는 일이라 그냥 한 귀로 흘렸는데, 소믈리에가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요. 어떨 땐 주변 사람들이 더 나를 잘 보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늘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그는 ‘내 것’과 ‘창의적인 일’을 갈망하던 꿈을 이룬 것일까. 그는 절반 이상은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요리와 와인, 여행이 결합되는 지점에서 사업을 해보는 게 그의 목표다. 소믈리에 선생으로 일하는 요즘에도 손이 굳을까봐 계속 집에서 디저트를 만든다.


처음에 "저처럼 저질러도 크게 잘못되지 않더라고 들려주면, 전환을 꿈꾸기만 하고 실행을 못하는 사람들도 기운은 나겠네요"하면서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던 그는 '저지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뭐든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나아요. 안 해보면 미련이 쌓이기도 하고, 해봐야 내가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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