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에 오래 다니신 분들은 예전에 제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라는 제목으로 인터뷰 시리즈 연재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인생 중반에 삶의 방향을 튼 분들을 잇달아 만났던 그 인터뷰에 살을 붙여 만들어진 책입니다.
블로그에는 쓰지 않은 분들도 포함됐고, 반대로 블로그에 썼지만 책에 등장하지 않으신 분들도 계시구요. 한 분을 제외하고 모두 두 번씩 만나서 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꺼이 시간을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 분들 덕분에 이 책이 나오게 되었어요. 늘 이렇게 사람들 빚을 지고 삽니다...^^;
내용이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출판사가 만든 보도자료를 아래 붙였습니다. 이 책의 운명이 어찌 될지 저도 궁금하고 맘이 설레는군요.
보도자료
이 세상에 내 세상도 하나 있어야겠다!
인생의 한가운데서 기어코 새 삶을 시작한 15인의 모험가를 만나다
간략한 소개
현대인들에게 직업이란 어떤 의미일까? 최근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여러 직업을 거치며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 되면서 ‘나’의 발전과 변화, 만족도를 중심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기 싫은 일, 재미도 의미도 없는 일을 하거나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모른 체하며 사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하고 싶은 일이 곧 되고 싶은 나’인 시대가 된 것이다.
17년 8개월 동안 일간지 기자로 살아온 저자 역시 그동안 해왔던 일이 ‘더 이상 내 몸에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시기를 맞았다. 그런 생각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아직 새 인생에 대한 확신도 용기도 없을 무렵, 그는 자신보다 앞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인생 전환’을 감행한 인물들을 찾아 나섰다. 남들 눈에는 지금 그대로 살아도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멀쩡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든 수입, 가족의 만류, 달라진 평판, 불안한 미래를 감수하고 기어코 새 삶을 시작한 이유가 궁금했고, 그 과정에서 겪은 다양한 갈등과 해결 방법, 전환 이후 느끼는 삶의 만족도에 대해 듣고 싶었다. 간호사에서 소설가로, 광고 회사 임원에서 요리사로, 음반 가게 사장에서 심리 상담가로 인생 전환을 이룬 열다섯 명을 차례로 만나며 그는 자기 안의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그의 갖가지 질문에 대한 그들의 서로 다른 듯하지만 결국 하나였던 대답은 바로 ‘내 인생이다’였다. 숱한 걱정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감행한 건 그렇게 내 눈앞에서 끌려가듯 흘러가고 있는 게 ‘내 인생’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그들처럼 오래 몸담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열다섯 명의 인물은 저마다 다른 삶의 여정을 거쳐 왔지만 저자의 오랜 고민과 그가 매 단계에 맞닥뜨린 문제들과 맞물리면서 결과적으로 인생 전환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법한 갈등과 문제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인생 전환이 ‘진짜 내 인생’을 되찾는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절실함과 용기가 필요한지, 또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가야 하는지, 나아가 자신이 그리는 행복한 삶이란 어떤 삶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출간 의의
나만의 행복을 찾아 자발적 실업과 적극적 전환을 택한 15인의 모험가들
이 책에 소개된 열다섯 명은 모두 자발적으로 인생 전환을 감행한 사람들이다. 이전 직업에서 실패를 맛보거나 밀려난 것도 아니었고, 단지 중년에 이르러 노후를 대비한다는 생각으로 변화를 택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커리어의 정점에 있을 때 혹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누가 봐도 안정적인 시기에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대형 PR 컨설팅 회사에서 서른한 살에 직장 생활을 시작해 서른일곱에 사장이 된 김호 씨는 회사가 해마다 최고 매출 기록을 경신하던 시기에 사장 자리를 내놓고 하프타임(half time)을 가졌다. 숨 가쁘게 달려온 삼십대, 취미가 뭐냐는 질문이 가장 두려웠던 그는 자기 삶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과감하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 기간 동안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직업적인 성공과는 별개임을 깨달았다.
“삼십대의 10년은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시간이었다면, 사십대의 10년은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하프타임은 내 꿈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인생 전환을 꿈꾸는 사람에겐 하프타임 갖기를 꼭 권하고 싶어요. 하프타임의 목적은 한가해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직장 생활에 몰두해 있을 때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게 두렵고, 혼자 있는 걸 잘 견디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자기 자신과 대면한 상태에서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그려보지 않고서 실행하는 변화는 무의미하거나 미완성이기 십상이지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 15~20쪽
국제적인 광고제에서 연달아 수상하며 광고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최혜정 씨 역시 어느 날 문득 ‘이게 과연 내가 살고 싶은 삶인가?’, ‘내가 진짜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 하는 질문에 사로잡혀 회사를 그만둔 뒤 삶에 찌든 자신을 해독하고, 본연의 자신에 좀 더 가까운 직업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공익을 위한 활동과 어린이들에 대한 애정, 자유롭고 가치 있는 일 등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좁혀나간 끝에 국제 NGO 활동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마흔세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일간지 기자를 그만두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이영이 씨, 어릴 적 꿈인 자전거 세계 여행을 하기 위해 대기업 상무직을 버리고 전업 자전거 여행가가 된 차백성 씨, 레지던트까지 마치고도 고만고만한 의사가 되기보다는 독특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의학 정보를 제공하는 벤처 기업을 창업한 양광모 씨 등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모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떤 삶인가’,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라는 질문과 끈질기게 씨름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그에 어울리는 일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행동한 사람들이다.
“내가 그만큼 일에 몰두하고 있고, 내 일을 장악하고 있구나 스스로 확인하게 된 거죠. ‘내 과제’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일을 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지금은 내가 전체를 다 움직이면서 내 일을 만들고 내 공간을 설계해요. 거기에서 오는 쾌감은 정말 대단해요. 이게 방향 전환을 통해 거둔 가장 큰 성과예요. 한 점에 딱 박혀 있던 나사가 빠져서 녹슬지 않고 살아서 돌아다니는 거니까요.”
〔…〕만약 최해숙 씨가 달라졌다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서가 아니라 스스로도 말했듯 이전에 몰랐던 가능성을 끌어내 쓰는 느낌 덕분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나’와의 조우를 기다리던 찰스 핸디도 오랫동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했던” 거짓된 삶을 반성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체성의 탐험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정직하고 개방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 220~221쪽
이들의 고민과 선택은 우리 사회에서 이직이나 전직이 더 이상 고용 불안에 대처하는 자기 사업 갖기나 수명 연장에 따른 인생 이모작, 은퇴 이후의 노후 대책 등과 관련한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안정이나 사회적인 지위를 일부 포기하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삶, 내가 행복해지는 일을 찾으려 일시적으로 자발적 실업을 택하고 있다. 직업이 단지 밥벌이의 수단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고 내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삶을 구현해가는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수단, 자아실현의 장이 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다소 무모해 보일 정도로 비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자신의 선택을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마다 가장 어둡고 길이 나 있지 않은 지점을 골라 숲으로 들어갔다.”(257쪽)
낯선 곳에서 자신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듯이, 변화무쌍하고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나’에 대한 탐구와 ‘나’를 건 모험이 더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진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어른들의 성장통’은 점점 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러한 시대가 낳은 용기 있는 모험가들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 무엇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는가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시기에, 다른 이유로, 다른 과정을 거쳐 인생 전환을 이루었다. 그들이 전환을 위해 준비해온 과정, 맞닥뜨렸던 문제들과 해결 방식,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나가는 태도 역시 각양각색이다. 저자도 그것들을 몇 가지 법칙으로 일반화하여 ‘인생 전환 가이드’를 만들기보다는 그 다양한 목소리를 그대로 살려, 저마다 다른 상황에서 망설이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독자들이 인생 전환의 여러 단계에서 겪을 법한 갈등을 두루 경험해볼 수 있게 했다.
*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품고 있을 가장 큰 의문은 아마 ‘그렇다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찾을 수 있을까?’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 질문에 명쾌한 답 하나를 제시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각자가 자기만의 답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잘나가던 디자이너에서 나무로 배를 만드는 보트 제작자로 변신한 최준영 씨는 포구에서 배를 구경하며 물고기처럼 살아 움직이는 배를 만들고 싶다고 상상했던 어린 시절의 꿈을 줄곧 품고 있다가 서른 살부터 준비를 시작해 마흔에 본격적으로 그 일에 뛰어들었다. 벤처 기업 CEO를 하다가 숲 생태 전문가가 된 김용규 씨는 CEO 재직 시절 한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다가 꿈이 뭐냐는 질문에 말문이 턱 막히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본래의 나’를 되찾기 위해 산악자전거를 타거나 등산을 다니다가 산과 숲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게 결국 숲에서 농사를 짓고 살며 숲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다음 직업으로 이어졌다.
* 인생 전환,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뿐 아니라 그것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존재한다. 하프타임을 갖고 후반전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마련한 김호 씨,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10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 최준영 씨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광고인에서 요리사로 획기적 전환을 이룬 오시환 씨는 그 변화의 폭이 무색할 정도로 대략적인 방향만 정한 채 계획도 준비도 없이 달려드는 무모함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일 중에서 미리 계획하고 진행한 건 하나도 없어요. ‘광고가 아니라 요리’, ‘위아 아니라 밑에서부터’ 같은 굵직한 방향이야 있었지만, 몇 년 단위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춰 일정을 짜는 것과 같은 계획은 없었어요. 무계획을 상쇄해주는 것은 이걸 해서 그다음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걱정하는 대신 지금 이 자리에 충실한 것뿐입니다. 제 철칙은 ‘오늘 하루를 집중적으로 잘 살자’입니다. 그러면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벌어져요. 계획의 노예가 된다면 되레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우연하게 다가오는 좋은 인연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가 있죠.” - 88~89쪽
* 지금이 그때인지를 어떻게 알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어느 정도 준비까지 해두었다고 해도 대개는 ‘언제 그 일을 시작해야 할까? 지금이 그때인지를 어떻게 알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 앞에서 또 오랜 시간 고민하게 된다. 광고인에서 NGO 활동가로 변신한 최혜정 씨는 ‘때가 되면 스스로 알게 된다’며 시기에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준비를 하며 때를 기다리라고 조언한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을 엄두가 나지 않고, 생계 걱정도 되고, 모든 경우의 수가 다 떠오르면서 그걸 해결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면 아직 때가 아닌 거죠. 반면 결심할 때 마음이 편하면 때가 된 거예요. 제 경험으론 때가 되면 질문이 단순해져요. ‘다음에 뭘 하지?’ 같은 질문에도 ‘6개월간 찾아보자’ 같은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요.” - 53쪽
마흔세 살에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영이 씨는 “얼마 전에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라는 책을 봤는데 그 선생님은〔…〕정년을 넘기고도 10년을 더 일했더라고. 나도 아무리 못해도 일흔 살까진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다수가 따르는 사회적 시간표 외에도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경험들로 자유롭게 채워가는 자기만의 시간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 전환 이후, 실패와 좌절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과감하게 인생 전환을 감행한 이후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인데 연거푸 실패한다면, 생계조차 위협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결정이었던 만큼 이들에게도 실패와 좌절의 시간이 잇따랐다. 15년간 통신사 기자로 일하다가 마흔 즈음에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영문 도서와 잡지를 만드는 출판사를 차리겠다고 결심한 김형근 씨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었고, 소설가가 되겠다며 남편보다 많은 연봉을 받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아 글만 쓰던 정유정 씨는 7년 동안 여러 공모전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시며 암흑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먼저 자기 자신을 마주 봐야 해요.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은가 아니면 그것이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나 외양에 시선이 꽂혀서 하고 싶어 하는가를 구분해야 한다는 거죠.〔…〕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힘은 결국 ‘동기’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싶어 하나’가 분명해야 해요.” - 236쪽
실패는 곧 죽음일 수도 있었던 산악인 엄홍길 씨가 말하는 ‘실패를 다루는 방법’은 자신의 남은 삶을 걸고 전환을 결심한 사람들이 특히나 귀담아 들을 만하다.
“실패의 수와 성공의 수는 거의 비슷합니다. 중요한 건 실패를 피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실패와 현실의 불행을 끌어안은 채 거기에 고착되면 영영 벗어나질 못해요. 실패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배우고, 불가항력이었다면 ‘더 나빴을 수도 있는데’ 하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겉으로 드러난 실패는 진짜 실패가 아니에요.〔…〕뭔가 미련이 남으면 잘못된 일에 대해 계속 자책을 하게 되는데 죽기 살기로 한 일은 실패해도 후회가 없잖아요. 후회가 없으니까 다시 일어설 힘도 나오는 것이지요. 실패는 늘 있기 마련이라고 인정해야지 그걸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미련이 남은 상태에서 포기하는 것이지요.” - 247~248쪽
이처럼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맞닥뜨리는 갖가지 문제들에 대해 이들 각자가 제시하는 답은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그 이유 역시 ‘내 인생이다’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모범답안을 참조해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고르고, 자기 앞의 시련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실현해간 사람들이다. 자기 삶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바탕으로 “곧게 뻗은 직선형 계단 대신 빙빙 도는 나선형 계단에 올라 거듭되는 부침(浮沈)을 긍정하면서도 점점 나아지기를 꿈꾸는 사람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는 냉소를 거부하고 계속 성장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258쪽)인 것이다.
본문 내용 소개
하프타임 _ 잠시 멈춰 서야 하는 게 아닐까?
하프타임은 삶의 방향 전환을 앞둔 성인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기 이전에 자신을 가다듬는 통과의례로 활용할 수 있는 기간이다. 어떤 ‘상태’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와 ‘상태’ 사이의 중간 지대, 그 사이의 ‘과정’을 살아보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둘 다이기도 한 풍성한 상태, 사회적 관계를 일시 정지시키는 경계 지대에 자발적으로 머물면서 자신을 둘러싼 관계와 스스로를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이다. - 21쪽
의미와 재미 _ 의미도 재미도 없이 먹고만 살 것인가?
박윤자 씨의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듯 일의 의미, 재미를 묻는 것은 결국 삶의 의미, 재미를 묻는 것이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어떻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이냐,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 45쪽
타이밍 _ 지금이 그때인지를 어떻게 알까?
“점프 대신 징검다리를 건너듯 연결하면서 살아도 되잖아요. 두서없이 여러 생각이 든다면 조금씩 맛을 보고 내게 맞지 않는 걸 지워나가는 과정도 필요하고요. 뭘 하다가 그만두면 그만큼 인생과 시간의 낭비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경험들이 연결되어 쓰이게 되지요. 인생의 중반에 길을 바꿀 때는 이십대 때 평생직장을 고르듯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나 역시 어디로 가는지 뚜렷하지 않은 징검다리들을 건너왔습니다. 소명이나 계시 같은 것도 없었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일을 따라서 늘 ‘이 정도만큼은 해보자’는 생각이었지요.” - 58쪽
결단 - 늦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솔직해지고 싶어.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교집합 안에서 찾아야지. 할 수는 있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일에 억지로 나를 꿰맞추고 싶지는 않아.” - 76쪽
현실 인식 _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밑바닥이다
“넘어졌는데 허공을 붙들고 일어설 순 없잖아요. 밑바닥부터 기어야죠. 그걸 잊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늦은 나이에 다른 분야에 뛰어든 사람이 처음부터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되죠. 새로 출발하는 사람은 새로운 일의 밑바닥을 빨리 돌파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어요.〔…〕밑바닥에 있는 사람은 밑바닥을 인식해야 해요. 사람들이 은근히 내가 하면 남들보다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허상입니다. 다른 사람은 안 되는데 왜 나만 잘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나도 마찬가지로 잘 안 되고 어려우니까 밑바닥에서 출발하는 과정을 거치는 수밖에 없지요.” - 85쪽
동경 _ 꿈을 꿈으로만 남겨둬야 할까?
그는 소중한 것을 못 버리고 전부 다 그대로 가진 상태에서 배도 만들고 예전처럼 안정성도 추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음에 품은 꿈을 실현하려면 사람이 좀 독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가 말한 ‘독함’은 잊지 않고 사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런데 배는 어떻게 하나’ 같은 생각을 줄곧 품고 사는 것이다. - 103쪽
한계 _ 나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그런데 나는 항상 가슴이 머리를 이기는 사람인 걸 어쩝니까. 발부리의 돌을 뻔히 보면서도 ‘나는 안 넘어질 거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기어이 넘어져본 후에야 비로소 ‘아, 이게 돌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나란 인간은.〔…〕그렇게 가슴이 머리를 이겨버린 행동의 대가를 지금까지 치르고 있습니다. 아이 유치원 보낼 돈이 없어 쩔쩔매는 어려움도 맛보았고, 돈을 빌리러 다니기도 했어요.〔…〕내 어리석은 행동의 결과를 혹독하게 맛보는 거죠.” - 119쪽
가치 _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는 전임의 대신 창업을 선택한 자신의 방향 전환이 이후의 인생을 결정짓는 단 한 번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나이 들어 또 한 번의 방향 전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현재 하는 일이 가지를 치고 종횡으로 이어지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 뻗어나가리라 믿을 뿐이다.〔…〕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뭐냐고 묻자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느냐”라고 대답했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지금,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 142쪽
내공 _ 끝까지 버티면 언젠가 한 번은 찬스가 온다
“어떤 분야든 왕도는 없습니다. 한 분야를 10년 파면 길이 열려요. 자기 분야에서 무조건 경험을 쌓고 기다리면 개안(開眼)의 시기가 옵니다. 그때까지는 목숨을 걸고 가야 해요. 어느 순간이 지나면 눈이 탁 트이고 일이 쉬워지는 때가 오게 되어 있어요.” - 152쪽
진짜 나 _ 그동안 나는 가면을 쓰고 살아왔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조차 이방인이면서 자기를 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두려움 때문에, 센 척을 해야 이길 것 같아서 가면을 쓰고 살았는데 나중엔 그 가면이 자신인 줄 알고 스스로 ‘센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는 거였다.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가면을 모두 벗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것 자체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게 그에겐 중요했다. - 172쪽
자기 주도 _ 내 인생이다, 구경하지 말고 뛰어들어라
“어차피 한 세상인데 자기 삶에 대해서조차 방관자로 사느니 꿈의 복판으로 뛰어들어 보라는 권유 같지 않습니까? 가끔 만나는 이전 직장 동료들은 나더러 슬슬 여행이나 다니고 좋겠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나는 전장(戰場)에서 물러난 게 아니고 내가 만든 새로운 전장에 뛰어든 겁니다. 구경하는 대신 춤추기로 결정한 거죠.” - 178쪽
성장 _ 배우고 걷는 게 아니라 걸어가면서 배우는 것이다
“자기 길이 아니면 옆을 많이 보게 되잖아요. 자기 길을 걷는 사람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아요. 자기 길이라 생각하고 걸어도 목적지에 닿을 수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여전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닿든 닿지 않든 그게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잃어보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가보는 ‘무식한’ 태도가 중요할 뿐이지요. 인생은 목적지에 도착해서가 아니라 걸으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206쪽
장악력 _ 자신의 가능성을 모두 끌어내 삶을 장악하라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하는 소망 때문에 판타지와 꿈을 구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자신의 잠재력과 연결되지 않는 판타지를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꿈 없이는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지만, 판타지를 꿈으로 착각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능력과 열망 사이에 적절한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 213~214쪽
근성 _ 잇따른 좌절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이걸 못 하면 죽을 것만 같다는 열망이 깊으면 그 자체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보다 더 길게 버티는 근성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몸 구석구석에 스며든 열망이 타고난 근성인 양 몸에 뿌리박힌 성질로 변해 삶을 바꾸는 ‘화학 작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의 삶이 직접 입증해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 226쪽
위기관리 _ 실패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만큼 했으니 좋은 일이 와주겠지’ 하고 기대하는 노력의 대가뿐 아니라 우리는 종종 실패나 불운의 대가도 기대한다. ‘이만큼 겪었는데 나쁜 일이 또 생기진 않겠지’ 하고 다음번엔 액운이 피해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엄홍길 씨가 남달랐던 것은 성공의 수보다 많은 실패를 겪으면서도 실패의 대가를 바라다 좌절하지도 않았고, 노력의 대가를 바라는 마음에 스스로 짓눌리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 249쪽
지은이 소개
김희경
생애 첫 기억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준다는 말이 있다. 내 첫 기억은 만 네 살 때의 일이다. 한 살 터울 오빠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던 나를 청강생으로 받아준 시골 유치원의 관대한 원장 수녀님은 ‘너도 밥값은 해야지’ 싶었던지, 오빠가 졸업할 때 내게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씌우고 떠나는 언니 오빠들을 그리워하는 포즈로 앨범용 사진을 찍게 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사진을 찍으러 마당에 나가야 하는데 도무지 신발을 찾을 수가 없어 신발장 앞을 정신없이 헤매던 순간이다. 결국 오빠 졸업 앨범엔 신발 한 짝만 신은 채 곧 울 것 같은 표정인 내 사진이 실렸다.
신화에서 신발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잘 정체성의 혼란과 모험의 시작을 상징한다. 그래서 여태 나는 스스로 어떤 인간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물으며 헤매는 건가? 아마 평생 그럴 것 같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문지방 하나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건너갔다. 명함의 타이틀이 나를 설명해주는 ‘명사’의 삶 대신 스스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만들어내야 하는 ‘동사’의 삶이 슬슬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여전히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지만, 계속 탐구하고 체험하는 동사형 이야기꾼으로 살려고 한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미국 로욜라 매리마운트 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7년 8개월간 <동아일보>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공부하며 책을 짓는다. 《흥행의 재구성》,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썼고,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를 우리말로 옮겼다. 블로그 ‘그녀, 가로지르다(www.bookino.net)’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