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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한 권....^^
쓴 책이 이것 밖에 없어 전체 카테고리 중 <내가 쓴 책> 방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 포스트 달랑 한 개로 버티게 될 딱한 신세....그래도 이 집에 내 책을 위한 방 하나쯤 만들어주고 싶어서 올려놓는다.
또 책을 써서 포스트가 늘어나는 날이 올까?....

쓸까말까 망설이는 시간동안 썼더라면 진작 나왔을 책. ㅠ.ㅠ
책에 실린 분량보다 세 배쯤 더 써놓고 글을 쳐내는데 걸린 시간이 더 길었다. 너무 비효율적으로 작업한 탓에 기가 질렸지만, 책으로 만들어놓고 보니 아쉬운 게 참 많다.  

아래 붙인 리뷰는 영화 주간지 <필름 2.0>에 영화평론가 김영진 씨가 쓴 내 책에 대한 리뷰다. 과분하게 평가해줬고, 또 과분하게 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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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 김영진의 러프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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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의 재구성

2005.04.22 김영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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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간된 ‘흥행의 재구성(김희경 지음)’은 매우 잘 씌어진 책이다. 꽤 오랫동안 영화를 담당했던 현역 일간지 기자의 명료한 문장으로 현대 할리우드영화 시스템의 흥행 심줄을 해부하고 있다. 박사 논문감 주제인데도 현장에서 오래 취재한 이의 공력으로 공룡 같은 영화 산업 시스템을 읽는 이에게 편안하게 엿보게 해준다.

이 책에는 곧잘 되씹을 만한 말들이 인용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저자가 직접 만난 스티븐 스필버그는 오늘날의 할리우드에 대해 "위대한 도박사들은 다 사라졌다"고 개탄한다. “아무도 본 적 없는 것을 만들어 수천만 명을 그 앞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에 명운을 거는 일이라면 그건 도박이다. 오늘날 영화사 고위층들은 도박을 두려워하는 편집증 환자들이다.”
다국적 재벌의 방계 회사로 편입된 오늘날의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그런 도박은 허용되지 않는다. 회사에 아이템을 팔기 위해 제작자들은 제품 설명하듯이 기획 중인 작품의 모든 것을 5분 안에 설명해야 한다. 이 시스템 안에서 통용되는 영화에 관해 스필버그 자신이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25개 단어 이내로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어야 좋은 영화다.”

속도감 있는 문체 덕분에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지만 어느 순간 이 책은 현대 영화라는 것의 주류, 곧 할리우드 스타일이라고 통칭되는 영화들과 그것과 유사한 길을 밟는 한국영화에 관해 우울한 생각을 자꾸 하게 만든다.
대중적인 상업 영화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공식을 개발해 붕어빵 틀에서 찍어내듯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고 있으나 바로 그 한계 안에서의 싸움이 창의력으로 결정된다는 따위의 교과서적인 설교는 지금까지 허다하게 들었지만 구체적인 통계와 사례로 진척되는 이 책의 행간 곳곳에서 영화를 예술로 접했던 젊은 날의 꿈을 지닌 이들은 한숨부터 내쉴 것이다.
곧 영화는 한때 예술이었고 그게 돈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은 이제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는 절망감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 역사 책에서 보는 누벨바그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이니 하는 혁신적인 사조도 다 당대에는 돈이 되는 유행이었다. 어느 정도 지적 속물주의를 깔고 소통되던 그 예술적 열정이란 것이 당대의 주류 영화 산업 구조에선 점점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라는 회의가 드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현대의 대표적인 흥행 영화는 ‘하이 컨셉’이라 불리는 블록버스터로 구분된다. 이는 “만드는 이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관객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아이디어이며, 새로운 이야기를 개발하려는 노력 대신 이전에 성공했던 영화의 내러티브를 복제하고 결합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이에 관해 무심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예술가는 작품의 향유자들을 고유한 개체로 바라보며 작품에 대한 개인의 독특한 반응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반면, 엔터테인먼트는 향유자들을 개인이 아닌 집단, 통계의 집합으로 바라본다. 예술은 개인을 향해 있지만 엔터테인먼트는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사람들을 겨냥한다. 엔터테인먼트 생산자들은 만드는 이가 개인적 취향을 섞으려는 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관객층을 좁힐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곧, 과거에 반응이 좋았던 예측 가능한 요소들의 조합을 추구하는 것이 하이 컨셉 영화의 전략이다. 이 책에서 인용된 프로듀서 브라이언 그레이저의 말대로 “관객에게는 무엇이 일어날지를 아는 것 자체가 그 영화를 더 보고 싶게 만드는 것 같다.”

역사상 할리우드에는 두 차례의 전성기가 있었다. 첫 번째는 스튜디오 황금기라 불리는 30, 40년대였으며 이 시기에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빡빡한 통제와 간섭 속에 자사 각기 나름의 장르 브랜드와 스타 파워를 키워 관객에게 호소력을 갖는 거대한 꿈의 공장을 건설했다. 두 번째 전성기는 스튜디오 체제가 위기를 맞은 뒤 한참 지난 60년대 말에 젊은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대거 유입돼 작가로서의 감독의 권력을 얻어낸 뒤 장르 세공이 아닌 현실에서 이야기 소재를 취했던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시대였다. 첫 번째 시기가 영화사를 창업한 거물 제작자들의 시대였다면 두 번째 시기는 혈기방장한 애송이들의 시대였다. 어느 쪽으로나 도박이 가능했던 시대였다.

요즘은 영화사를 흡수한 모기업에 상품을 설명하기 위해 기획 단계에서부터 컨셉 테스팅이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익명의 관객들에게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간략한 묘사만 제시하고 이런저런 주제의 영화를 보고 싶은지 물은 설문 결과를 작성하는 것이다. 아직 뼈대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상품 경쟁력을 가늠하는 이런 방식은 마케팅 부서의 권력을 강화하며 개봉 당일 수천 개의 극장에서 광역 개봉하는 관행이 고착된 상영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인 관객의 주의를 어떻게 획득하느냐에 영화의 명운을 건다.
이 책에 인용된 흥미로운 사례에 따르면, 프랭크 카프라의 코미디 고전 <디즈씨 뉴욕에 가다>를 리메이크한 애덤 샌들러 주연의 <미스터 디즈>는 원작의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따르면서도 전혀 다른 영화로 나왔다. “카프라의 고전은 플롯이 육중하고 속도가 부드러워서 그걸 즐기려면 귀를 기울이고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반면 애덤 샌들러가 주연한 리메이크작은 플롯이 성긴 반면 시끄럽고 폭력적이다. 관객들은 정말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려고 하는 의도 때문에 웃는다.” 이 책이 인용한 ‘뉴욕 타임스’의 평문은 이런 현상을 두고 “관객들은 이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환각에 반응한다”고 끝맺었다.

이 말이 무척 흥미로웠다. 저자는 이 말에 덧붙여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에서 접했던 자신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전혀 우습지 않았으나 자꾸 보면서 방청객들이 웃는 대목에 익숙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웃기다고 받아들여지는 걸 보니 나중엔 정말 웃긴다고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내용 대신 익살스러운 말투와 표정을 반복함으로써 그같은 형식의 고정화가 내용보다 더 중요해지는 이런 경우를 미국에선 농담 대신, 농담 같은 것이라고 부른다.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환각이라는 표현도 여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라고 저자는 쓴다.
이런 시대에 관객에게 다가서는 영화는 관객을 놀래게 하는 영화이다. 저자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화씨 9/11>의 예를 들어 오늘날의 관객들은 자극받고 도발당하고 분개하고 도전받기 위해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이라고 본다.
“영화뿐 아니라 오늘날의 엔터테인먼트는 점점 더 짧은 순간에 이질적인 집단을 하나로 끌어모은 뒤 금방 사라지는 사람들이 간단히 쓰고 버릴 수 있는 것이 되어간다”고 말하는 저자는 20세기폭스의 해외 배급 담당 사장 스콧 니슨의 말을 빌어 “영화는 상품의 상업적 성공이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팔기 위한 제1의 요소가 되는 유일한 비즈니스이며 사람들은 흥행이 잘되는 영화를 더 보고 싶어 한다”는 것에 사활을 거는 영화 산업의 기막힌 운명을 냉정하게 분석한다.

1천만 관객 동원의 흥분에 젖었던 우리에게도 이런 영화 산업의 속성은 거의 동일하다. ‘흥행의 재구성’은 현대 할리우드영화 산업과 그것을 벤치마킹한 한국영화 산업을 곧잘 비교하고 있는데 규모의 차이를 빼면 거의 동일한 속성으로 굴러가는 운명 앞에 다소 기가 질린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첫 주말 흥행 수익에 승부를 거는 블록버스터 배급 전략에 가담하는 현대의 관객 소비자들에 관한 분석이다.
“엔터테인먼트는 모든 사람이 쉽게 향유할 수 있고 다수가 지배하며 어느 누구의 심미적 판단도 다른 사람의 것보다 낫지 않고 모든 의견이 동등하다는 점에서 포퓰리즘과 닮았다. 포퓰리즘과 엔터테인먼트는 서로를 강화한다. 미국에서 보통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을 지지하는 포퓰리즘이 힘을 얻으면서 엔터테인먼트의 양도 팽창했고 그 동맹을 통해 대중문화는 미국의 지배적인 문화가 될 수 있었다. 좋은 영화가 흥행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흥행이 잘되는 영화가 좋은 영화처럼 돼버린 것을 보면서, 관객의 주류가 엘리트에서 대중으로 옮겨간 것을 보면서, 한국의 영화 관객도 미국의 영화 관객들이 포퓰리즘의 승리를 확정 지은 것과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관에 모여든 관객들은 적어도 그 공간에서만큼은 어떤 엘리트의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는 포퓰리즘의 승리자들이다. 한국의 영화 관객들은 이제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며 스스로 영화를 선택한다. 하지만 선택의 기준은 대개 타자다. 남들이 좋아하니까 옳다. 대중이 언제나 옳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의 선택은 인터넷 이용자가 3천만 명이 넘는 네트워크에 힘입어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고 균일한 행동으로 전환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미 대중문화를 두고 벌어진 숱한 논쟁들이 산더미처럼 수북하다. 그러나 현재의 할리우드영화 산업에서, 그리고 그걸 모방한 한국의 영화 산업에서 게임은 결국 대자본이 승리하게 돼 있는 구도이며 이 과정에서 누구도 주체가 되기 힘들다는 것은 자명한 현실이다.
제작자도, 감독도, 스타 배우도, 관객도 개입할 수 없는 어떤 시스템 속에서 우리 모두가 영화관에서 즐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라는 거대한 환각에 취해 대개는 동어 반복의 값비싼 소비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여기서 개입해 선택할 수 있는 과정은 매우 천천히 일어난다. 저자에 따르면, 관객들의 선택이 모방에서 정보에 기반한 선택으로 변화하는 것은 보통 개봉 이후 수주 이내에 일어난다. 개봉 전과 후에는 대규모 마케팅 공세와 광역 개봉 효과가 관객의 주의를 선점하는 데 효과를 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작품 수준이 문제라는 것이다.
“블록버스터 전략이 그토록 얻고 싶어 하는 관객이 떼로 몰려오는 현상은 오직 입 소문의 평가가 박스오피스의 결과를 재확인해줄 때에만 일어난다. 양적 정보와 질적 정보가 일치할 때에만 긍정적인 피드백이 일어나고 관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현대의 영화 산업은 이 주기를 더 빨리, 짧게 만들기 위해 안달이다. 그건 영화의 미래를 위해 매우 불우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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