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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Together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sanna 2020. 11. 15. 23:29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기획)를 읽고

며칠전 써보려다 포기한 후기를 맘 고쳐먹고 쓰는 이유는 내가 '새벽 세시의 몸'을 돌보다 지친 날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1년간 병원을 전전하다 집에 돌아온 병든 아버지. 주말에 간병인 휴가 보내고 내가 부모님 댁에 가서 혼자서는 걸을 수도, 밥도 먹을 수도 없는 아버지 수발을 드는데, 아버지는 새벽 네 시쯤부터 깨어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고, 뭔가 망상을 보셨는지 흠칫 놀라고, 겨우 가라앉아도 불편한 뒤척임의 연속이더군요. 아파서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사람에게 새벽은 수렁같은 시간대인가봐요.

집에 모신지 딱 열흘 되었는데, 우리 가족은 이틀 뒤 다시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기로 결정했어요. 지난 번 모임에서 A님의 말처럼 "만감이 교차"하네요.... 겨우 열흘 모시고 포기하는 게 말이 되나, 아버지가 나아지기만 한다면 뭐든 다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죄책감에서부터, 겨우 열흘에 각자의 삶이 만신창이가 된 엄마, 동생, 나 자신을 보며 이대로는 지속불가능하다 생각하는 냉정한 판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락가락하는 마음... 

아버지가 병원에 계실 때 늘 속이 상하고 병원의 불편한 환경에 머물게 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는데, 결국은 내가 집보다 병원이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훨씬 많다, 이 상태로 가다간 엄마까지 쓰러진다고, 엄마를 설득하고 있더라고요.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집에 돌아오는데 이 책에서 읽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존엄한 의존', '시민적 돌봄'....의존하는 사람이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존엄한 의존', 가족에게 독박 씌우지 않는 '시민적 돌봄'....그런 아름다운 말들은 도대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 걸까요. 다 말 뿐이지,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이야? 싶게 삐딱한 마음만 들고, 더불어 수백번도 더 해본 상상, '나도 아버지처럼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다시 마음을 엄습합니다.

지난번 모임에서 책 읽은 소감을 이야기하며 끼적인 메모를 보니 우리도 대체로 스스로 자신을 추스를 수 없게 늙고 병들어버리는 일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것같아요. '어떻게 하지....'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나누다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으니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자, 로 끝난 모임 같은 느낌 ㅎㅎ

A님이 다쳤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영구적 장애인지, 일시적 장애인지를 판별하려 드는 타인의 시선, 이를 통해 장애를 멸시하는 시선에 대해 말을 꺼냈고, 저도 기저귀를 착용한 노인을 하급인간으로 분류하는 듯한 동네 할머니들의 수다를 떠올렸고요. 

젠더화된 돌봄을 탈출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분개도 있었습니다. 멀리 갈 것없이 제 가족만 봐도 엄마와 딸이 전전긍긍, 간병인도 여자가 훨씬 낫고요. '시민적 돌봄'이라는 말의 멋진 어감에 비해 실현 방법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는 상황에 대한 시니컬함 때문인지 저는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라고, 수첩에 동그라미를 몇 개 쳐놓았군요. 이런....

책에 실린 몇 개의 글 중 저와 B님이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글은 '치매,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였어요. B님은 본인의 미래를 상상하며, 저는 아버지를 상상하며 그랬던 것같아요. 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과 같은 대화는 어렵지만, 제스처로, 눈빛으로, 서로 어긋나기만 하는 문답으로라도 의사소통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고….저는 이 글을 읽으며 아버지 생각이 나서 펑펑 울었네요. 

아픈 사람의 시간과 돌보는 사람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C님의 이야기는 모임 이후에도 제가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주 떠올리던 말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과거에 이러지 않았는데' 와 같은 생각은 버리고 시간성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과거 시간에 대한 기억과 대조하지 말고 오직 현상하는 시간만 받아들인다면 돌봄의 심리적 스트레스도 덜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그게 가족에 대해서는 잘 되지 않는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돌봄'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때 어떤 장면이 연상되는지에 대한 대화도 인상적이었어요. D님은 '돌봄'을 생각하면 돌봄 받는 상황보다 돌보는 상황이 먼저 떠오른다는데. 저와 B님은 돌봄을 받게 되는,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공포가 먼저 떠올랐으니까요. 이건 자신이 어떤 연대의 그물망 안에 있다, 없다 생각하는 무의식적 사고의 차이일까요. 흥미로운 지점. 

내가 꼼짝도 할 수 없이 돌봄을 받는 상황이 된다면? 즉답으로 튀어나오는 대답은 "차라리 죽어버리겠다"인데, 동시에 떠오른 생각은, 죽어버리겠다고 단정적으로 결론짓는 내 마음 이면에는 죽어버리지도 않고 돌봄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을 보면서 '왜 사냐....' 같은 마음도 도사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내게는 피해갈 수 없는 화두인 아버지 생각이 나기도 하고요. 슬몃 죄책감과 함께.....그래도 100%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상황은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일터에서 아픈 사람을 바라보는 C님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다보면, 그 사람의 짐을 떠맡게 되면, 내 옆의 아픈 사람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데 왜 그래야 하나. 돌봄이 시스템화 되어 있다면 내 옆의 아픈 사람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텐데, 우리가 아프든 건강하든 공존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 아파도 생활이 가능한 안전망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모두 고개를 끄덕끄덕.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데, '그래서 어떻게?'에 대해선 참 답이 나오지 않았던 토론이었달까요. 모두가 직면한 문제라, 뭐 우리만 그러겠습니까만. 

책에 실린 심보르스카의 시와 함께 장애여성 공감의 선언문도 참 좋았는데, 내친 김에 링크 찾아 아래 붙입니다.

https://wde.or.kr/2%EC%9B%94-%EC%9B%B9%EC%86%8C%EC%8B%9D%EC%A7%80-%EA%B8%B0%ED%9A%8D-%EC%9E%A5%EC%95%A0%EC%97%AC%EC%84%B1%EA%B3%B5%EA%B0%90-20%EC%A3%BC%EB%85%84-%EC%84%A0%EC%96%B8%EB%AC%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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