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신천리 바닷가 신천목장 (올레 3코스) 제주 표선 해수욕장 (올레 3코스) 비양도가 보이는 협재해수욕장 (올레 14코스) 제주 바다의 서로 다른 색채. 동쪽 올레 3코스의 신천리 바닷가와 서쪽 올레 14코스의 협재 해수욕장. 1.5일의 짧은 일정에 제주도 한복판에 자를 대고 가로로 금을 그으면 맞닿을 만큼 동서로 떨어진 곳을 다녀온 이유는.......미련하기 때문이다. 14코스 쪽에 숙소를 잡고도, 1주일 전 한겨레신문에 나온 신천리 바닷가 풍경 (바로 이 기사)에 홀딱 빠져 동쪽 올레 3코스를 걸어야지 했다. 문제는 그러면 숙소를 취소하고 동쪽으로 잡아야 하는데, 선불로 숙박료를 모두 납부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 때까지 그 생각을 한번도 하지 못했단 점.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일로 정신이 없어 ..
새벽 2시. 얼른 자야 할 시간에, 안 잘 거면 밀린 일을 하는 게 나을 시간에, 이런 사진이나 올리고 있다니... 뭔 짓이람. ㅠ.ㅠ 턱 밑까지 들어찬 일들을 어서 해치우고 저곳으로 떠나고 싶다. 주말 제주 비행기표를 예약해놓았다. 인천 앞바다에 배만 들어오면, 하는 심정으로 이번 주만 지나면! 을 되뇐다. (그럴 시간에 일할 생각은 안하고...) 상상만 해도 질릴 분량의 일들이 눈 앞에 놓여 있지만...... 어쨌든 이번 주만 지나면! 지난해 말 한라산에 가기 전날 걸었던 제주올레 12코스. 생이기정 바당길에서 차귀도를 내려다보며 함께 간 친구가 만들어준 위스키 커피를 마셨다. 그 맛이란! 이번 주말엔 내가 다른 친구를 위해 그걸 준비해서 가야지. 올해는 되는대로 제주올레를 다 걸어볼까 한다. 처음엔..
한 해 끝자락에 오른 겨울 한라산. 원래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려던 계획은 무산됐고, 히말라야 몫으로 아껴둔 휴가를 한라산행에 썼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 오르지는 않았고 윗세오름까지. 영실-> 윗세오름 -> 어리목의 코스. 국립공원 홈페이지와 여러 사이트들 검색해보니 4시간 반이면 충분하다는 코스인데 나는 6시간이 걸렸다. 두리번 거리며 구경하고 느릿느릿 걸었는데 몸에 무리가 없고 적당하다. 한라산의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해서 영실에서 올라갈 때만 해도 자욱한 구름 때문에 백록담이 있는 봉우리도 못볼 줄 알았다. 그런데 구상나무 숲을 빠져나오니 두둥~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 운무가 몰려오고 휘몰아 사라지는 변화의 속도가 장난 아니다. 영실에서 올라갈 땐 구름(운무인지, 가스인지, 눈보라인지…)이 몰려들어 ..
9월 초, 3일간 친구들과 제주 여행. 강정마을을 함께 다녀오고, 올레길 20코스를 함께 걷고, 용눈이오름, 섭지코지, 두모악 갤러리, 거문오름, 곶자왈 숲길, 사려니숲길을 돌아다니고, 함께 사우나를 하고, 흑돼지구이의 맛에 감탄했던 여행. 열아홉 살 때 만나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이다. 트렌드에 발맞춰 살아가는 데에는 영 관심 없는 아이들이라, 그 흔한 트위터, 페이스북 하는 애들도 없다. 얘네들과 함께 있으면 트위터도 블로그도 하고, 한참 전 탈퇴해버렸지만 페이스북도 했었고, 이메일도 자주 체크하는 내가 엄청나게 디지털 문화에 빠삭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기분. 끼리끼리 논다고, 죄다 나처럼 무뚝뚝하고, 살가운 감정 표현 같은 거 없고, 심지어 이메일이나 문자에 답신도 거의 안해서 가끔 울화통이 터..
6월말, 앙코르와트로 이른 휴가를 다녀왔다. 무엇을 봤는지 벌써 가물가물하다. 사실 ‘구경’한 게 없어서 더 그럴 것이다. 관광 비수기에 우기라서 앙코르의 거대한 폐허는 가끔 적막했다. 무너진 사원의 고요한 그늘에 오래 앉아 있었고 이런 순간들이 좋았다. 앙코르톰 연못가 고목나무 아래 앉아 수첩에 잡생각을 끼적이던 오후, 텅 빈 사원의 반질반질한 돌 위에 앉아 졸던 기억, 폭우가 퍼붓는 광경, 툭툭을 타고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 사이의 오래된 길을 달릴 때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던 바람의 느낌, 나를 만나러 6시간 버스를 타고 그곳까지 온 후배와 나눈 잡담, 함께 바라본 빗줄기, 함께 들은 리히터의 음악, 함께 마신 레몬 맛 칵테일. 뭐 그런 것들. 참 좋았던 순간들,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순간들. ‘행복’이..
흐린 날, 마음 대청소. 저녁에 책장과 너저분하게 널린 글 쪼가리들 정리하던 중 2월 코펜하겐 출장 다녀온 뒤 끼적이다 만 메모를 발견. 서울에 돌아오기 전 반나절 여유 시간 동안 머물렀던 해방 구역 크리스티아니아에 대한 메모다. 아이폰을 뒤져보니 사진도 몇 장 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곳. 잊기 전에 추억 삼아 올려놓는다. ---------------------------------- 코펜하겐 안의 해방 구역, 크리스티아니아는 입구부터 범상치 않았다. ‘크리스티아니아’ 입구를 들어선 뒤 돌아보니 반대쪽엔 ‘당신은 지금 EU로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우린 EU 밖의 자유구역’이라고 선포하는 셈이다. 마을 안 담벼락엔 누군가가 "International"에 반대되는 의미로 “O..
일본 오사카 근처 이바라키 시에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빛의 교회를 찾아갈 때였다. 길을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주택가였지만 유명한 건물이니 표지판 같은 건 있을 줄 알았다. 아니면 교회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높은 십자가라도. 웬걸,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모양인지,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안도 다다오”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따라오라며 길을 보여주었다. 가까이에서 봐도 교회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지판은 없었다. 노출 콘트리트 담벼락에 그저 ‘일요일은 교회에’라고 적힌 크지 않은 표어가 붙어있을 뿐이다. 육중한 미닫이문을 열고 교회 예배당 안에 들어서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천장에 등도 없고 어둑한 공간을 비추는 유일한 빛은 정면 벽에 뚫린 십자형 창으로 쏟아져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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