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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근처 이바라키 시에서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지은 빛의 교회를 찾아갈 때였다. 길을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주택가였지만 유명한 건물이니 표지판 같은 건 있을 줄 알았다. 아니면 교회라는 걸 알아볼 수 있는 높은 십자가라도.


웬걸,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모양인지,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안도 다다오”라고 말을 꺼내자마자 따라오라며 길을 보여주었다. 가까이에서 봐도 교회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지판은 없었다. 노출 콘트리트 담벼락에 그저 ‘일요일은 교회에’라고 적힌 크지 않은 표어가 붙어있을 뿐이다.

 

 

육중한 미닫이문을 열고 교회 예배당 안에 들어서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천장에 등도 없고 어둑한 공간을 비추는 유일한 빛은 정면 벽에 뚫린 십자형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십자가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빛의 십자가는 크고 압도적이었다. 노출 콘크리트 벽에 가로세로로 기다랗게 교차하는 창을 뚫어놓았을 뿐이지만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 십자가는 다른 교회나 성당의 대형 십자가보다 더 위엄 있고 경건했다. 

예배당 안엔 난방 시설도 따로 없이 석유난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안도 다다오가 빛의 십자가를 착안하게 된 계기는 극도로 부족한 예산이었다고 한다. 교회 신자들이 모아 준 건축비가 "너무나 안쓰러운 수준"이었던 탓에 단순한 박스형 공간으로 최대한 종교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1년을 고심해 내놓은 설계였다. 

십자가 창을 통한 안과 밖의 뚫림이 주는 느낌은 묘했다. 빛의 십자가로 어둑한 공간을 그 어느 곳보다 종교적 느낌이 강한 수도원의 분위기로 만들어 내면서도, 동시에 그 앞에 무릎꿇은 사람에게 '구원은 저 밖에 있나니, 밖으로 나아가라'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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