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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사람들은 항상 앞만 보고 뒤를 못보니까 반밖에 모르잖아요. 나머지 반을 보여주려고요.”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 양양이 아빠에게 -

대만 소년 양양이 영화 ‘하나 그리고 둘’(DVD·스타맥스)에서 카메라를 갖고 놀며 찍은 사진들은 죄다 뒷모습이다. 어른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양양은 “나머지 반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꼬마 철학자 같은 대답을 들려준다.

소년의 이 조숙한 신념은 학교에서 부당하게 혼이 난 ‘아픔’에서 비롯됐다. 그저 풍선을 갖고 놀았을 뿐인데 남의 고자질만 믿는 선생에게 “콘돔을 내놓으라”고 혼난 뒤부터, 양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믿지 않는’ 어른들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양양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스토커’(DVD·20세기폭스)의 싸이는 보이는 것만 믿다가 비극을 맞게 된 어른이다.

사진현상소에서 일하는 싸이의 유일한 낙은 자신에게 10여년간 사진을 맡겨온 니나네 가족을 훔쳐보는 것이다. 니나가 연애할 때부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까지 오랜 기간 그들의 사진을 들여다본 싸이는 자신을 니나네 가족의 일원처럼 느끼게 된다.

이 가족에게도 불화의 시간이 있었을 테지만, 싸이가 10여년간 보아온 것은 행복한 순간들뿐이었다. 싸이는 자신이 믿어온 행복한 ‘이미지’를 배반하는 사건을 맞닥뜨리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난폭하게 돌변한다. “삶의 진짜 사진을 구성하는 것들은 다 쓴 일회용 밴드처럼 사소하고 사람들이 사진으로 찍지 않는 것들”이라는 싸이의 내레이션처럼, 이 영화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늘 그렇게 껍데기에 불과한 걸까. 누구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은 사진으로 찍지 않는다. 그렇다면 거꾸로 사진으로 남긴 순간들을 통해 기억을 재구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즐거운 순간들을 많이 채집해 놓을수록 미래의 어느 시점에 과거를 흐뭇한 추억으로 떠올릴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 같다.

캐나다 빅토리아대 심리학과 스티븐 린지 교수는 얼마 전 대학생 실험 대상자들에게 초등학교 때 있었던 일이라고 꾸며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럴 듯한 사진을 보여주면 3분의 2가 조작된 기억을 진짜라고 믿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린지 교수는 “기억은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기대 및 믿음 사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발생하는 경험”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기억은 체내에 저장된 게 아니고 맥락에 따라 곧잘 달라지는 가변적인 것이다.

인터넷 미니홈피가 처음 시작됐을 때 나는 자기 사진을 인터넷에 띄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 합성되면 어떻게 하려고…. 지금도 사진을 띄울 용기는 없지만 아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는 것은 즐겁다. 행복했던 순간을 스크랩해 추억으로 간직해 놓으려는 놀이 같다.

절친한 후배 한 명이 얼마 전 미니홈피에 야심찬 ‘얼짱’ 사진을 올려놓은 날, 오래 준비해 온 시험에서 낙방했다. 어떻게 위로할까 걱정하며 미니홈피에 들렀더니 벌써 그 사진 밑엔 근심을 날려버리는 가벼운 웃음들과 위로가 담긴 덧글이 줄줄이 사탕처럼 달려 있다.

몇 년 뒤 그가 지금을 생각하면 낙방의 추억으로 아플까? 그보다는 너무 폼을 잡느라 좀 우스꽝스러운 사진과 덧글들이 주는 추억에 빙긋 웃게 될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낙담이 꽤 크겠지만, 설마 그 때문에 싸이처럼 ‘왜 날 배신했느냐’는 테러를 자신에게 가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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