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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에서 디마토 감독이 선수들에게-
미식축구 경기를 피 튀기는 전투처럼 묘사한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DVD·워너 브러더스)에서 디마토 감독(알 파치노)이 마지막 시합을 앞둔 선수들을 모아놓고 펼친 일장연설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 연설은 두 가지를 떠오르게 했다. TV 광고의 유명한 카피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라’와 미식축구의 전설적 감독인 빈스 롬바르디.
패배자였지만 결국 승리하는 디마토 감독은 1960년대 만년 하위 팀을 이끌고 슈퍼볼 2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고 탁월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롬바르디를 모델로 삼은 것 같다. 슈퍼볼 우승팀에 수여되는 트로피의 이름이 ‘빈스 롬바르디’일 정도로, 그는 미식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이다.
엄격한 조련사로 이름난 롬바르디의 신조는 ‘최선을 다 하라’였다. 그는 훈련 때 빈둥거리던 선수를 이렇게 나무랐다고 한다.
“연습할 때 꾀를 부리면 너는 시합에서도 꾀를 부릴 것이다. 그리고 시합에서 꾀를 부린다면 너는 앞으로 살아가면서도 꾀를 부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다.”
‘최선을 다 하라’는 요구는 ‘하면 된다’는 믿음과 일맥상통한다. 성적이 나쁜 딸에게 ‘너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해서 탈’이라고 혼내는 엄마처럼, ‘최선을 다 했더라면 잘 했을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한동안은 그게 딸의 머리가 정말로 나쁜 줄을 모르는 엄마의 착각처럼 보였다. 엄마, 세상엔 해도 안 되는 일이 널렸다고요….
그런데 롬바르디의 이야기를 찾아 읽으면서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승리가 지상과제인 미식축구팀 감독이었던 그는 어째서 “승리한다는 것은 시도한다는 것 그 자체”라고 했을까?
‘하면 된다’는 믿음은 스스로의 우월성에 대한 자각에 기초해서만 가질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옛 성현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사실 자신을 아는 것은 근심과 우울의 시초다. 자신을 똑바로 보면 겁쟁이에 재능도 없고 성격도 엉망이니까. 그런데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게 정상이다.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더 잘 살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아닌 ‘나’로 살려면 스스로를 믿는 마음을 가지는 수밖에 없어서다. 평생 그렇게 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거의 종교적 수준의 결단이 필요한 일이지만.
하면 될지 안 될지는 해보기 전엔 모른다. 중요한 건 1인치씩만큼만 움직여보기, 많은 시간과 혹독한 삶을 견디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가 아닐는지. “1인치를 찾다 죽는 것이 삶”이라는 디마토 감독의 말도 그런 뜻 같다.
그래도 안 되면 어쩌냐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종교학자 현경이 농담 삼아 “도 중에 가장 큰 도는 ‘냅도’”라고 말한 것처럼, 내버려두는 수밖에. 작게는 최선을 다해 보고 크게는 ‘냅둬 보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결국 될 것은 되고 안 될 것은 안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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