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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

‘티핑포인트’  ‘블링크’로 유명한 미국 작가 말콤 글래드웰이 이번엔 ‘뉴요커’지에 ‘Late Bloomers(늦되는 사람들)에 대해 썼군요.
천재는 어릴 때부터 남다르고 조숙하다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입니다. 글래드웰이 요즘 '뉴요커'지에 쓰는 글들을 보면 그의 다음 책 주제는 아마 천재성, 탁월성을 다시 규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몇 달 전엔 역사상의 위대한 아이디어들이 사실 한 명의 탁월한 천재에게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을 쓰기도 했습니다.

'늦되는 사람들'에선 인생 후반기에 천재성을 발휘한 예술가들을 조명합니다. 흔히들 천재성은 인생 전반, 어릴 때부터 드러난다고들 하지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42%는 그가 50살이 넘은 뒤 쓰여졌습니다. 
앨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은 54~61세에 그의 가장 중요한 영화들-‘다이얼 M을 돌려라’ ‘이창’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사이코’ 등-을 만들었다지요. 대니얼 디포가 ‘로빈슨 크루소’를 쓴 것은 58세, 마크 트웨인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것은 49살 때의 일입니다.

글래드웰이 조숙한 천재 Vs. 인생 후반부에 두각을 나타낸 천재로 비교한 예술가는 피카소와 세잔입니다. 피카소는 청년시절부터 탁월했지만 세잔은 정반대였다는군요.
미국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갤런슨은 두 예술가의 절정기를 돈으로 비교해보았습니다. 미술경매에서 팔리는 피카소, 세잔의 그림 가격과 각 그림을 그렸을 당시 그들의 나이를 비교해본 거지요. 그 결과 젊은 시절부터 탁월했던 피카소가 20대 중반에 그린 그림은 60대 때의 작품보다 평균 4배 비쌌습니다. 반면 뒤늦게 두각을 나타낸 세잔은 60대 중반에 그린 작품이 젊을 때의 그림보다 무려 15배나 비쌌다는군요.


피카소처럼 조숙한 천재들은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늘 머릿속에 뚜렷한 상을 갖고 일을 시작합니다. 피카소는 한 인터뷰에서 "왜 '리서치'가 중요하다고들 하는지 나는 잘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늦되는 사람들은 창작의 과정이 점진적입니다. 
뭘 하고 싶은지 불분명할 때 '번쩍'하는 순간을 기다리기보다 시행착오의 반복을 통해 배우고 개선하는 것이 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내는 방법입니다.
늦되는 사람들은 
완벽주의자들인 경우가 많고 자신의 무능력에 곧잘 좌절하곤 한다는 군요. 마크 트웨인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쓸 때 좌절해서 포기했다가 다시 시작했다가를 하도 여러번 반복하는 바람에 이 소설은 완성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답니다. -.-;
그런가 하면 세잔은 
‘귀스타브 제프로아의 초상’을 그릴 땐 제프로아를 80번이나 모델을 서게 하면서 석달동안 그려놓고서는 결국 실패작이라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 그는 여러 번 다시 그리고 좌절에 빠져 캔버스를 난도질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고 하는 군요. ^^;

늦되는 사람들은 늦게 시작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잔은 피카소만큼이나 일찍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잔이 늦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이가 들 때까지 별로 그림을 잘 그리질 못했기 때문이죠. -.-;
성취로 가는 길에서 '늦게 피는 꽃'은 종종 실패한 인생과 헷갈리기 십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자신의 길에 대한 맹목적 믿음, 그리고 (글래드웰은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던데)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정신적, 재정적 후원자들입니다.

글래드웰 기사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소설가 벤 파운틴의 사례는 그런 점에서 꽤나 감동적입니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부동산 관련 회사에서 일하던 파운틴은 소설을 쓰려고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가 첫 단편소설집 '체 게바라와의 짧은 만남'으로 상도 타고 그 해 각 신문의 '올해의 책'을 휩쓴 때는 백수가 되어 매일 오전 7시반에 식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8년이 지난 뒤, 그의 나이 48살 때의 일입니다.
그가 글감을 찾아내는 방식도 참 고생스럽더군요. 소설 참고용으로 자료를 모으다가 그동안 스크랩해둔 기사 파일을 보게 되었는데 자신이 아이티 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대요. 그래 좋아, 이걸로 소설을 쓰면 되겠네, 생각하게 되었고 아이티에 30번 이상 가봤답니다. 
그렇게 해서 '체 게바라~'에 실린 단편 중 4개가 아이티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30번 이상 현지 취재를 가서 단편 4편을 건졌다면 투자 대비 효율의 측면에서 볼 때 그다지 효율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어쨌든 늦되는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기 길을 찾는다는 거죠. 미련하게~, 뚝심있게~.

글래드웰은 글 마지막에서 '늦게 피는 꽃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러브 스토리'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들을 아끼고 맹목적으로 후원하는 지지자들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성취라는 것이죠.
파운틴도 아내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살지 못했을 겁니다. 파운틴 부부는 아들을 낳은 뒤 변호사인 아내가 계속 돈을 벌고 파운틴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글을 쓰기로 역할 분담을 합니다.
파운틴이 소설을 쓰겠다고 할 때 그의 아내는 시간을 10년 주자, 생각했다고 합니다. 뭔가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게 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군요. 파운틴은 처음엔 쓰는 글마다 족족 최소 30번 이상씩 출판을 거절당했습니다. 4년 걸려 소설을 써놓고 자기가 보기에도 별로여서 서랍에 처박아둔 적도 있다고 합니다. 5~6년간 아무 결과물도 내지 못하는 암흑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기간을 통틀어 파운틴은 아내에게 노골적이건 은근한 것이건 어떤 압력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멋진 아내입니다. 이런 마누라,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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