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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터닝 포인트-2] 최혜정- 광고인에서 국제NGO 실무자로


Before: 레오버넷코리아 제작이사, W브랜드커넥션 본부장

After: 국제NGO ‘세이브 더 칠드런’ 자원개발부장

Age at the turning point: 46



“저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평화’가 떠올라요. 6살 때 낮잠을 자다 깼는데 부엌에선 엄마가 밥 짓는 냄새가 나고 비 온 뒤 적막하고 깨끗한 마당에 낙숫물이 뚝뚝 떨어지던 풍경. 그게 기억에 선명한 ‘행복’의 이미지입니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이란 새로운 모험과의 조우를 뜻할 수도 있지요. 그렇게 전부 다르니까 ‘나만의 행복’이 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해요.”


그렇게 말하는 최혜정 부장(48)의 표정은 뭘 더할 수도 없을 만큼 충만해 보였다. W브랜드커넥션 본부장을 지내는 등 22년간 광고업계에서 일하던 그녀는 2007년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뒤인 2008년 세계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는 국제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고액 연봉과 안정된 지위를 버리고 박봉의 NGO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녀는 “벼락같은 계시로 인생항로를 바꾼 것도 아니고 대안적 삶을 찾은 것도 아니다”면서 “원래 살고 싶었던 방향을 따른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와 2002년 신문에 실린 그녀의 기사를 찾아보았다.
당시 레오버넷 코리아 제작이사였던 그녀는 맥도널드 광고 ‘목숨걸지 맙시다’로 세계 3대 광고제 중 칸 광고제 은사자상, 뉴욕 광고페스티벌 금상을 휩쓸어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당시 인터뷰에서도 광고는 “인간의 진실한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GO를 선택한 이유로 “사람과의 접점에 서 있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고 말하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7년 전에도 그녀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던 사람 같았다. “원래 가려던 방향을 따랐을 뿐”이라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 자기 안의 질문을 따라 가기


40대 초반부터 그녀는 “이게 과연 내가 살고 싶은 삶인가”하는 질문과 씨름하기 시작했다.

“광고업계에서도 물론 성취감을 느꼈지만 본질적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냐는 또 다른 문제 같았어요. 내가 진짜 나의 모습으로 사는가, 내 속도감으로 살고 있는가, 그런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지요.”


질문을 품게 만든 충격적 사건이 2004년에 있었다. 그해 여름 다니던 교회의 대학생들과 함께 한 장애인 교회로 봉사활동을 갔을 때였다.
인솔자인 그녀가 방문자를 맞으러 문 앞에 서 있는데 교회 담당자가 오더니 갑자기 “여기 말고 부엌에 가 있는 게 어때요?”하는 거였다.

“내 얼굴이 너무 긴장되고 어두워서 오는 사람들이 불편하겠다나요. 얼떨결에 부엌으로 쫓겨나 수십 명 분의 불고기를 볶으며 ‘내가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좀 지나면 잊을 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명상 심리검사 코칭 등 온갖 시도를 해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 깨달은 자, 붓다’ ‘링크’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같은 책을 읽으며 다른 시각과 심지를 갖추려 노력했다. “앞으로 20년 더 내 인생을 갖고 뭘 하고 싶은가”를 오래 고민하던 와중에 학창시절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치유를 겸한 대안학교를 해보면 좋겠다고도 막연하게 꿈꾸었다.


“회복이 아니라 해독을 위해 쉴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2007년 5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마음가는대로 관심사를 따라 혼자 공부하던 도중 우연히 신문에서 희망제작소의 ‘제1회 행복설계 아카데미’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이 아카데미를 마친 뒤 간사의 우연한 소개로 2008년 5월 ‘세이브 더 칠드런’과 연이 닿게 됐다.

“광고회사를 그만둘 땐 NGO에 가리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대안학교를 꿈꾸며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는 그녀의 꿈과 크게 동떨어진 곳도 아니었다. 다른 길로 향한 문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모서리에서 열렸다.


● 전환의 때를 어떻게 알 것인가


진로를 바꾸고 싶다고 해도 지금이 좋을지,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하는지 결정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때가 되면 스스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겁이 나거나 생계는 어떻게 하나 등등 모든 경우의 수가 다 떠오르고 그걸 정리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면 아직 때가 아닌 거죠. 제 경험으론 때가 되면 질문이 단순해져요. ‘다음에 뭘 하지?’하는 질문에도 ‘6개월간 찾아보자’같은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아직 때가 아니라면 “장, 단점 파악 등 ‘계획’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지 말고 무보수든 주경야독을 하든 원하는 일에 발을 슬쩍 담가보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는 게 그녀의 조언이다.

하지만 그 ‘원하는 일’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녀는 “뭘 하고 싶은지가 단 번에 명료하게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요? 처음부터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 그리 많을까요?”하고 반문했다.


“점프 대신 징검다리를 건너듯 연결하면서 살아도 되잖아요. 두서없이 여러 생각이 든다면 조금씩 맛을 보고 아닌 걸 지워나가는 과정도 필요하고요. 뭘 하다가 그만두면 그만큼 인생과 시간의 낭비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경험들이 연결되어 쓰이게 되지요. 전 늘 ‘어디로 가든 크게 보면 내 길이겠지’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 길 안에서 움직일 뿐이지 내가 갑자기 영판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 다른 사람, 다른 집단과 네트워킹하기


광고회사를 그만두기 전부터 그녀는 일부러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약속의 70% 정도는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스님 목사 신부님을 찾아가기도 하고 포럼, 커뮤니티, 광고회사 고객으로 모셨던 어른들을 찾아갔다. 무턱대고 “제가 어떻게 보이나요?”하는 질문도 숱하게 던졌다.


“길을 바꾸고자 한다면 늘 보는 직장 동료는 같은 정보를 공유한 사람들이어서 별 도움이 안돼요. 다른 클러스터, 다른 시각을 만날 필요가 있어요.”


그녀는 관심사를 좇다보니 말 그대로 “6개월 만에 100명을 알게 되더라”고 했다. 회사를 그만둔 뒤 처음 그녀의 관심을 끈 분야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프로그램이었고 인터넷을 뒤지고 학회지를 구독하고 강연을 찾아가면서 점점 네트워킹을 넓혀 갔다. 결과적으로는 다른 길 위에 서게 되었지만 처음에 희망제작소에 이끌린 것도 이 관심사 때문이었다.


● 계속 성장하기


NGO에서 일하면서 수입은 이전보다 절반 이하로 줄었고 출장지는 파리 뉴욕에서 아프리카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큰 보상을 얻는다고 했다.


“이 돈이 가면 한 아이가 웃는다는 그 연결선이 한 눈에, 명확하게 보이니까 그것만큼 큰 보상이 없지요. 아프리카 신생아를 위한 모자 뜨기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동봉해 보낸 편지를 볼 때마다 숱하게 눈물이 났는데 세상에 참 좋은 사람이 많다고 실감했어요. 그렇게 긍정적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다른 데에서 얻기 어려운 보상이죠.”


10년 쯤 뒤에도 계속 이렇게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대안학교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계획이나 결심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미래 아닌가요? 나는 여기서 계속 성장하고 싶어요. 그 마음에 진정성만 있다면 이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 시리즈는 터닝 포인트 블로그 에도 동시에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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