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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멋졌다

예쁜 비밀

sanna 2009. 6. 7. 22:29

우리는 흔히, 주변의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치고 살아간다. 개인의 삶이 치열하건 지리멸렬하건, 어쨌든지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일상들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더럽고, 추잡하고, 그 속이 너무 뻔해서 감추고 싶어지는 것들이 대부분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로 삶이 내팽개치고 싶어질 만큼 모든 것이 싫어질 때가 아닌 다음에야, 나는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은밀한 낙으로 삼는다. 때로 외부를 향한 그런 성향이 도가 지나쳐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조차도, 나는 그런 은근함을 찾아내는 것을,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예쁜 비밀들을 하나 둘 늘려가는 것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이번 작품의 소재는 그런, 나의 내밀한 비밀들을 조금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별것 아닌 말라깽이 나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창밖의 떨리는 나뭇잎들이 동트기 직전 동화나라에서처럼 갑자기 깨어나 얼마나 찬란한 빛을 발하는지, 그 것을 비밀스레 발견한 사람의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한 번은 보여주고 싶었다.  
 - 작가의 말 -

내 동생, 김현경이 5월27일~6월2일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무심하고 게으른 언니는 전시회 전에 올렸어야 할 포스트를 이제사 씁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삽니다. 올빼미형인 저와 달리 그녀는 새벽형 인간이라 우리는 한 집에 살면서도 좀처럼 얼굴을 마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첫 번째 전시의 주제를 ‘창밖의 풍경’으로 하겠다고 언뜻 들었을 때 나는 “어느 창?”이라고 물었던 것 같고 그녀는 우리 둘이 앉아 있던 집의 창문들을 가리켰습니다. “저거…, 또 저거, 저거.”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바라본 창밖은 내 눈엔 너무 시시해서 '풍경'이랄 것도 없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져 "야, 나뭇가지 밖에 없잖아?"하고 묻는 나를 바라보더니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 동트기 직전에 언니가 한번 봐야 되는데..."

그러다 언젠가, 밤늦게나 주말밖에 작업할 시간이 없던 그녀를 응원하러 작업실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막 작업을 시작한 캔버스엔 화려한 색채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그림들은 모두가 잠든 새벽녘 그녀가 홀로 깨어 포착해둔 창밖의 순간들입니다. 그 때는 완성되기도 전이었던 그림들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매일 무심히 보던 창밖, 내 둔한 시야로는 어떤 아름다움도 발견할 수 없던 창밖에 이런 풍경이 있을 줄이야....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나는 “별 것 아닌 말라깽이 나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창밖의 떨리는 나뭇잎”들이 “갑자기 깨어나 찬란한 빛”을 발할 때, 그 시간에 홀로 깨어 경이롭고 비밀스러운 제의에 참여하며 가슴 뛰었을 그녀를 상상합니다. 또한 그 찬란한 순간을 그려넣기 위해 매일 파김치가 된 몸으로 돌아와 밤마다 캔버스 앞에 마주섰을 그녀를 생각합니다. 붓터치로는 원하는 질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몇시간씩 서서 물감을 일일이 손으로 펴 바르고 지문이 닳도록 문지르던 그녀를 떠올립니다. 주책맞은 언니는 괜시리 그런 동생이 눈물겹습니다. 그녀 나름대로 통과하는 중인, 쉽지 않은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힘도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예쁜 비밀'을 쌓아가는 그녀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려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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