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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폐아 영혼…‘고릴라왕국에서 온 아이’


◇고릴라왕국에서 온 아이/던 프린스휴즈 지음·윤상운 옮김/북폴리오

어려서부터 남들과 소통하지 못했던 소녀는, 술을 마셨다. 자폐 증세와 동성애적 경향 때문에 폭력적 공격에 시달리다 16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가 노숙인 생활을 시작했다. ‘고독한 행위’인 춤만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던 그녀는 스트립쇼 댄서가 되어 남자들이 동전을 집어넣는 유리 상자 안에서 춤을 추었다.

‘정상’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 짓눌려 고독했던 그녀를 구원해 준 것은 사람이 아닌 고릴라였다. 그녀의 영혼이 ‘세상의 일그러진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채 창살에 갇혀 힘겨워하고 있을 때’ 우리에 갇힌 고릴라들이 거울처럼 그녀의 영혼을 비췄다. 고릴라를 통해 스스로를 발견한 저자는 어릴 적 꿈을 되살려 현재 인류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동물을 통한 자폐증 치료 성공담이 아니다. 저자는 여전히 자폐증을 앓는다. 다만 자신의 증세를 세상을 바라보는 한 방법으로 삼고 사람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웠을 뿐이다. 이 책은 저자가 고릴라의 도움으로 ‘자폐증이 드리운 깜깜한 세상’에서 빠져나와 ‘자폐증의 아름다운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 준다.

저자는 언어와 인지능력 등은 멀쩡하지만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반복 행동에 열중하며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한 ‘고기능’ 자폐아다. 그런 탓에 36세가 될 때까지 자신이 자폐증인지조차 모른 채 방황하던 저자는 우연히 동물원을 찾은 뒤 인생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갇힌 고릴라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인간이 지금까지 자신을 대해 온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낀 저자는 사람들 틈에서는 엄두도 못 낼 방식으로 고릴라를 관찰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신장염을 앓던 고릴라 니나가 밥 먹기를 거부하자 고릴라 피트와 주리는 니나에게 나뭇가지를 던졌다. 관람객은 고릴라들이 싸운다고 떠들어댔지만 니나는 결국 일어나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피트와 주리는 그런 니나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염려하는 마음, 분노와 유머 종교적 감성을 고릴라에게 배우면서 저자는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인류학자가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다시 떠올렸고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열정으로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갔다.

저자가 두고두고 잊지 못하는 고릴라는 콩고다. 기분이 언짢던 어느 날 저자가 콩고의 우리 앞에서 눈물을 흘리자 콩고는 저자가 기대어 울도록 어깨를 내주었다. 상대를 염려하는 콩고의 위엄을 직접 경험하면서 저자는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죽음을 앞둔 콩고에게 ‘유 아 마이 선샤인’을 불러준 저자는 해부되어 미국 전역으로 이송된 콩고의 유해 대신 한 줌의 털을 갖고 아프리카에 가서 돌려주고 온다. 그리고 스스로를 세상 속으로 흘려보내고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저자가 연인 타라를 만나고 인공수정으로 아들 테릭을 얻은 일은 그렇게 세상을 받아들인 결과물이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나눌 수 없는 경이로운 것과 끔찍한 것들을 모두 글로 표현’해 온 덕택에 저자가 서술하는 고릴라와의 교감은 한없이 아름답다. 8세 때 ‘내 인생은 끝장’이라고 느꼈던 저자는 이제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조상과 다음 세대, 자폐인과 ‘정상’세계, 유인원과 인간을 잇는 다리처럼 느낀다. 자신의 잠재력을 최고로 발휘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느낌을 가질 것이다. 이것은 노래 한 곡을 완벽하게 익힌 것과 비슷하다. 그 노래는 가사와 선율을 떠올리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나온다. 고릴라 왕국의 노래가 그러하다. 나는 날마다 그것을 부른다.”

 고릴라 왕국에서 온 아이  던 프린스-휴즈 지음, 윤상운 옮김
고릴라들로부터 의사 소통의 방법을 배우게 된 한 자폐인의 에세이. 따돌림과 폭력에 시달리던 지은이가 아스퍼거 증후군을 딛고 인류학 교수의 꿈을 이루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사람의 자폐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지은이가 지켜보는 고릴라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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