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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다채로운 꽃잎의 화관, 암술 위에 올라앉은 씨방, 화분을 담은 수술 등 유혹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경이로운 생물체다. |
세포는 이리저리 헤엄을 치다가 다른 세포의 편모에 스친다. 동성일 경우에는 “미안, 착각을 했어요”라고 말하고는 각자의 길을 가지만 이성을 만나면 그때는 완전히 얘기가 달라진다. 서로 더듬으며 애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서로의 편모로 감싸며 핵끼리 접촉할 수 있도록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 모든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그들이 서로를 유혹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유혹을 필터로 삼아 진화의 역사를 바라본다. 이토록 낭만적이고 에로틱하게 생명체의 진화사를 보여 주는 책도 드물 것이다. 프랑스의 식물학자이자 시인인 저자는 이해하기 쉽도록 적절한 의인화를 가미해 놀라운 유혹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생명체가 최초로 발견한 유혹의 기술은 색이었다. 40억 년 전 지구의 표면에 떠 있던 원자들이 합성하는 단계에서 기적적으로 생명체의 근원이자 색깔의 아버지인 엽록소가 탄생했다. 세포는 분자의 합성 사슬 모양을 수정해가며 색에 이어 냄새를 만들고 페로몬이나 동식물성 호르몬의 근저가 되는 스테롤과 카로티노이드가 생성된다.
저자는 6500만 년 전 공룡의 멸종도 유혹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운석 충돌로 태양빛을 받지 못한 식물들이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만들지 못해 멸종했고 제대로 먹지 못한 공룡은 몸의 색깔을 잃어갔다. 색깔을 잃는다는 것은 유혹 능력의 상실, 즉 알을 낳거나 자식을 생산해낼 수 없다는 뜻이다. 바로 이 점이 공룡의 멸종을 재촉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식물 곤충 어류 조류 포유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혹의 기술은 무궁무진해진다.
프랑스 토종 난초인 오프리스 아피페라는 페로몬을 뿜어내며 암벌의 엉덩이 모양을 빼닮은 꽃부리로 수벌을 꼬드긴다.
이는 머리카락에 수직으로 붙어 배를 밀착시킨 채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며 심한 경우 수컷이 탈진해 죽기까지 한다.
그뿐인가. 농어는 오럴섹스를 발명해냈고 버지니아의 암컷 거북은 ‘1분에 여섯 번’이나 눈을 깜박여 수컷에게 관심을 표시한다. 포유류에 이르면 꼭 수태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성행위를 하고 상대를 유혹한다.
인간은 유혹의 초절정 고수지만 사실 곤충이나 어류 파충류 조류 등이 자랑하는 그 어떤 장식도 갖지 못한 불쌍한 존재다. 미용술과 문신 등으로 자연을 모방해 복잡한 유혹의 기술을 만들어낼 뿐이다.
한 가지 의문. 생명체는 왜 하필 성을 택해 서로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이 피곤한 행위를 하게 됐을까?
사실 생명체는 단위생식만으로도 충분히 재생산을 할 수 있으며 효율성만 따지면 단위생식이 한 수 위다. 그럼에도 생명체의 95%는 양성생식을 선택한다. 도대체 왜?
성이 복제를 대신했던 이유는 다양성 때문이다. 성적 결합을 통해 서로의 유전자가 섞여 다양한 형질이 발생하면서 종은 환경의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저자는 ‘무분별한 복제에 대한 자연의 통제가 없었더라면, 푸른 별 지구는 자칫 누렇고 거대한 고름덩어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의 어느 한구석에서도 저자는 ‘생태계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대신 관능적인 유혹의 사례들을 통해, 더디더라도 다양성을 인정하며 특유의 너그러움과 인내심으로 진화의 과정을 지켜본 자연 덕택에 오늘날의 아름다운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것을 속삭이듯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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