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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지난달 말 정부가 발표한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규 교육과정에 안전 교육이 의무적으로 포함된다는 내용 뒤에 기사가 이렇게 이어져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 과목이 신설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깜짝 놀라 정부의 공식자료를 찾아보니 다행히 몇몇 기사가 언급한 ‘안전교육의 수학능력시험 포함 검토’ 같은 대목은 없다. 하지만 섣부른 추측보도라고 무시하기엔 찜찜하다. 시험에 넣으면 경쟁적인 주입식 교육이 되지만 시험과 무관하면 있으나마나한 과목이 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중요’하고 ‘의무적’인 과목이라면 시험에 포함되리라 짐작하는 게 무리도 아닐 것이다. 과연 학교 안전교육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좋은 걸까?

 

마침 지난달 중순 일본에서 열린 세계재난위험경감총회에서도 학교 안전교육이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고 한다. 총회에 다녀온 동료에게 안전교육의 핵심이 무엇이더냐 물으니 대답은 이랬다. “핵심은 마인드세트(mindset‧사고방식) 갖추기다. 언제 어디서든 배운 내용을 바로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사고방식으로 체화돼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이 지속적이어야 하고, 지루한 주입식이 아니어야 하며, 교문 밖을 나가도 배움이 지속되도록 지역사회가 같은 내용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가 컸던 미야기 현의 히가시마쓰시마에서 재난위험경감 교육을 진행하는 일본 세이브더칠드런이 카드 게임, 만화를 만들어 학생과 주민들을 동시에 교육하는 것도 그래서다.

 

만화는 재난 대비, 지진과 쓰나미, 재난 이후 등 여러 상황을 보여준 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자기자신을 지키는 기술을 가르치는데도 최소한의 대피요령을 익히고 나면 대다수의 내용이 더 작은 아이들의 필요를 고려하기, 체온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기 등 남을 돕는 일로 채워진 게 인상적이었다. 이 만화는 일본 세이브더칠드런이 쓰나미 생존자 50명을 인터뷰한 뒤 공통적인 어려움, 유용한 대응요령 등 다음 세대에 전해줄 교훈들을 간추려 만든 것임을 감안하면, 실제 재난상황에서 생존자들이 체험한 필수적 생존기술도 각자도생이 아니라 ‘서로 돕기’였으리라.

 

‘서로 돕기’는 교육 방법에도 적용됐다. 고등학생들에게 재난대응 카드게임 진행 방법을 먼저 가르치면 고등학생들이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 가서 어린 동생들을 가르쳤다. 초등학생들은 교사보다 ‘언니들’의 안전교육을 더 재미있고 멋지다고 받아들이며, 고등학생들도 가르치는 것을 통해 더 배운다. 지역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조모임을 만든 주민들에게 재난대응 카드게임을 먼저 가르치면 그들이 다른 주민들을 교육했다. 요는 학교 안전교육은 지역사회와 동떨어진 진공상태에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고 재난 대응 교육의 핵심은 ‘서로 돕기’라는 것이다.

 

<쓰나미의 아이들>을 쓴 일본 기자 모리 겐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탱해주고, 그러다보면 또 살아진다”고 썼다. 서로 씨줄과 날줄로 엮여 강하게 서로를 지탱하고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는 것이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가 관찰한 인간의 가장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모습이었다. 그 중심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눈에 1년 전 대참사를 겪은 한국사회는 어떻게 비칠까? 선장이 배를 버리고 도망간 건 예외적 사례일 뿐 시민 일반은 그렇지 않다고 안심할 만큼 서로 돕고 살아가는가? 학교 담장 밖에선 서로 지탱해주기는커녕 유가족을 모욕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학교 안에선 어떤 생존기술을 가르치려는 걸까? 참담해질 뿐이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한겨레신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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