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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한겨레신문 칼럼은 시리아의 민간구조대 화이트 헬멧을 후원하자고 말하고 싶어서 썼다.

위에 링크한 동영상부터 보기를 권하고 싶다. ‘화이트 헬멧대원들이 3층짜리 건물이 무너진 곳에서 생후 2주된 아기를 구해내는 장면이다. 여러 번 봤는데도 볼 때마다 울컥해진다.

 

지금 일하는 단체에 들어온 뒤 시리아 전쟁 중단, 한국정부의 난민 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서명운동, 광화문 촛불 캠페인 등등 해마다 시리아 내전 시작일인 315일이 되면 뭔가를 하면서 꼼지락거렸다. 근데 올해는 곧 나올 보고서 홍보를 제외하곤 다른 걸 하지 않을 참이다. 긴 전쟁에 지쳤다거나, 달라진 게 없어서 힘 빠졌다거나 하는 건방진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냥 정말 모르겠다. 해결책은 뭔지, 저 먼 땅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뭘 할 수 있는지, 뭘 하자고 해야 할지, 정말로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는 건 지난 달 서울에서 열린 사진전에서 시리아 아이들의 사진을 보았다는 것이고, 사진전이 끝난 뒤에도 그 아이들이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슬프다고 말을 걸어왔다는 것이고, 시리아에 남아 있는 그 아이들의 친구들을 구했을지도 모를 평범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거들어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것뿐...... ‘화이트 헬멧홈페이지 들어가면 페이팔로 쉽게 후원할 수 있다. 많이들 도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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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지난 달 내가 일하는 단체가 주최한 ‘서울, 자타리를 만나다’ 사진전에 참가했던 작가가 요르단의 자타리 난민촌으로 돌아간 뒤 사진을 출품했던 시리아 청소년들의 소감을 보내왔다. 아이들이 전시회 사진을 보며 감탄과 기쁨을 쏟아낸 말들의 한 구석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우리 생활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말아줘요. 정반대로 난민촌 생활은 슬프답니다.”

 

누가 모르겠는가. 식물을 키우고 고양이를 돌보고 비록 천막이지만 지붕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난민촌 아이들의 사진에 실린 감정은 재미가 아니라 삶의 파괴에 맞서 소소한 일상을 돌보며 자신을 지키려는 안간힘인 것을. 구조요청 신호를 보내기라도 하듯 웃음기를 거두고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마음이 안쓰러웠다.

 

오는 15일은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지 만 4년이 되는 날이다. 4년 전 청소년들이 담벼락에 쓴 반정부 낙서로 촉발된 시위가 전쟁이 되어 이토록 길어질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망자 수가 20만 명을 넘어서 ‘슬로 모션으로 진행되는 대량학살’이나 다름없고, 난민의 규모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다. 전시회에 걸렸던 시리아 청소년들의 사진 중 고향의 친구를 그리워하고 새가 되어 집에 돌아가고 싶다던 장면들이 눈에 밟힌다. 아이들의 꿈은 아마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이 거대한 폭력의 끝이 어딘지는 누구도 모른다. 민간인에 대한 폭력 중단, 인도적 지원 접근 허용을 골자로 잇따라 발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최소한의 상식과 인간성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지켜지지 않는 생지옥의 가장 밑바닥, 최전선엔 누가 있는가?

 

시리아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가는 것은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의 참수가 아니라 정부군의 배럴폭탄 투하다. 기름통에 폭발물과 인화물질, 금속조각, 유리 등을 채워 만든 배럴폭탄을 시장 병원 주택가를 가리지 않고 퍼붓는다. 터키의 한 연구자는 시리아에 쏟아지는 폭격과 파괴의 정도를 “하루에 진도 7.6 규모의 지진이 50번쯤 일어난다고 상상하면 된다”고 묘사했다. ‘대재난’이라 불린 아이티 지진이 진도 7.0 규모였다.

 

공중폭격이 휩쓸고 간 곳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들은 ‘화이트 헬멧’ 대원들이다. 시리아의 시민들이 2013년 결성한 ‘화이트 헬멧’은 잿더미가 된 폐허에서 지금까지 1만2천여 명을 구해냈다. ‘인간성, 연대, 중립’의 원칙을 고수하며 무보수, 비무장으로 일하는 그들의 보호 장비는 하얀 공사장 헬멧뿐이다. 지금까지 구조 과정에서 81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인류를 구하는 것이다”가 ‘화이트 헬멧’의 금과옥조다. 보수적인 시민들이 옷이 찢겨진 채 매몰된 여성을 남성 대원이 구조하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에 여성 대원들도 늘어났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화이트 헬멧’ 대원들은 전직 재단사, 목수, 약사, 학생 등 전부 자원봉사자들이다.

 

잔혹함과 고통으로 가득한 땅에서도 일상의 파괴에 맞서 평범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용기의 여러 모습을 목격한다. ‘화이트 헬멧’ 단원들의 구조 활동은 목숨을 건 용기지만, 난민촌의 시리아 청소년들이 카메라를 들고 주변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며 일상의 감각을 회복하려 애쓰는 것도 용기다.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낼 수 있는 용기도 있다. ‘서울, 자타리를 만나다’ 전시회에 왔던 한 관객은 소감을 적는 메시지 나무에 이렇게 썼다.

 

“일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잊지 않는 것. 일상을 파괴당한 타인을 위해 분노할 줄 아는 용기. 잊지 않겠습니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한겨레신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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