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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중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황당한 기사를 발견하다.

이달 초에 미국 잡지 <뉴 리파블릭>에서 문화비평을 쓰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리 시걸 (Lee Siegel)이 가짜 블로거를 만들어 독자를 속이는 바람에 블로그 서비스가 중단되고 정직을 당했다는 이야기.

    <시걸의 블로그. 블로그 서비스가 중단돼 8월 이후로 새로운 글이 없다>

그가 독자를 속인 방법은 이렇다.

‘스프레짜투라(sprezzatura)’라는 이름의 가짜 블로거를 만들어서 자신이 운영하는 공식 블로그 (Lee Siegel on Culture)에 자기 글, 그러니까 ‘리 시걸’의 이름으로 쓴 칼럼을 마구 칭찬하는 댓글을 달고, 시걸을 공격하는 블로거들과 난투전을 벌였던 것. 이 아저씨 평소 독설가여서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만, 긴 꼬리가 밟혀 버렸다.
잡지사의 조사 결과 스프레짜투라가 시걸과 같은 사람임이 드러나 블로그 문을 닫고 쫓겨나는 망신을 당하게 된 거다.

    <스프레짜투라의 블로그. 글 제목이 '리 시걸은 신'이라니.....중증이다. 이 아저씨.....>

자기가 '스프레짜투라'라는 분신을 하나 만들어 자기 글을 자화자찬한 셈인데, 이 자화자찬 중엔 낯뜨거운 말들이 많다. "시걸은 나의 영웅" "시걸은 용감하고 현명하다"등등......

평소 독설가로 유명한 시걸은 그를 싫어하는 좌파 블로거들을 싸잡아 지칭하는 ‘블로고파시즘(Blogofascism)’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단다.


사실을 날조하거나 없는 사람을 창조해낸 작문 기사로 물의를 일으킨 기자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웃기는 건, 반성의 기색이 전혀 없다는 거다.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 선데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어리석었다”고 하면서도 기고만장한 태도로 일관했다.

‘스프레짜투라’의 이름으로 “시걸은 나의 영웅”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릴 때 도덕적인 가책을 느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모든 사람은 그 자신에게 영웅”이라고 응답하지를 않나... 익명성은 블로그 세계의 국제적 관습이니 문제가 될 게 없단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뉴 리파블릭> 잡지의 시니어 에디터로서 그런 짓을 했던 게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아저씨 왈, "블로그 세계가 번성하는 것은 익명성 덕분이며 그 덕에 블로그세계는 논리와 수사적 기교의 탈을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스프레짜투라'의 이름으로 블로깅을 할 때는 논리 대신 감정에 충실했다면서.
한술 더 떠 이 아저씨, "나 같은 논객을 블로그세계에 갖다놓는 것은 비만환자를 초콜릿 공장에 데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

아마 그가 '사고'를 치고 나서 쓴 것처럼 보이는 책(들통나서 블로그 서비스가 중단된 게 9월4일인가 그런데,참 빨리도 썼다. 미리 준비한 게 아닐까?) 의 제목은 "Falling upwards"다.
위로 떨어지기. 왜 추락이 downwards가 아니고 upwards인가.

이 아저씨의 설명을 들으면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지배적 문화가 생각하는 몰락, 실패는 종종 어떤 캐릭터나 정신의 승리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유명해지고 싶은 미칠듯한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다. 무명은 새로운 가난이다.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같다.....
익명 뒤에 숨어 계속 남을 비방하는 블로거들은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을 표출하는 것이다."

결국 책 제목은 자기 자신의 상태를 표현한 말 같다. 직업적으로는 추락했지만 아무튼 바라는 대로 유명해졌으니, '리 시걸'이라는 캐릭터는 (그의 표현을 따른다면) '승리' 했으니, 추락을 해도 어쨌건 새로운 부(富)인 '유명세'를 향한 상승인 거라는 뜻이겠지.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을까. 한심하다. 그러면서도 한편 드는 생각.
이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사고와 반성조차 하지 않는 뻔뻔함은, 어쩌면 상당히 많은 블로거들 마음 한 구석에 한톨씩 숨어있을, 자각하면 얼른 부정해버리고 싶은 아주 작은 욕망을 극단적으로 부풀린 표본 같은 것은 아닐까.
소통의 매체, 자기 표현, 1인 미디어, 네트워킹, 시걸 말마따나 유명해지기....등등. 블로깅을 하는 여러 이유들 중 내 이유는 뭘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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